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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의 노인이 노인을 돌본다-생계활동형(5)

farm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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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 횡성노인복지센터 이계송(65세)

시각장애로 혼자 생활

이계송 할머니는 1943년 올해 65세이다. 할머니는 중학교를 졸업하시고 슬하의 자녀는 2남을 두셨다. 횡성읍에서 사시다가 20년 전에 이곳 둔내면으로 이사 왔고 지금은 할머니 혼자 살고 계신다. 젊어서는 장사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오셨다. 눈이 좋지 않아 최근에 수술을 받고 안대를 하신 것 외에 다른 건강상태는 양호하신 편이었다.

노인이라도 자식에게 용돈 받아가며 사는 것이 왠지 미안하고 해서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볼 요량으로 여러 가지 자격증을 따놓으셨다. 옛날에 중학교까지 나오셔서 글을 아시고 적극적인 성격이라, 젊은 사람도 부지런하지 않으면 따기 힘든 노인복지사, 요리사 자격증 등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나 이에 맞는 일을 찾지 못해 이 자격증을 유용하게 쓰지는 못하셨다. 그런가하면, 횡성시각장애 협회에서 시각장애인을 위하여 안마를 가르쳐 주는데 이곳에 등록하여 안마를 배우셨다. 이 기술을 이용하여 현재 하고 있는 노노돌봄 활동에서는 2인 1조가 되어 말벗과 함께 안마봉사를 하고 있다.

시각장애인협회에서 배운 안마로 봉사

이계송 할머니는 나이 들었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안되고 뭐라도 배워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아주 적극적인 분이시다. 노노돌봄 활동으로 안마를 하신 것도 우연이 아니다. 직접 횡성노인복지센터복지위원회 소장님과 만나 시각장애인협회에서 받는 안마교육을 노노케어사업에 활용할 수 있는 지를 알아보았다. 다른 가사나 말벗 같은 보편적 도우미 활동 보다는 직접 자신이 배운 기술을 활용하여 어르신에게 봉사하고 일자리도 갖는 일을 하고 싶으셨던 것이다. 횡성노인복지센터에서는 노노케어사업을 ‘이심전심’ 이라는 명칭을 붙여 2인 1조로 활동하도록 하고 있다.

“이 일은 우리가 자원을 했죠. 저분(파트너)과 저하고 횡성군에서 주로 일을 하고 계신 분 세 사람이 하는데, 그분은 횡성에서 일을 하시고 저 분과 저는 이곳 둔내면에서 일을 하는데 제가 소장님한테 이야기 드렸어요. 우리가 이런 안마 기술을 배우는데 이것을 가지고 일을 하고 싶다. 말벗 사업하는데 우리가 안마도 해드리면서 하면 어떻겠냐고. 그래 소장님이 들어 보시고 쾌히 승낙을 해주셔가지고 감사하고. 우린 다른 파트보다는 좀 다르게 그래 해주니까 반응도 너무 좋고. 이래가지고 소장님도 만족해하시고 좋아하세요.”

일석이조, 안마와 말벗을 함께~

두 분은 일주일에 세 번 4시간의 봉사를 하시면서 말벗은 물론 배우신 안마기술로 할아버님과 할머님들의 몸을 풀어드리고 혈액순환을 돕는 일석이조의 봉사를 하신다.

“우리가 배운 게 있으니까 할머니, 할아버지들 수족 만져 드리고 말벗도 해드리고 심심치 않고 좋아요.”

두 분이서 같이 파트너가 되어 일하시게 된 동기는 횡성시각장애인협회에서 안마기술교육을 함께 받으면서 만난 게 계기가 되었다. 횡성노인복지 센터에서는 2인 1조로 운영하고 있는데, 안마기술교육을 받으시고 노노케어사업을 신청하신 분이 이 두 분뿐이라 함께 파트너가 되었다.

“우리가 이인 일조가 된 것은 색다른 기술을 배웠잖아요. 우리가 배울 때 같이 배웠거든요. 같이 안마할 사람이 둘 뿐이란 말이에요. 둘이니까 어쩔 수 없이 같이 다니라고 파트너 하자고 그래가지고 다니게 된 거예요.”

안마라는 것이 온 힘을 써서 하는 것이라 한 시간이 넘게 걸린다. 그렇게 하다보면 당신도 기운이 빠져 힘이 없으실 것 같은데도 성심으로 봉사하신다.

