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국민이 변해야 한다
어느 신문에선가 세미나를 하면서 Leadership과 Followership에 관한 문제 제기를 했던 학자가 있었다. 대강만 훑어 보았지만 그 문제를 제기한 어느 여교수의 관점은 상당히 일리가 있다는 생각을 하였다. 결과된 현상을 가지고 리더쉽에 관한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팔로우어쉽에 관한 이야기는 생략하는 경향이 있다. 작금의 한국 사회가 바로 그 전형이다. 리더쉽의 자질이 문제가 되듯이 팔로우어쉽이 부실한 사회에서 진정한 리더쉽은 기능을 할 수 없다. 리더쉽이 지도자의 자질인 것과 같이 팔로우어쉽은 국민들의 수준이다. 여기에서 말하는 수준이란 지식 수준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글에서 읽은 것이지만 팔로우어쉽이 국가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사례로 나이제리아와 남미의 예를 들었던 글을 본 일이 있다. 소위 선진국이라고 일컫는 국가들에서 국민들이 가지고 있는 팔로우어쉽은 역시 후진국과 많은 차이가 있다. 팔로우어쉽이 없는 국민들에세 적합한 리더쉽은 독재적 리더쉽이 가장 효과적으로 기능한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박정희 시절처럼 독재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제도적으로 민주적 리더쉽만이 용인되는 시스템에서 국민들의 팔로우어쉽은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는 수준이다. 민주적 리더쉽이 효과적으로 작동하려면 국민들이 자격을 갖추어야 한다. 어느 정도 수준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식으로 아는 것과 실제의 태도는 전혀 별개의 것이다.
이상적인 팔로우어쉽이란 대체로 다음과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한다고 한다. 다음에 열거하는 태도들을 기준으로 관찰해 보면 그 나라의 국민적 수준, 소위 선진국의 시민과 후진국의 시민의 차이가 극명하게 들어난다.
1. 리더를 존중하는 태도
2. 제도를 존중하는 태도
3. 차이점을 이해하는 태도
4. 공동 목표를 향하여 노력하는 태도
5. 리더가 가지고 있는 권위를 인정하는 태도
6. 리더의 이상과 합치하기위한 자기 절제
7. 조직의 목표를 위한 열정적인 태도 등 몇가지가 더 있다
이 같은 태도를 기준으로 본다면 한국의 현실 사회는 상당히 비관적이다. 이 같은 콩가루 팔로우어쉽을 가지고 있는 사회에서는 아무리 유능한 리더를 데려와도 결과는 마찬가지다. 처칠이나 루즈벨트같은 민주적 지도자를 모셔와도 안된다. 한가지 길이 있다 김정일이나 박정희 같이 물리력으로 강제하는 리더쉽은 기능을 할 것이다. 오늘날 박정희 전대통령의 리더쉽의 존재가 새삼 가치를 부여 받는 것은 바로 국민적 수준이 민주주의를 운영할 정도로 스스로의 팔로우어쉽을 체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의 팔로우어쉽의 문제는 일반국민들 보다도 오히려 배웠다는 사람들이 한국적 팔로우어쉽의 평균을 떨어 뜨리고 있다. 우리나라의 교육이 잘못된 것이다. 진중권 같은 사람이나 윤여준 같은 사람들의 발언이 항상 신문에 대서특필되는 현실이 어디 그들만의 수준인가. 그것이 언론의 수준이고 교수사회의 수준이다. 오늘의 문제는 대통령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전체 구성원의 문제다. 이처럼 권위가 철저하게 파괴된 사회에서는 국가가 발전할수가 없다. 위기 극복의 동력도 상실되어 그 고통은 결국 구성원들에게 돌아 갈 것이다. 그것를 깨닫고 있으면서도 정반대의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 정치 후진국 국민들의 일치된 팔로우어쉽의 특징이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의 교육은 그런 점에서 철저하게 실패했다고 보는 것이 나의 관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