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박근혜에게 “내가 맞고 어머니가 살았더라면”
박근혜, 유영하 통해 박정희 친필 서한 공개
서한은 육 여사 서거한 지 이틀 뒤인 1974년 8월 17일 오후 10시 작성된 것으로, 프랑스 유학 당시 모친 서거 소식을 접하고 급거귀국하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차녀 박근영씨를 통해 중간기착지인 도쿄 공항에서 전달됐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편지에서 “아버지가 맞을 흉탄을 어머니가 대신 맞고 가셨다”며 “내가 맞고 어머니가 살았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몇 번이고 생각해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머니는 내 대신 자신이 맞고 아버지에게 너희들에 대한 모든 책임과 이 나라의 모든 책임을 맷기고(맡기고) 가셨다"면서 "아버지도 처음에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해서 정말 마음을 가눌 수가 없었으나 아버지부터 먼저 용기를 내야하겠다고 생각하고 이제부터는 모든 것을 참고 견디기로 작정을 하였으니, 너도 마음을 크게 먹고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야 하느니라"고 당부했다.
박 전 대통령은 당시 22세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이제는 네가 어머니의 대역을 해주어야 하겠다. 아버지가 어머니의 몇분지 일의 역도 못하겠지만 좋은 아버지가 되겠금(되게끔) 무슨 희생이라도 하마"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앞으로 10시간만 있으면 근혜가 도라(돌아)온다고 생각하니 일각이여삼추(一刻이 如三秋)같이 기다려지면서도 현관에서 아버지 혼자 너를 마중할 일을 생각하니 앞이 캄캄하구나"라는 탄식으로 편지를 마무리했다.
유 의원은 이날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편지를 공개한 뒤 “박근혜 전 대통령이 (서울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편지를 읽으며 평생 울 울음을 했다고 말씀하셨다”며 “아마 이 영화만 없었으면 세상에 공개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암살자(들)>에 대해 “창작과 표현의 자유가 객관적인 역사적 사실을 마음대로 뒤집을 수 있는 면허는 아니다. 유족이 지금도 살아 있고 대한민국 현대사의 중대한 비극을 소재로 삼았다면 창작의 자유만큼이나 무거운 책임이 뒤따른다”며 “법적으로 가능한 모든 방법을 강구하고 있다”고 밝혀,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법적 대응에 나서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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