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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논객 "소머즈"의 <양심선언>보다 그 후속타가 더 두렵고 무섭다.

임송희
조회: 954

대논객 "소머즈"의 <양심선언>보다 그 후속타가 더 두렵고 무섭다.

사람이 세상을 살다보면 할말이 있고 못할말도 있는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나에게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간 운영하던 회사도 지난달 3월25일부로 폐업했고 정리하는 과정에서.집 안에 3건의 우환까지 겹쳐 당분간 고향에서 외부와 일체의 접촉도 끊은채 꼼짝하지를 못했다. 그동안 오만가지 별의별 수많은 말들이 들려왔지만 모두가 개소리들이라 접었고, 결국 오늘은 작심하고 이글을 쓴다. 요즘 가뜩이나 경제 불황에 먹고살기도 힘든 판국에 달을 보고 짖어대는 똥개들이 유난히 많은 것 같다. 남말 씹어대고 참견하기 좋아하는 그 군상들의 대가리 속에는 대체 뭐가 들어있을까...그 군상들은 백수생활 하면서도 아직까지는 배지들이 부른 모양이다.

멀쩡한 사람 한두명 쯤은 등신으로 만들 수 있다고 착각들 했던 모양인데, 꿈들 깨시라, 장난으로 던진 돌에 재수 없는 개구리는 맞아 뒈질 수 있지만. 나는 그런 개구리가 못된다. 이왕지사 나도 백수생활로 접어들었으니 어느 놈이 뒈지는지 한판 붙어 보자구나, 이따금씩 GH포럼에 올려지는 글들을 보며 나는 배꼽이 빠지는 줄 알았다. 한때나마 그런자들과 어울리면서 없는 돈에 술이나 사줘가며 용돈까지 쥐어주고 희희낙락 거렸던 시간들이 아까웠고 지나고 보니 그동안 내가 등신이었고 미친 짓거리를 했다는 생각에 씁쓸한 마음 지울 수가 없었다.

심지어는 내가 싸이트 관리비로 매월 250만원에서 300만원을 주기로 했다느니, 나와 관찰자가 신동욱이라는 인간에게 포섭되어 육영재단에 이권을 챙겼다느니, 검은돈이 오고 갔다는등 근거없는 개뼉따구 같은 헛소리를 만들어 악취나는 주댕이로 개나발을 불어대고 있고 어느 띨빵은 멀티로 주접을 떨고 자빠졌으니 아무리 정상적인 사람이라도 배꼽이 안 빠지고 견딜수가 있겠는가...이런저런 지나간 잡다한 이야기를 늘어놓자면 책을 한권 써도 모자랄 판이니 간략하게 팩트에 입각하여 자판기를 두드려본다. 지금부터 나는 단 한치의 거짓없이 이글을 쓰며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싶다면 언제든지 전화를 하던,만나자고 하던, 아니면 명예훼손으로 고발하던 나는 각오가 되어 있으니 개의치 않을 것이다.

나는 신동욱이란 인간이 뭐하는 작자인지 몰랐다. 다만 지난해 언론을 통해 박근영이가 14살 연하의 신동욱과 약혼을 했고 곧 결혼한다는 소리는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남의 사생활 문제라 관심조차 없었다. 그 이후, 관찰자를 통해 박지만의 비서실장 정용희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정용희와 가끔씩 통화도 했다. 지나는 길에는 가끔씩 청담동 EG사무실에 들러 차도 한잔씩 마셨다. 그 당시 까지만 해도 나와 정용희는 일절 신동욱이나 육영재단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8,15,육영수여사 추도회를 앞둔 14일 오후 늦게, 정용희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추도회에 참석하려면 아침 일찍이 박대통령 묘소 바로 아래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아침새벽 현충원에 도착해 정용희를 만났고 그때 비로소 정용희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동욱이라는 말이 나왔다. 만에 하나 신동욱이가 행사장에 박근영의 약혼자 신분으로 가족석에 참석을 하게 되면 GH포럼 회원들이 나서서 막아달라는 부탁이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때부터 내생각이 박근영과 신동욱은 향후 박근혜의 대권가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것이라고 판단했고 GH포럼 토론방에 박근영과 신동욱에 대한 비판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박근영과 신동욱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9월25일 정용희로부터 만나자는 제의에 청담동 EG사무실에 만났다. 그때 정용희는 육영재단에 수목들이 잘려나간 사진첩과 여러 가지 신동욱에 대한 부도덕한 자료들을 건네주며 GH 포럼에서 공론화 해주길 부탁했고, 10월초 박지만이 박근영과 신동욱의 결혼에 대해 조선일보와 인터뷰가 계획되었으니 ,인터뷰전, GH포럼에서 사전에 포럼성명서 발표등,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인터넷상에서 분위기를 잡아주길 부탁했다. 그길로 나는 대박사랑과 관찰자와 세명이 양화대교 선착장내의 커피숍에서 만나 그 자리에서 정용희의 부탁을 전했고 그길로 GH포럼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지만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당시 우리생각은 아마도 최진실의 자살로 인해 부득히 연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만 했을 뿐이다.

