농촌의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노노돌봄(4)
경남 산청읍사무소 노상덕 (69세)
지역 적십자 봉사회장 20년 등 젊어서부터 자원봉사활동
노상덕 할머니는 올해 69세 로 슬하의 1남 4녀를 모두 출가시킨 뒤 현재는 은퇴 공무원인 남편(73세)과 두 분이 살고 계신다. 학력은 중학교 중퇴. 21살 때 함양에서 시집와 병환 중인 시아버지를 14년간 대소변까지 받아내며 수발하셨다고 한다. 그러나 당시 임시직 공무원이던 남편의 월급으로는 힘든 탓에 일찌감치 할머니께서 생활전선에 나가 화장품 장사부터 보험설계사 일까지 하셨다. 지금도 남편의 연급으로 생활하지만 빠듯하다고. 건간은 허리가 안 좋고 혈압약을 드시고 있다.
그러나 남편과 노상덕 할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이웃을 돕는 봉사활동을 틈틈이 해오셨다. 남편은 공무원 시절에도 봉사를 잘한다며 청백봉사상을 받았고 은퇴 후에는 대한노인회 일을 맡기도 했다. 할머니 본인은 1973년부터 20여 년간 산청지역 적십자 봉사회장을 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이웃을 도와주는 일에 앞장섰다. 지역에 수해피해가 나면 달려가 빨래부터 설거지와 거름주기, 모내기 할 때 밥해주기 등 별 일을 다 하셨다고 한다. 가진게 많아서가 아니라 딱한 이웃을 보면 그냥 넘길 수 없는, 정이 많은 성품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이웃봉사의 연장선상인 노노돌봄 활동
노상덕 할머니가 어느 정도로 이웃에 대한 정이 많은 분인가 하면,
“몇 세대 애들을 우리 집에 데려다 키우고 돌봐주고... 그랬는데 갸들 중 한세대가 IMF때 돈 300만원 해달라고 하더라고. 근데 돈이 있습니까? 그래 돈 100만원 해줬더만 그걸 가져가서 연락도 없어. 돈 잃고 사람 잃고 그랬습니다. 남 안된 거 보면 내 안 먹고 남 줘야 되고 성격이 그런 성격이라...”
이런 노상덕 할머니에게 노노케어사럽을 처음 소개해 준 분은 남편이다. 대한노인회에서 알게 된 남편의 지인으로부터 소개받은 할머니는 며칠 간 교육을 받은 뒤 활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노상덕 할머니는 월 20만원이라는 돈보다 홀로 집에 계신 분들에게 위로가 되고 마음을 나누는 것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셨다.
“돈 20만원 보다 저렇게 들어 앉아 계신 분한테 가서 진짜 말이 되고 위로가 되고 이런 걸 원해지더라고.(중략) 사실은 20만원 받아도 (돌봐드리는) 노인이 술 드시면 술 사다 그리고 과자 좋아하면 과자 사드리고 빈손으로 못가지요. 된장이 없다 하면 된장 갖다 주고 할매 옷도 사다주고... 내 돈 들어.”
노노돌봄에 참여한 첫해 노상덕 할머니가 돌봐드린 분은 이웃 마을에 사는 87세 할머니로 귀가 무척 어둡고 결혼도 못한 50대 아들과 함께 마을회관 조그만 방에 기거하셨다고 한다. 아들이 있어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같은 마을 사람들이면 누구나 그들의 딱한 형편을 인정하는 어려운 이웃이었다고. 노상덕 할머니는 그런 이웃을 일주일에 4번 찾아 말벗을 해주는 일로 노노돌봄을 시작했다. 주로 옛날 살던 이야기와 남의 집 이야기를 하셨다고.
“뭐 옛날 이야기도 하고 누구 집에 뭣이 어떻다 그런 그런 이야기지. 작년 할머니는 귀가 먹은 께 주로 자기 이야기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분이 동네 돌아가는 이야기는 다 알고 있더라고.”
“이 노노돌봄은 힘에 벅찬 게 없어”
힘에 벅차거나 어려운 점은 없느냐는 질문에 할머니가 답한 내용이다. 사실 산청에서는 길가에 김을 매고 화단 등을 정리하는 공공근로 사업만 해도 노인들이 서로 하려고 경쟁이 심하다고 한다. 그만큼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적다는 의미. 그런데 공공근로와 비슷한 근로조건(일주일 4회, 월 20만원)을 가지면서도 힘에 벅찬 일이 없는 노노케어사업이기에 요즘엔 서로 하려고 다툼이 심하다는 설명이다.
“일주일에 월, 화, 수, 목 나흘 하면 한 달이면 열 여섯 날 아닙니가? 그거 하고 20만원 받거든. 촌에는 그것도 귀한께. 그래도 서로 할라고 난리가 나는기라. 읍사무소 가서 항의를 하고...”
