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먼브러더스의 매각협상이 모두 결렬되면서 리먼이 파산 신청을 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힘을 얻으면서 월가가 초긴장 상태다.
리먼 매각 협상 실패, 파산 초읽기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은 지난 12일 밤(현지시간)부터 사흘간 미국 뱅크오브아메리카(BOA), 모건스탠리, 영국의 바클레이즈 등 월가의 주요 금융기관 대표들을 소집해 리먼 처리 문제를 논의했다. 이 회의에는 티모시 가이트너 뉴욕 연방준비제도 은행장 외에 헨리 폴슨 미 재무장관, 크리스토퍼 콕스 증권거래위원장 등 미 정-재계 인사들은 일요일인 14일(현지시간)에도 참석해 대책을 논의했다.
월가 금융기관들은 한결같이 미국 정부에 리먼 인수시 발생할 막대한 추가 부실을 정부가 떠맡아줄 것을 요구했다. 현재의 우량재산만 인수하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한 것.
그러나 헨리 폴슨 재무장관은 페니메이, 프레디맥 양대 모기업체에 대한 2천억달러의 구제금융외에 민간 금융기관에게 구제금융을 해줄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미국 집권여당인 공화당도 구제금융에 반대 입장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협상은 난항을 거듭했다.
결국 유력한 인수 후보로 거론되던 영국 은행 바클레이즈가 14일 정부의 지원 없이는 리먼 인수를 포기하고 철수한 데 이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도 인수협상 포기를 선언하면서 리먼은 사실상 파산 위기에 직면했다.
월가에서는 15일 월요일에 금융시장이 개장되기 전까지 극적 돌파구를 찾지 못할 경우 리먼 파산이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확산되고 있으며, 실제로 리먼은 최악의 경우에 대비해 파산신청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뉴욕 타임스>는 14일 이와 관련, 복수의 소식통들의 말을 빌어 "리먼이 파산법 적용을 신청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들 소식통에 따르면, 파산 신청 방식은 모기업인 리먼 홀딩스가 먼저 파산을 신청한 뒤 자회사들을 분리 매각하고 이 기간중 채권단이 지원을 하는 방식이 될 것으로 알려졌다.
휴일인 14일 오후 2시부터 4시까지 뉴욕 금융시장에서는 리먼이 파산신청을 할 경우 발생할 손실을 줄이기 위해 딜러들이 주식과 금리, 외환, 선물의 파생금융상품을 거래할 수 있도록 시장이 열리기도 했다.
벤 버냉키 미연준의장이 월가의 연쇄 도산 위기에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린스펀 "다른 대형 금융회사들도 위험"
문제는 지금 위기에 처한 것은 리먼 뿐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이미 유동성 위기에 직면한 투자은행 메릴린치를 비롯해 미국최대 보험사 AIG, 뮤추얼펀드인 워싱턴 뮤추얼 등과 이밖에 수많은 헤지펀드 등이 리먼 파산시 연쇄도산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사실이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연준 의장은 14일 ABC방송 '디스 위크'에 출연 "금융위기가 리먼 브러더스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대형 금융사에게도 닥쳐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린스펀은 "지난해 서브프라임모기지 시장의 붕괴로 시작된 금융 위기는 한 세기에 한번 있을 정도의 사건이다" 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그러나 구제금융에 대해선 "승자와 패자가 생기는 것은 금융 변화의 통상적 과정이기 때문에 특정 금융사들을 보호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고, "최근 며칠처럼 리먼브러더스, AIG 같은 대형 금융사들의 주가가 급락하더라도 공매도를 금지하는 것은 "매우 나쁜 아이디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AIG, 메릴린치 등 '살생부' 오른 기업들 필사적 구생 노력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살생부'에 오른 금융기관들은 살아남기 위한 필사적 노력을 진행중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BOA는 리먼 인수협상을 포기한 뒤 메릴린치와 인수 협상을 진행중이다. 신문은 그러나 이번 협상과 관련해 많은 부분이 불확실하고 조건도 유동적이라고 덧붙였다.
AIG는 주요 자산 매각 등의 구조조정에 나서기로 하고, 항공기 리스 관련 자회사인 ILFC의 매각 또는 분사를 포함한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해 이사회에 제출했으며, 조만간 이를 발표할 계획이다.
AIG는 당초 이달 25일까지 구조조정 계획을 마련키로 했으나, 지난 12일 주가가 31% 폭락하는 등 올들어 주가가 79%나 급락하자 구조조정 계획 발표를 앞당기기로 했다. AIG는 지난 1.4분기 78억1천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4분기에도 53억6천만달러의 순 손실을 냈다.
월가 일각에서는 리먼 파산시 월가에 이처럼 공황적 위기가 도래하는만큼 막판에 미 정부가 리먼의 잠재 부실 중 일부를 떠맡는 형식으로 매각협상을 매듭짓지 않겠냐는 기대어린 전망도 하고 있으나, 리먼뿐 아니라 상당수 월가 금융기관들이 동일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점에서 전례없이 강도높은 미국발 금융위기가 글로벌 경제를 강타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