뒤이어 10월13일 박근영과 신동욱의 결혼식날 정용희의 부탁은. GH포럼에서 회원 한분을 결혼식장에 보내 정계의 인사들 중에는 누가 누가 참석했고 어느누가 화환을 보내왔는지 일일이 체크하여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알고 지냈던 김진호 사진기자에게 부탁했고 김진호는 결혼식장에 들어가 결혼식 상황을 일일이 체크하여 사진을 찍어 그 내용을 김진호 기자를 통해 정용희에게 직접 통화하게 해주었고 통보하여 준적도 있었다. 정용희와 마지막 관계는 10,26,박대통령 추도식을 앞둔 10월24일이다.

정용희는 GH포럼 회원들을 동원해 신동욱이가 현충원 행사장에 오는 것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은 박근혜와 가족들의 뜻이며 가족회의에서도 결정된 사항이라고 했다. 나는 난감했다. 박근혜와 가족의 뜻이라니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gh포럼 회원들에게 그일을 하자고 할 엄두도 못냈다. 더구나 이미 법률상으로는 부부관계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용역동원뿐이었다. 사설경호원 1인당 하루일당이 15만원이었지만 관찰자 후배가 운용하는 경호회사에 부탁하여 용역비를 반값인 150만원으로 책정한후, 경호인력 20명을 추도행사 당일, 현충원 정문과 행사장인근, 그리고 행사장내에 분산 배치하여 신동욱이가 경비망을 뚫고 들어왔을 때 즉각 끌어낼 수 있도록 만반에 준비를 했지만 그날 신동욱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박근영과 신동욱은 향후 박근혜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고 당시에는 박근혜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보다 더한 부탁도 자진하여 실행 했을 것이다.

그 후 내가 신동욱을 만나게 된 동기는 작년 12,22, 이태원동 소재 크라운호텔에서 녹색회 송년회가 있다고 대박사랑이 참석하자고 했지만 나는 회사일로 참석하지 못했다. 그날 참석했던 회원 중 그 자리에서 대박사랑이 신동욱과 만나 장시간 대화를 나누었고 이튼날 대박사랑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어젯밤 송년회에서 신동욱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해본결과 그동안 우리가 정용희에게 철저하게 속았고 이용당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오후에 나의 회사로 찾아와 신동욱이가 주었다는 서류 한 개를 건네주었다. 대박사랑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와 함께 건네준 서류를 검토해보니 기가 찰 지경이었다. 만약 이 내용이 사실이라면 멀쩡한 공인의 신분인 박대통령의 둘째여식 박근영과 신동욱을 인터넷 게시판을 통해 공개적으로 비난했던 나의 모든 글들은 허위사실을 직시한 명예훼손이며 두 사람들의 인격을 심각하게 모독한 것이다.

그후 12,24일 X마스 이브날 오후2시 나는 대박사랑과 함께 육영재단 근처의 커피숍에서 신동욱을 처음으로 상면했다. 그날 신동욱은 상기된 표정으로 긴장되어 있었고 그동안의 자세한 정황을 팩트를 통해 세 시간동안 설명하며 확인시켜 주었다. 4일후,28일 오후2시, 신동욱의 만나자는 부탁으로 마포구소재 서교호텔 커피숍에서 나와 단둘이 한차례 더 만났고, 올해 초 나의 회사로 신동욱이 직접 찾아와 내가 점심 한 끼 사준 적 있다. 그 자리는 공교롭게도 몇 달 전 정용희가 EG직원과 함께 나의 회사를 찾아 왔을때 앉아서 식사했던 그 자리였다. 그날 마침, 오후에 대박사랑이 독도지킴이(독도사랑) 이 신년하례식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나의 회사에 잠깐 들렸다가 차 한 잔하고 나 갈 때는 대박사랑이 신동욱을 데리고 나갔고, 신동욱은 그날 오후 대박사랑과 함께 독도사랑 신년하례식 행사에 졸지에 참석한 후 회장을 소개 받은 후에 헤어졌다고 들었다. 이게 지금까지 내가 신동욱을 개인적으로 만났던 전부다.

