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만 비서실장 정용희의 만행
관찰자를 통해 박지만의 비서실장 정용희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정용희와 가끔씩 통화도 했다. 지나는 길에는 가끔씩 청담동 EG사무실에 들러 차도 한잔씩 마셨다. 그 당시 까지만 해도 나와 정용희는 일절 신동욱이나 육영재단 이야기는 없었다. 그러던 중 지난해 8,15,육영수여사 추도회를 앞둔 14일 오후 늦게, 정용희로부터 한통의 전화를 받았다. 추도회에 참석하려면 아침 일찍이 박대통령 묘소 바로 아래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아침새벽 현충원에 도착해 정용희를 만났고 그때 비로소 정용희의 입에서 처음으로 신동욱이라는 말이 나왔다. 만에 하나 신동욱이가 행사장에 박근영의 약혼자 신분으로 가족석에 참석을 하게 되면 GH포럼 회원들이 나서서 막아달라는 부탁이었지만 나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그때부터 내생각이 박근영과 신동욱은 향후 박근혜의 대권가도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될것이라고 판단했고 GH포럼 토론방에 박근영과 신동욱에 대한 비판글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박근영과 신동욱에 대한 나의 감정은 나빠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후 9월25일 정용희로부터 만나자는 제의에 청담동 EG사무실에 만났다. 그때 정용희는 육영재단에 수목들이 잘려나간 사진첩과 여러 가지 신동욱에 대한 부도덕한 자료들을 건네주며 GH 포럼에서 공론화 해주길 부탁했고, 10월초 박지만이 박근영과 신동욱의 결혼에 대해 조선일보와 인터뷰가 계획되었으니 ,인터뷰전, GH포럼에서 사전에 포럼성명서 발표등, 인터넷 신문을 통해 인터넷상에서 분위기를 잡아주길 부탁했다. 그길로 나는 대박사랑과 관찰자와 세명이 양화대교 선착장내의 커피숍에서 만나 그 자리에서 정용희의 부탁을 전했고 그길로 GH포럼에서 성명서를 발표했던 것이다. 그러나 박지만과 조선일보와의 인터뷰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당시 우리생각은 아마도 최진실의 자살로 인해 부득히 연기가 되었을 것이라고 추측만 했을 뿐이다.
뒤이어 10월13일 박근영과 신동욱의 결혼식날 정용희의 부탁은. GH포럼에서 회원 한분을 결혼식장에 보내 정계의 인사들 중에는 누가 누가 참석했고 어느누가 화환을 보내왔는지 일일이 체크하여 알려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평소 알고 지냈던 김진호 사진기자에게 부탁했고 김진호는 결혼식장에 들어가 결혼식 상황을 일일이 체크하여 사진을 찍어 그 내용을 김진호 기자를 통해 정용희에게 직접 통화하게 해주었고 통보하여 준적도 있었다. 정용희와 마지막 관계는 10,26,박대통령 추도식을 앞둔 10월24일이다.
정용희는 GH포럼 회원들을 동원해 신동욱이가 현충원 행사장에 오는 것을 막아달라고 부탁했다. 이것은 박근혜와 가족들의 뜻이며 가족회의에서도 결정된 사항이라고 했다. 나는 난감했다. 박근혜와 가족의 뜻이라니 거절하기도 힘들었다. 그렇다고 gh포럼 회원들에게 그일을 하자고 할 엄두도 못냈다. 더구나 이미 법률상으로는 부부관계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용역동원뿐이었다. 사설경호원 1인당 하루일당이 15만원이었지만 관찰자 후배가 운용하는 경호회사에 부탁하여 용역비를 반값인 150만원으로 책정한후, 경호인력 20명을 추도행사 당일, 현충원 정문과 행사장인근, 그리고 행사장내에 분산 배치하여 신동욱이가 경비망을 뚫고 들어왔을 때 즉각 끌어낼 수 있도록 만반에 준비를 했지만 그날 신동욱은 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때까지도 나는 박근영과 신동욱은 향후 박근혜의 가장 큰 골칫덩어리며 걸림돌이라고 생각했고 당시에는 박근혜의 앞길에 걸림돌이 된다면 그보다 더한 부탁도 자진하여 실행 했을 것이다.
서기 2009년 4월 10일,01시50분 소머즈 / 핸드폰:010-8983-814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