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의 자부심
비극의 독점과 성역화를 넘어:
5·18과 호남 서사의 보편적 인권 승화를 위한 제언
인류 역사는 폭정과 국가 폭력, 이에 맞선 고귀한 저항의 기록으로 가득 차 있다. 19~20세기의 수많은 비극—나치의 쇼아(Shoah), 제국주의의 식민 수탈, 스탈린 정권의 굴라크, 르완다 제노사이드—은 인류에게 근대 국가권력의 비대화와 인간성 상실에 대한 깊은 경각심을 일깨워주었다. 한국 근현대사 역시 예외는 아니다. 일제 강점기의 수탈과 6·25전쟁의 비극, 그리고 군부 독재에 맞서 민주주의를 이끌어낸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은 대한민국 헌정사의 중요한 이정표이자 민중의 숭고한 희생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역사적 비극을 기억하고 계승하는 방식이 어떠해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치열한 성찰이 필요하다. 노먼 핑켈스타인(Norman Finkelstein)이나 피터 노빅(Peter Novick) 같은 사학자들이 지적했듯, 과거의 희생과 고통이 특정한 정치 세력이나 집단에 의해 자산화되고 성역화되는 순간, 비극은 보편적 인권의 교훈을 잃고 political capitalization(정치적 도구화)의 대상으로 전락할 위험을 안게 된다. 오늘날 한국 정치에서 나타나는 민주화 운동 이력의 전유(專有), 5·18과 광주 서사의 성역화, 그리고 호남 차별 담론이 현존하는 권력이나 특정 정파의 정책적 정당화 수단으로 작동하는 현상은 이러한 역사적 경고를 다시금 직시하게 만든다.
1. 희생의 특수화와 '기억의 독점'이 지닌 위험성
피터 노빅은 『미국 사회와 홀로코스트』에서 과거의 피해자 신분(Victimhood)이 정치적 자산이나 도덕적 우월성의 징표로 소비되는 순간, 사회는 "누가 더 불행했는가"를 겨루는 기괴한 경쟁에 빠진다고 비판했다. 역사적 고통이 특정 집단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절대적 훈장이 될 때, 그 집단은 비판이나 검증을 허용하지 않는 '도덕적 성역'을 구축하게 된다.
한국 정치에서 5·18 민주화운동과 민주화 유공자 예우 제도는 원래 국가 폭력에 의한 희생을 보상하고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는 정의로운 조치로 시작되었다. 그러나 이것이 차츰 특정 정치 세력의 도덕적 정당성을 보증하는 수단으로 고착화되거나, 유공자 지정 절차 및 대상에 대한 합리적 의문 제기조차 '역사 왜곡'이나 '모독'으로 치부되는 성역화 경향을 보일 때 문제가 발생한다.
어떠한 역사적 사건도 현실 정치의 비판을 막아주는 불침번의 면죄부가 될 수 없다. 과거의 숭고한 저항 이력이 현재 저지르는 정책적 오류나 권력 오남용, 독선적 국정 운영까지 덮어줄 수 없듯이, 비극을 '독점적 성역'으로 만드는 것은 비극의 진정한 의미를 퇴색시킬 뿐이다.
2. 과거의 피해 서사와 현재 권력의 불균형
알랭 핑켈크로트(Alain Finkielkraut)는 "희생자의 후손이라는 사실이 자동적으로 도덕적 정당성을 부여하지 않는다"고 일갈했다. 과거에 당한 구조적 불이익이나 차별의 기억이, 현재 확보한 권력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편파적 인사나 정책적 왜곡을 정당화하는 '보상적 논리'로 쓰일 때 도덕적 타락이 일어난다.
영남 패권주의와 산업화 과정에서 호남이 겪었던 역사적 소외와 차별은 엄연한 사실이며 상처로 남아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피해 서사'가 현재 특정 정권이나 세력의 편향된 국정 운영, 인사의 불균형, 특정 지역 중심의 정책 집행을 합리화하는 방패막이로 쓰이는 것은 타당하지 않다. 과거의 피해를 이유로 현재의 불균형을 정당화하는 것은, 또 다른 형태의 특권과 차별을 낳는 악순환을 유발하기 때문이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가 지적했듯, 과거의 악을 기억하는 목적이 특정한 정치 집단의 권력 유지를 옹호하는 데 국한된다면, 그것은 사유의 부재이자 진정한 정의로부터 멀어지는 길이 된다.
3. '닫힌 집단주의'에서 '보편적 인권'으로의 이행을 향하여
5·18 민주화운동과 호남의 항쟁이 인류사에 남긴 진정한 유산은 특정 지역이나 정치 파벌의 소유물이 아니다. 그것은 무자비한 국가 폭력에 맞서 인간의 존엄과 자유를 지키고자 했던 보편적 시민의 항거였다.
따라서 역사적 기억의 이정표는 "다시는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닫힌 피해의식이나 정치적 특권화로 닫혀서는 안 되며, "다시는 '그 누구에게도' 이러한 국가 폭력과 차별이 반복되어선 안 된다"는 보편적 인권과 법치주의의 확립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민주화 운동 이력이나 과거의 희생을 오늘날 권력의 전유물로 삼으려는 모든 시도는 역사적 비극에 대한 배반이다. 과거의 비극에 대한 진정한 추모와 계승은, 그 비극을 성역화하여 현재의 정적을 공격하는 도구로 쓰는 것이 아니라, 그 기억을 보편적 인권과 공정, 그리고 엄정한 자정(自淨)의 교훈으로 삼아 현재의 국정을 성찰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