“처음 봉사할 때 수혜자들을 눕혀놓고 혈을 짚어가면서 목부터 순서대로 다하고 ‘여기 누르면 중풍이 예방됩니다.’하고, ‘여기는 머리를 지탱해주는 혈이에요.’ 여기서 어느 혈이든지 하나라도 시원찮으면 머리가 아픈 거죠. 우리가 그 혈을 특별히 많이 풀어 주요.”

안마를 하며 자연스럽게 속 같은 대화도 나누고 더할 나위 없는 말벗이 된다. 안마를 하니 성별이 다르면 불편할 만도 한다, 두 분은 그렇지 않으신가 보다.

“우리는 성별이 같으면 좋을 거라 생각했는데 이성이 더 좋아.

(이계송 할머니와 파트너로 활동하시는 할아버지 말씀) “제 얘기 들어보실래요? 둘이 가잖아요. 할아버지가 혼자 있다고. 그럼 저 선생님(이계송)은 저 쪽에 앉고 난 이 쪽에 앉잖아요. 같이 이렇게 앉아서 안마를 해요. 누우시라고 그러고. 하면 내가 또 웃기는 소리를 잘 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이 쪽이 더 시원해요? 저 쪽이 더 시원해요? 하면 저 쪽이 더 시원하다고 그래요. 그래서 난 내가 더 시원하게 해 드리는 것 같은데 하면 안 그렇대.”

노인에게 제일 두려운 것은 외로움

농촌노인들은 도시로 나간 다녀들을 따라 이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평생을 흙과 함께 살아 온 분들이라 콘크리트 네모난 상자 안이 얼마나 자유를 구속하는지 짐작하기 때문이다. 실제 이곳의 수혜자 노부부는 자식의 권유에 못 이겨 도시로 나갔다가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농촌으로 돌아오셨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자녀들과 분리된 삶을 살아가는 것이 농촌노인들의 현실이다. 자녀들과 떨어져 농촌에 홀로 사는 어르신들은 외로움을 가장 많이 호소한다.

“제가 일하는(도움을 드리고 있는) 할머니가 한 분이 있는데 그 할머니는 청소해 주는 것도 싫고 뭘 해 주는 것도 싫고 자기하고 화투만 쳐주면 된다고. 외로우니까. 그래가지고 활투를 치는데 그 할머니 치는 화투가 따로 있어요. 껍데기만. 우리는 알 가지고 오는데 껍데기만 가져 와가지고 돈은 십 원씩 하는 거에요. 그래가지고 우리가 이제 열두시 반 되면 차가 오니까 가야 되잖아요. 그러면 ‘와 이리 시간이 빨리 가노. 더 치고 가라.’고 이러는 할머니도 계세요. 그러니까 내가 생각해 볼 때, 나는 아직까지 그런 걸 못 느꼈는데 할머니가 되면 외로움이 제일 큰일이겠다 싶더라구요. 제일 무서운 게 외로움여. 외로움.”

외로운 마음이 있음에도 처음에는 선뜻 마음의 문을 열지 않고 만남을 거부하는 일도 있다. 그러나 이계송 할머니는 당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내 놓으면서 이야기를 유도하는 지혜를 발휘하시낟. 또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보며 스스로 위안도 얻는다. 도움을 드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할머니 자신에게도 돌아오는 정신적 위로가 있어 좋다.

“첨 하는 사람은 마음의 문을 잘 안 여는데 몇 번 만나면 내 이야기를 내 놔요. 내 이야기를 하지요. 어떤 이야기가 있나 하면.. OOO이라는 할머니 집에 갔는데 그 할머니는 ‘너 말 안 들으면 아버지한테 이른다.’ 그 소리가 제일 부러웠다는 거에요. 그 집 사정을 볼 때 아버지는 말도 못 하고 귀도 어둡고 그러는데... 아버지가 말도 못 하니까 애들 훈육을 못 할 거 아니에요. 이렇게 자기 속에 있는 이야기를 끄집어 내더라구요. 속에 담아뒀던 얘기 그런 걸 다하는 거에요.”

“나는 내가 제일 불행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이래 다녀 보니까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도 있고 그런 게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마음이 서로 위로가 되죠. 그런 점이 좋아요.”