올초 새해벽두부터 박지만측에서 용역을 동원해 육영재단에 난입하여 기물을 부수고 각종 서류등을 강탈한 사건이 발생하자, 대박사랑은 GH포럼에 박지만측의 패륜행각을 대문짝만하게 걸어놓았고 배너마다 박지만측을 성토하는 구호들로 가득 차 있었다. 갑작스런 공론화와 gh포럼이 온통 박지만의 성토장으로 변해버린 모습에, 나 역시 어리둥절했고 섬뜩함을 느꼈을 정도였다..그때부터 GH포럼에서는 대박사랑의 주도와 단독으로 공론화가 시작된 것이다. 공론화 문제를 가지고 사전에 나와 상의한 적도 없었고, 만일 나도 모르게 다른 회원들과 상의했다면 그 회원들은 대체 누군인가....그리고 그 당시 그 군상들은 왜 아무소리도 하지 못하고 있다가 이제 와서 근영포럼이니 지랄포럼이니 주접을 떨고 자빠졌는지..지금 그 꼬라지들을 보니 내가 배꼽이 안 빠지고 견딜 수가 있겠느냐 말이다.

그후 대여섯 차례 신동욱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지만 그때마다 나는 더 이상 신동욱의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박근영을 직접만나 신동욱의 내용이 사실인지 를 확인하고 싶었다. 나의 부탁에 신동욱의 주선으로 지난 2월13일 오후5시에 불광동 소재 설참치 집에서 박근영을 처음으로 만났다. 그날 신동욱은 인사만 시킨 후 곧장 돌아갔고 2시간정도의 대화를 마치고 헤어질때는 박근영이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여 돌아갔다. 그 이후 부터 가끔 박근영으로 부터 전화를 받았고 자주 통화도 했다. 지난 2월27일과 3월8일,3월20일, 도합 3차례에 걸쳐서 김포의 모음식점과, 강서구 소재의 모 커피숍, 그리고 여의도의 모음식점에서 박근영과 만나 육영재단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의 대화를 나누다 보니 그동안 내가 잘못 생각했었고 너무 경솔하게 판단했다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자세한 내막도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 그동안 박근영을 만날 때는 항상 나와 단둘이 만났고. 만나서 대화 할때 마다 콧잔등이 시큰하여 나오는 눈물을 감출수가 없었다.

박근영은 미국에서 귀국한 후 육영재단 이사장에 취임하면서부터 박대통령의 신당동 사저에서 생활했지만 대부분은 육영재단 이사장실에 침대하나 놓고 생활한 적이 태반이었다고 했다. 그 당시 박근영 소유의 재산이라고는 유일하게 잠원동에 아파트 한채가 있었지만 육영재단 이사장 취임당시 300여명이나 되는 직원들을 100여명으로 줄이면서 200여명의 직원 퇴직금을 주기위해 아파트를 처분했고 어깨동무 부도의 악성채무까지 모두 떠안았다고 했다. 특히 좌파정권 10년동안 좌파들로부터 많은 수모와 수난도 겼었지만 부모님의 혼이 담긴 육영재단 만큼은 끝까지 지키기 위해 혼자 몸부림치며 고생하면서 남몰래 눈물짓던 이야기... 청와대 시절이야기..미국에서 생활하며 갖은고생을 했던 일 등등...그리고 언니가 정치에 입문하면서 부터 행여나 언니에게 누가 될까 조심스러웠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욕되게 할까 두려워 그동안 가슴에 맺혀있던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못하고 지금까지 벙어리 냉가슴으로 지내다보니 가슴앓이의 속병까지 생겼고 거기에 당뇨까지 심해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있었다.

