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노무현 대통령이 안희정을 부쩍 찾는다더라." "안희정이 요즘 야권의 유력대선후보 모씨 진영과 접촉이 잦다더라." "안희정이 모종의 2007년 정권 재창출 시나리오를 그리고 있다 하더라."
요즘 정치권에 나돌고 있는 안희정씨(43) 관련 풍문이다.
안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노대통령의 최측근이자,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1등 공신이다. 그러나 불법 대선자금의 책임을 지고 노무현 집권에도 불구하고 음지에서 지내야 했던 불운의 공신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그에 대한 노 대통령의 미안함과 신뢰는 크며, 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라는 외곽에 평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행보는 언제나 정치권 안팎의 비상한 관심사였다.
안희정, 친노 의원들과 교수 등 10여명과 유럽 정당 시찰
이처럼 관심이 큰 만큼 그는 최대한 외부 노출을 자제하고, 특히 정치권 인사들과의 접촉은 그러했다. 그러던 그의 정치권 접촉 사실이 안테나에 잡혔다. 그가 지난 3일 열린우리당 소속 백원우(41), 이화영(45), 윤호중(44), 조정식(44), 최재성(42), 민병두(49) 의원 등과 함께 독일과 프랑스, 네덜란드 등의 유럽 정당을 둘러보고 11일 귀국한 사실이 알려진 것.
백원우, 이화영 의원은 노 대통령의 '우광재'인 이광재 의원이 만든 친노직계 모임인 의정연구센터 소속이고, 김형주 의원은 참정연 리더십센터 연구소장으로서 작년 가을 노무현 대통령이 주창한 '대연정론'의 전도사 역할을 자임해왔던 인물이다. 민병두 의원은 자타가 인정하는 여당 기획통이자 개헌론자다.
일행 중에는 현직 교수 몇 명도 포함되었으나 그들이 누구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들은 7박8일 동안 프랑스 사회당을 방문해 내년 4월 예정된 대통령선거 준비과정과 당원 관리 시스템을 살펴보고, 독일에서는 사민당과 녹색당 간부들을 만나 '독일 대연정'과 당 개혁안 등에 대해 의견 등에 대해 토론을 벌였다고 한다.
정가는 이번 '유럽 여행'을 단순 학습여행으로 보지 않고 있다. 모종의 정치적 함의를 내포한 여행이 아니냐는 관측이다.
유력한 분석 중 하나가 노 대통령이 ‘좌희정’을 통해 이루지 못한 꿈인 ‘대연정’을 실현하려는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이같은 관측은 이들이 둘러 본 유럽 정당 모델이 노 대통령이 ‘대연정론’을 주창하면서 언급했던 모델이라는 데에서 기인한다. 일행들 가운데 전체 일정 중 2~3일만 참가한 뒤 중도에 귀국한 이들이 있다는 점도 그런 관측을 뒷받침하는 예 중 하나로 꼽힌다.
이와 함께 2004년 4월 총선 직후 개헌론을 제기했고, 지난해 당 정치개혁특위 간사를 맡아 독일의 선거구제를 연구했던 민병두, 최재천 의원이 참석한 대목을 놓고 노대통령이 '대연정'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선거구제 개편을 위한 여행이 아니었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차기 대선이 1년여 뒤로 다가오면서 노무현 대통령 당선의 일등 공신인 안희정씨의 역할과 행보에 정가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연합뉴스
참가 의원, "당의 진로 찾기 위한 여행이었을뿐"
안씨와 함께 유럽을 다녀온 한 의원은 13일 오후 <뷰스앤뉴스>와 만나 "언론이 안희정씨가 왜 갔고, 친노직계가 아닌 민병두 의원은 거기에 왜 끼었나에 촉각을 세우는데 이는 근시안적 시각"이라며 정가의 정치적 해석을 전면 부인했다.