보수 받는다는 이유로 일꾼처럼 부릴 때는 곤란

노인일자리사업으로 받는 보수가 많다는 오해를 받을 때도 있다. 그런 인식부족으로 집안일을 일군 부리듯 시키는 수혜자들을 만나면 곤란을 겪기도 한다. 수혜노인가정을 방문할 때 사업담당자가 함께 방문하여 노노케어사업의 취지를 설명이 필요함을 시사한다.

“우리가 이래 보니까 이런 게 있어요. 우리는 안마하는 사람인데 어떤 집에 가면 93세 잡순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요. 눈도 이래 나쁘고, 귀도 안 들리고 하는 사람들이 농사를 지어요. 그럼 우리가 물어보죠. 할머니 농사지어요? 아들 줘야 된대요. 아들은 다 살기가 괜찮은데요. 우리가 이래 가면 밭을 매야 되고 풀을 뽑아야 되고, 그런 집이 간혹 있어요.”

“이게 뭐 와전이 됐는지 어째 잘못 되가지고 ‘그 사람들은 돈을 많이 받고 우리집 왔다더라.’ 그러니까 일 할 거를 딱 모아 놨다가 그 사람 시키려고. 그런 사람이 참~답답하더라구요. 답답한 게 아니라 참 곤란해요. 우리는 어느 정도 이런 걸 하러 왔는데.. 이런 고충이 있어요. 저는 사실 눈을 지금 수술한 상태고 땀이 들어가면 안 되거든요. 제가 안과 수술을 해 갖고. 그러는데도 거 가면 일을 해 달라고... 올 여름에 비도 많이 왔지만 더웠는데... 막 땀이 들어와서... 그런 거는 내가 생각해 볼 때는 이 사람들이 인식이 잘못된 거 아닌가 그런...”

“그 집에 가서 우리는 정말로 잘 하고 싶은 마음에 이렇게 하는데, 받아들이는 쪽에서 너희는 정부에서 돈을 많이 받고 하는데 당연히 의무적으로 해야 되지 않는냐 이렇게 대하는 경우도 있었어요. 그러니까 그런 건 구태여 나는 (돈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이 되고, 이 사람들이 받는 사람 쪽에나 해 주는 쪽에나 서로 친해져서 그거야(돈이야) 어떻든 지간에 놔두고 (상관없이) 서로 이렇게 되야 하지, 돈하고 이런 게 결부가 되면 하는 사람 쪽에도 시간만 때우면 된다 이렇게 생각하면 대충 할 수도 있는 거 아니에요?

겨울철 시골어르신을 위한 손길 더 필요

두 분이 이렇게 봉사활동을 하시면서 겨우살이 하실 노인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고 안됐다고 하신다. 그래서 이 할머니는 겨울철에는 시골 어르신들이 노인정에 모여 같이 먹고 자고 하면서 지내고 식사는 자원봉사자들이 당번제로 도와 드리는 것이 필요하다는 평소 생각도 말씀해 주셨다. 농촌노인들이 난방비가 아까워 추운 겨울에도 보일러 한 번 틀지 않고 춥게 지내시기 때문이다.

“이 댁 같이 두 분이 계시는 집은 할머니가 식사를 해서 할아버지 드리고 이러면 참 좋잖아요. 그런데 할머니 혼자 사시는 분들과 할아버지 혼자 사시는 분들은 겨울에 춥기도 춥고, 시설이 잘 되어 있는 쪽도 있긴 있지만, 안 되어 있는 쪽도 있고, 나가다가 미끄러져서 다치는 경우도 있고 이런 경우를 봤어요.”

“노인정 같은 데 시설을 해서 불도 한꺼번에 떼잖아요. 겨울 나는 동안에는. 거기에 이제 말하자면 식사당번 같은 걸 우리가 가서 해서, 그 분들 한 곳에서 지내면 서로 아픈 것도 알고, 같이 모여서 아까처럼 화투 치기를 한다든지 바둑을 놓는다든지 그러면 덜 외롭고 좋겠다, 그렇게 사는 게. 만약에 예를 들어서, 우리가 요양원에 가면 오랜 기간을 같이 살면 내 입맛에 안 맞는 것도 해 주고 그러니까 그런 게 불편해서 집에 오고 싶은 사람도 많이 있잖아요. 그렇지만 겨울에는 날 추워서 일하기도 싫고 그러니까. 거기 가서 같이 살다가 여름에는 다시 가고, 내가 그걸 자꾸 생각해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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