그러나 노상덕 할머니에게는 뭐니 뭐니 해도 이 일을 통해 딱한 처지에 놓인 이웃이 위로를 받고 고맙다고 할 때 느껴지는 보람이 돈보다 더 컸다.
“귀도 잡숩고(어둡고) 자손도 없고 회관에 빈 방에 그리 있는 할머니를 했는데 그 분이 젤로 좋아하고 나를 그저 쓰다듬고 너무너무 좋다 하지, 맨날 ‘보건소 댁 공을 못해 (갚지 못해 어떡해).’ 이러지.”
‘보건소 댁’은 노상덕 할머니의 동네 별명으로 ‘자네한테 받은 공을 못 갚아 미안하고 고맙다.’는 뜻이었다. 다니다보니 서로 정이 들어 올 여름 김치라도 해드리고 싶었는데 배추가 비싸 못해 드렸던 게 아쉬웠다고 한다. 그런 할머니의 모습이 자식들에게는 자랑스러웠나보다. 할머니는 행복한 표정으로 자식들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 딸들은 용돈을 주더라도 그냥 안 줍니다. ‘엄마 엄마 우리 엄마, 내가 우리 엄마 만난 것을 큰 영광으로 생각한다.’ 그러면서 줍니다.”
돌봄을 받아야할 분이 선정되었으면...
노상덕 할머니는 대화 중간중간 아쉬움을 표현하셨다. 바로 노노돌봄을 받으실 대상선정의 문제 때문이었다. 작년에 처음 노노케어사업을 시작하셨을 때만 해도 돌봐드릴 어르신을 본인이 직접 선정할 수 있었다. 그 어르신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아니었지만, 정말 도움이 필요한 어려운 처지의 실질적인 수혜대상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올해 들어 사업주체가 읍사무소로 이관되면서부터 모든 대상은 기초생활보장수급자로만 한정되었다고. 할머니는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한다.
“애가 건의하고 싶은 것은 수급자만 하지 말고 외로운 사람, 집에서 못나오는 사람, 그 사람들을 해줬으면 싶어.”
“작년에는 우리가 발굴해서 참 보람 있게 했어요. 지금은 읍으로 가니까 공무원들은 딱 수급자만 해요. 노노돌봄은 말 그대로 노인이 노인과 놀아주는 사업 아닙니까? 그런 사업인데 아무리 수급자라고 해도 다니며 할 일 하는데 사실은 놀아줄 일도 없는 것이고, 들어앉아 외로운 분... 그 분을 가서 놀아줘야만 떳떳하고... 수급자들은 가사도우미니 이런 게 있으니...”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양로원으로 요양원으로 보내지만, 어중간하게 이런(조그만) 비이라도 하나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괴로운 거지. 저 건너 저기도 자녀들은 있는데 할머니가 말도 잘 못하고 하니까 구십 몇 살 잡쉈는데 작년에 댕기는 사람이 괴롭다 해요. 작년에는 그런 사람 내가 발굴해서 하니 좋았는데 올해는 그런 사람 안되거든. 진실로 괴로운 사람은 소외되고 있지.”
이처럼 아쉬움이 큰 것은 노상덕 할머니가 일로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노노돌봄을 하고 계셔서 아닐까? 또 한 가지 문제로 지적된 것은 돌봄의 기간의 문제, 너무 짧으면 곤란하다는 것이다.
“작년에 8개월 했나? 그 정도만 해도 좋겠어. 그런데 (올해는 )사람이 많으니까 조금조금 하는데... 나는 안 그랬으면 좋겠어.”
지역사회 구성운들이 조금만 더 도와줬으면 하는 것으로는 ‘흉보기’를 지적하셨다. 노노케어사업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마을사람들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한 3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가니까 그 이웃사람들이 굉장히 흉을 보더라고. ‘술 잘 먹고 잘 다니는데 뭐 할라고 와서 (돌봄을) 하는고.’ 흉을 보더라고. 마을내 있는 사람들이. 그래서 촌에서 노인하고 노인을 놀아 주는기 어려울거야. 서로 촌에는 나무 밑에서 모여 놀고 한 집에 모여 앉아 놀고 신체 불편한 수급자들은 요양원에 다 보내거든.”
그러나 모든 것을 모여 하던 농촌사회도 돌봄의 요구를 가진 어르신들이 얼마든지 많고, 그 분을 돕는 이 사업은 계속 되어야 한다고 강조하는 노상덕 할머니, 끝으로 이런 말을 남겼다.
“노노케어는 해주는 사람 방식에 따라서 받는 사람도 달라져. (정말 달라져요?) 하모, 그게 중요하더라고. 그게 중요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