그는 "5. 31 지방선거에서 우리당이 패한다는 것은 예견된 것이었고 '어느 정도냐'가 관심의 초점이었다"며 "그러나 예상보다 결과가 참혹했기 때문에 당의 방향과 진로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았고 앞으로도 많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우리당 의원이 국회의장 포함 1백42명이다. 이들의 의견을 하나로 모으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무슨 무슨 회의니 연찬회니 워크숍이니 하는 것으로는 의견 개진은 되겠지만 수렴은 어렵다"며 "자발적 소모임을 통해 의견을 내고, 토론을 통해 대안을 찾고, 또 다른 토론을 통해 합일점을 찾아나가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유럽모임도 그런 '소모임' 중 하나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안희정씨와 민병두 의원이 참석한 것은 예전부터 잘 아는 사이고, 이런저런 토론을 함께 한 일원이기 때문에 같이 간 것"이라며, 안희정씨에게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는 데 대한 불편함을 토로하기도 했다,
안희정의 '미션'은?
하지만 이런 해명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이들은 많지 않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노대통령 지지율이 10%대로 급락하고,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한자리 숫자로까지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최악의 상황에 단지 해외정당 견학 차원으로 간단치 않은 면면의 인사들이 함께 한가로이 유럽여행을 갔을 것이라고 보는 이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욱 안씨는 최근 노사모나 노무현 정권 탄생주역들과 빈번한 접촉을 갖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 더욱 그러하다. 안씨는 지난달 28일 문성근씨가 출연한 영화 ‘한반도’(감독 강우석)의 시사회에도 노 대통령의 후원회장이었던 이기명씨, 명계남 전 노사모 회장, 이창동 전 문화관광부 장관 등 노사모 주역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 정가의 관심을 모으기도 했다.
하지만 정가는 이들 친노세력간 모임 정도를 갖고 '돌파구'를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보지 않고 있다. 작금의 가공스런 지지기반 붕괴를 볼 때 이들만의 결속으로 정국의 주도권을 되찾을 가능성은 거의 전무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한나라당은 최근 당대표 경선에서 박근혜 전대표 진영이 승리를 거두면서 차기대권 경쟁의 주요 교두보를 장악하는가 하면, 박사모 등 박 전대표 지지모임이 과거 노사모 규모를 능가할 정도로 외연을 확장하는 등 착착 차기대선 준비를 해나가는 모양새다.
경선 과정에 박근혜-이명박 진영이 격돌하면서 일각에서 '분당' 가능성을 점치며 분당을 부추기기도 했으나, "분당은 이적행위"라는 보수진영의 공감대가 워낙 강해 '분당론'은 수면밑으로 가라앉은 모양새다.
이때 일차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해법은 한나라당과의 '대연정'이거나, 한나라당의 '분열' 유도다. 특히 정가의 관심은 후자에 쏠리고 있다. "안희정이 요즘 야권의 유력대선후보 모씨 진영과 접촉이 잦다더라"는 풍문에 정가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집권세력의 행정-사법 분야 프리미엄을 바탕으로 고도의 '이이제이' 전술을 구사하기 시작한 게 아니냐는 분석이다.
앞의 '대연정' 가능성에도 정가 일각에선 관심을 갖고 있다. 이들은 특히 최근 북한의 미사일 발사를 계기로 참여정부의 대북정책이 미국의 주문대로 '대북 제제 5자회담'에 참여키로 하는가 하면, 노대통령이 지지층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강력 추진하는 대목을 주목하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보수진영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으로, 노대통령이 연내에 과거 지지층의 거센 저항을 받고 있는 이들 정책을 공론화하면서 열린우리당을 탈당해 보수진영과의 대연정을 도모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의 근거가 되고 있다.
과연 이같은 모종의 관측이 사실이라 할지라도 실제로 성공할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워낙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는 시선이 많고, 두번이나 권력쟁취에 실패한 야권의 절치부심이 대단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기 대선까지 아직 1년반이라는 긴 시간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정가는 긴장을 늦추지 않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오는 8.15때 안희정씨가 사면복권되고, 이를 계기로 안씨가 청와대 입성 등을 통해 정권 재창출 행보를 본격화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하고 있기도 해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