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은 18일 보수주의에는 미래가 없다며 우회적으로 한나라당 등 보수진영을 질타하고 나서 파란을 예고하고 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서울 강남 코엑스에서 열린 '2007 벤처기업대상 시상식'에서 벤처기업을 상대로 한 1백분 강연에서 "정치적 관점에서 기업하기 좋은 나라는 민주주의가 되어야 된다"면서 "과연 한국의 보수주의는 특권과 반칙, 그리고 유착의 문화를 걷어내고 원칙이 통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 강자의 기득권이 아니라 정정당당하게 경쟁하는 기업, 혁신하는 기업을 지원할 것인가. 나아가 시장에서 낙오한 약자에 대해 이들을 교육, 훈련, 평생교육 프로그램에 넣어서 그들을 기업이 필요로 하는 직장인으로 복귀시켜 줄 것인가"라고 반문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시장주의와 진보주의의 차이를 딱 한마디로 얘기하면, 국가의 역할에 대해 구경꾼으로 가급적이면 ‘간섭하지 말라. 강자의 편에 서라’라는 것이 보수주의이고, ‘적극적으로 개입하라’는 것이 진보주의"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보수주의를 정조준, "보수주의는 정의가 없고, 연대의식, 연대의 가치도 없고, 지속가능한 미래에 대한 전략도 찾지를 못했다"며 "보수주의는 오로지 보이지 않는 손이고 성장하면 해결된다는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노 대통령은 반면에 자신의 경제철학을 '진보적 시장주의'로 규정한 뒤 "진보적 시장주의는 소위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할 줄 아는 시장, 시장 외적인 환경을 만들어 갈 줄 아는 시장"이라고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앞으로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한번 해보자"며 "참여정부가 추구해왔고 앞으로 제가 개인적으로 추구해야 될 정치적 노선"이라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또 “여러분 모두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바랄 것이지만, 기업에는 기득권을 가진 시장의 강자도 있고, 창의와 혁신으로 정정당당하게 승부하고자 하는 기업도 있다”며 “빽줄에 매달려 강철 파이프라인 달아놓고 골프나 치고 다니는 기업도 있다”고 일부 기업을 비난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전경련 등이 폐지를 요구하는 출총제와 관련해선 “기업의 불공정행위 규제를 위해 독점, 기업결합, 순환출자 금지와 함께 출총제를 하고 있으며, 이같은 원천봉쇄가 기업 자유에 대한 상당한 침해가 돼서 개별 행위에 대한 규제를 강력하게 강화하면서 출총제를 개선하자는 것이 참여정부의 전략”이라며 “그런데 개별 행위의 규제 강화는 안하고 출총제만 풀라고 해서 얘기가 잘 안되고 있다”고 비판했다.

노 대통령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선 “진보진영 반대하고 보수진영 찬성하는 가운데 한나라당이 ‘노무현 정부가 잘한 것 딱 하나가 한미 FTA'라고 했다. 매번 욕만 먹다가 하나라도 칭찬해 주니 한달 동안 한나라당이 이뻐 보였다”며 “역사적으로 교류하지 않은 문명은 다 소멸했다. 세계역사는 통상하는 국가가 주도해왔다”며 주장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강연도중에 유시민 의원이 쓴 <대한민국 개조론>, 영국 사회학자인 앤서니 기든스가 쓴 <이제 당신 차례요, 미스터 브라운>이라는 책을 읽어보라고 권유하기도 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유 의원에 대해 "아주 일찍 기용하지 못했던 것이 굉장히 아쉬운 사람"이라며 "이 사람을 일찍 기용했더라면 지금 복지정책이 아마 한참 나가고 있을 것이고 시장친화적인 복지정책을 여러가지 새롭게 하고 있을 텐데 정말 아쉽다"고 극찬하기도 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이날 강연과 관련, 정례 브리핑을 통해 "1년전에 중소기업 정책혁신 성과보고회에서 벤처기업인들과 차를 마시면서 언제 한번 특강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이뤄진 것"이라며 "수백명의 벤처기업인은 물론, 미래전략가들에게 대통령의 고민을 전하고 전략적 좌표와 대안을 찾고 함께 고민하자는 취지에서 하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천 대변인은 "노 대통령은 상당히 오래전부터 원고를 준비해왔다"며 "국가와 시장의 바람직한 관계, 진보적 시장주의, 진보적 시민민주주의를 제시한 것이 강연의 골자"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