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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갑과 한나라당의 '소주폭탄 선문선답'

한 "지역감정에서 지역정서로 정치가 변동", 한나라 노골적 러브콜

"지역감정에서 지역정서로 정치가 변동됐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최근의 '호남 정서'에 대해 내린 나름의 진단이다.

11일 저녁 한나라당과 민주당 30여명이 여의도 모 호텔에서는 이례적 모임이 목격됐다. 한화갑 민주당 대표가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 김형오 원내대표, 황우여 사무총장, 박희태 전 국회 부의장등 한나라당 의원 모임인 '국민생각' 주최의 간담회에 초청 연사로 참석한 것.'국민생각'은 의원 회원 수만 40여명에 달하는 당내 최대 의원모임으로 이날 자리는 사실상 한나라당 지도부의 적극적 의지로 마련된 자리였다.

한화갑 대표는 "평소 좋아하던 박희태 전 부의장이 참석한다기에 온 것"이라며 공식적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애썼으나,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사람은 없었다.

"개헌이 동서화합에 기여"

한 대표는 이날 강연에서 "17대 총선을 계기로 '지역감정'에서 '지역정서'로 정치가 변동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며 "이 단계를 넘어가면 서로 정서의 공존과 정서의 연합, 그리고 정서의 순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과거 수십년간 계속돼온 극단적 영-호남 대립의 강도가 최근 들어 '지역감정' 수준에서 '지역정서' 차원으로 완화되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그는 이어 열린우리당이 비판하고 있는 '한-민 공조' 논란과 관련, "야당이 야당과 연합해서 여당에 반대하는 것은 야당의 사명인데 이를 한-민공조라고 매도하는 것은 정치적 후진성의 발로"라며 "서로 정책이 좋을 때는 공조를 해야 하고 그 정책이 국민에 플러스 요인이 되면 그것이 정치 개혁이며 이를 차츰 넓혀가면 정책연합을 통한 정당 연합도 이룰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민 공조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그것을 가지고 시비하는 정치는 정치의 후진성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이어 화제를 개헌 문제로 돌려 "정치안정과 책임 있는 국정운영을 위해서는 정-부통령 4년 중임제나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해야 한다"며 "그렇게 되면 지역정서 연합이나 결합도 이뤄질 수 있고 공동으로 국가발전에 기여할 수도 있다"고 자신의 지론인 내각제 개헌론을 폈다. 지역적 거부반응이 거셀 양당 합당 같은 형식보다는 내각제 개헌을 통해 공존하자는 속내의 표출이었다.

그는 결론적으로 "상살(相殺)의 정치가 아닌 상생(相生)의 정치로 가야만 한다"며 "오늘 행사를 계기로 국민에 실망 줬던 정치적 관행이 소멸되고 악습을 없애는 결과가 오길 바란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화갑 대표가 11일 오후 서울시내 한 호텔에서 열린 '국민생각' 초청 간담회에서 강재섭대표와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나라당 의원들 "툭툭 털고 함께 하자"

한 대표 연설후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에게 노골적 러브콜을 보냈다.

이진구 의원은 "한 대표는 저와는 한 30년 같이 정당생활을 한 인연이 있다"며 연을 강조한 뒤 "정치에는 영원한 적도 없고 벗도 없다는데 한화갑 대표의 동서간 화합이라는 말에 고무적이다. 가급적이면 툭툭 털고 한 마음 한뜻을 국민들이 바라는 정치를 함께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무성 의원은 "민주당의 생각은 한나라당 의원들과 글자 하나 안틀리고 똑같다"며 "정당이란 말 그대로 정체성을 같이 하는 사람들로 구성돼야 하는데 지금은 정체성을 달리하는 사람들이 지역을 기반으로 모여 있다"고 정체성이 비슷한 민주당과 통합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김 의원은 "결국은 정체성 같이하는 사람들끼리 헤쳐모여할 때가 되지 않았나 기대한다"고 노골적 러브콜을 보냈다.

황진하 사무총장은 "4.15 총선을 거치면서 지역감정이 지역정서로 변하고 점점 발전해 간다는 인식에는 민주당과 너무도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다"며 "향후 영호남 화합을 위해 제시할 것이 있으면 한 대표가 제시해 달라"고 말했다.

박희태 의원은 "나는 향후 민주당 대선후보로 한 대표가 나설 것인가 아닌가, 또 민주당에서 고건 씨를 영입할 것인지, 민주당이 고건 씨의 정치결사체에 합류할 것인지를 알고 싶다"며 "마지막으로 아주 간단한 질문인데 한나라당과도 연합해서 대선후보를 낼 수 있는지 말해 달라"고 한 대표의 명확한 입장표명을 요구했다.

한화갑 대표는 이에 대해 “고 전 총리에게 지금도 계속 러브콜을 하고 있다”며 “지향하는 목표가 같고 국민과 국가에 보탬이 된다면 헤쳐 모여식 신당 창당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자신의 차기대선 출마 여부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한 대표는 한나라당과의 제휴에 대해선 "내가 그렇게 해서 할 수만 있다면 하고 싶으나 시간이 필요하다"며 "자기 지역의 유권자를 끌고 다닐 수 있는 힘이 있던 YS와 DJ 시절과는 시대가 많이 달라졌다"고 말해, DY에 비해 현저히 떨어지는 자신의 지역 장악력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없는 한계를 실토했다.

이날 모임 참석자들은 의미심장한 선문답을 교환한 뒤 '소주폭탄주'로 우의를 돈독히 했다.

한화갑 "민주당과 한나라당, 정체성이 다르다"

한 대표는 자신의 이날 강연이 유사시 한나라당과의 제휴 및 합당으로까지 해석되자, 12일 오전 MBC라디오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인터뷰에서 "민주당과 한나라당은 정체성이 다르다"며 "한나라당과는 사안별 정책연대 이상은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더이상의 확대해석을 차단했다.

그는 고건 전총리와의 제휴 가능성에 대해서도 "지난 2월 만난 이래 만난 적이 없다"는 답변으로 일축했다.

한 대표의 묘한 행보를 지켜본 민주당 일각에서는 "한 대표가 노리는 것은 결국 '포스트DJ' 시대가 도래하면 호남맹주 자리를 차지, 향후 정가에서 일정 지분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것 아니겠냐"며 "내각제 개헌론도 그런 맥락에서 해석된다"며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열린우리당 지지율이 10%선으로 폭락했음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율이 전혀 반사이익을 거두지 못하고 아직 한자리 숫자에 머물고 있는 것도 한대표의 욕심 때문이 아니겠냐"고 꼬집기도 했다. 다른 한 관계자는 "요즘 한 대표가 목전에 다가온 대법원 판결도 크게 개의치 않는 분위기"라며 한 대표의 자신만만함을 전하기도 했다.

그러나 '포스트DJ' 시대를 한대표에게 맡기겠다는 당 안팎의 공감대는 극히 희박한 상태여서 과연 한대표의 야심이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심형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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