박정희 대통령사후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들은 모두 6명이다. 전직 대통령들의 자녀들은 지금도 재벌2세 부럽지 않게 호의호식하면서 경제적으로도 돈 걱정 없이 지내며 한결같이 모두가 잘 들먹고 잘들 살고 있다. 한마디로 부모 덕분으로 호강하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들 전직 대통령의 자녀가 무일푼으로 서민생활에도 못 미치는 극빈자 생활을 하고 있다면 우리나라 국민들 중 과연 몇%나 믿어 줄 것인가...내가 생각할 땐 단 1%도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 서민들의 삶이 무척 어렵고 힘들다고는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조그마한 빌라 한채라도 가지고 있던지, 그 나마 집한채도 없다면 최소한 전세금이나 단 몇 푼의 월세보증금이라도 가지고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박정희 대통령의 둘째여식인 박근영이 바로 이러한 서민수준도 못되는 땡전 한 푼 없는 무일푼이라면 국민들이 믿어 주겠는가.... 지금 살고 있는 돈암동 아파트의 전세금도 동생명의로 된 동생 것이다. 그나마 살고 있는 지금의 아파트도 언제 비워달라고 할지 몰라 전전긍긍 하고 있다. 언젠가 육영재단 자신의 여비서(심경숙)에게 정용희가 전화를 하며, 아파트 집주인이 집을 판다고 했으니 준비하라는 내용이 지금도 마음에 걸려 항상 불안하다는 것이었다. 집주인이 방을 빼달라면 당장 갈 곳도 없다. 그렇다고 월세방을 얻을 돈도 없다.

박정희 대통령 자녀 중 둘째여식의 이런 비참한 생활을 국민들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박근영은 자기명의로 대한민국에 단1평의 땅도 없고. 숨겨논 재산도 없다. 그동안 박근영은 박대통령의 자녀답게 돈에 대한 욕심이나 일체의 사심도 없었고 지금도 그 마음은 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어느 서민들처럼 집 한칸 장만하기 위해 1년 전부터 하나은행에 주택청약 저축을 들었고 매달 125,000원씩 꾸준히 부금을 붓고 있다. 2007년 11월 동원된 한센인들에 의해 육영재단에서 강제로 &#51922;겨난 이후부터는 생활비가 없어 국민은행 화양지점에서 3,000만원을 신용대출 받았지만 6개월 전부터 생활비에 쪼달리다 보니 대출금 이자도 상습적으로 몇 개월씩 연체되는 경우가 허다하여 지금은 신용불량 위기까지 치닫고 있다.

그것뿐이 아니다. 현재 백내장으로 고생하고 있지만 당장 수술할 돈이 없어 방치하고 있는 상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되어 수술을 받지 못한다면 실명까지 될 수 있다는 게 담당의사의 소견이다. 이게 현재 박근영의 본 모습이며 현실이다. 이런 박근영에게, 왜~!!!...그동안 육영재단 이사장 노릇을 19년 동안이나 하면서 남들처럼 축재도 못했고 지금까지 바보 등신같이 살았느냐고 돌을 던지라는 것이다.

남들 부동산 투기하며 분식회계를 통해 뒷구멍으로 몰래 검은돈 챙길때 , 당신은 그동안 뭐 했길래 바보천치같이 자동차 기름도 넣을 돈이 없어 일반인들처럼 지하철을 타고 다니면서 그동안 육영재단문제가 너무 억울하게 진실이 왜곡되었고 실추된 명예를 회복하겠다며 바보같이 울부짓냐고 돌을 던지라는 것이다. 이와 같이 박근영의 숨겨졌던 비참한 현실을 우리는 그동안 까맣게 몰랐었고 이런 엄연한 사실이 우리가 그토록 존경하고 추모하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여사의 둘째여식 박근영의 현주소라는 사실에, 어찌 눈물이 안나올 수 있겠는가.

마지막으로 나도 그동안 많은 고뇌를 통해 혹시 내가 잘못 판단하고 있었는지 생각이 짧았는지 많은 생각도 해보았다. 지금까지 내가 언급한 내용들은 일부분이며 더 이상의 내용은 공개하기 곤란하여 이쯤에서 끝낸다. 편의상 여기에 거론된 인물들에 대한 존칭은 생략했다. 다만, 기타 언급되지 않은 GH포럼문제나 대박사랑과의 문제, 그리고 GH포럼의 분쟁을 기화로 시민일보 고하승국장이 느닷없이 언급했던 문제에 대한 반론 글 등은 언제든 듣고 싶고 해명하라면 GH포럼 토론방을 이용해 자세하게 밝힐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5년 동안 인터넷 온라인을 통해 인연이 되었던 박근혜 지지논객들과 오프라인을 통해 인연을 맺었던 팬카폐등 많은 박근혜지지자들과 잦은 만남을 가져왔지만 그때마다 나는 항상 돈 내는 입장이었지, 지금까지 어느 누구에게도 단, 한차례 술 한 잔 식사 한 끼 얻어 먹은 적도,, 피해를 준 사실도 없었다는 점을 분명하게 밝혀둔다.


서기 2009년 4월 10일,01시50분 소머즈 / 핸드폰:010-8983-8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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