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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아이디어 뱅크' 신재민

청계천, 두바이 등 아이디어 제공, 박근혜 때문에 불똥도

이명박 대통령당선자 주변에는 언론인 출신들이 기라성같이 많다. 역대 최대 규모다. 모두가 이 당선자 승리에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들 중에서 이 당선자의 신망이 압도적인 인물을 꼽으라면, 대다수 측근들은 이 당선자의 파트너급인 최시중 고문을 제외하곤 신재민 선대위 메시지단장(49)을 꼽는다.

신재민 단장과 이 당선자의 '연'은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보다 깊고 사연도 많다. 신 단장이 이 당선자와 맨처음 만난 것은 그가 <한국일보〉 워싱턴 특파원으로 미국에 나가있던 1990년대 후반이다. 당시 국회의원직을 잃고 미국에서 낙담해 있는 이 당선자와 만나 친분을 쌓았다.

신 단장은 '아이디어 뱅크'로 유명하다. 취재과정에 보고들은 것을 정책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이 있다는 게 주변의 평가다. 그런 대표적 예가 이명박 당선자의 대표적 업적인 청계천 복원이다. 신 단장은 특파원시절 미국의 한 도시가 청계천과 흡사한 복개천을 친환경적으로 복원시키는 것을 보고, 이 당선자에게 이 아이디어를 조언한 것으로 알려진다. 청계천 복원은 이 당선자가 대통령이 되는 데 1등공신 역할을 한 업적 중 업적이다.

신 단장은 지난 2004년 2월 <한국일보> 정치담당 부국장 자리를 그만둔 뒤 같은 해 4월 <조선일보>로 자리를 옮겼다. 그는 <조선일보>에서 기획탐사부장, <주간조선> 편집장을 지냈다. 이 기간에도 그는 당시 이명박 서울시장과 자주 만나 조언을 하는 등 두터운 친분을 유지해왔다.

그는 <주간조선> 편집장 재직시절이던 지난 2005년에 당시 국내에서 생소한 인물이던 두바이의 왕세자 셰이크 모하메드를 표지 인물로 다루는 등 남다른 식견을 발휘했다. ‘두바이의 CEO’라 불리는 셰이크 왕세자는 당시 2천명의 인재를 수입해 국가 개조의 주력군으로 활용하며 두바이의 기적을 진두지휘하고 있었고, 이명박 당선자도 두바이에 큰 관심을 보이며 집권시 자신의 개혁개방 모델로 두바이를 설정했다.

신 단장은 그러다가 지난해 한나라당 경선이 물밑에서 본격적으로 치열해지면서 이 당선자와 친분 때문에 불똥을 맞았다. 박근혜 전대표측이 <조선일보>에 대해 경선 중립을 요구하면서 우회적으로 신 단장 문제를 거론한 것. 이명박 당선자와 자주 회동할 정도로 친밀한 신 단장이 <조선일보>에 재직중이라는 것 자체가 <조선일보>의 '중립'을 의심케 한다는 것이 박 전대표측 항의의 요지였다.

불똥을 맞은 신 단장은 고민끝에 그해 10월말 <조선일보>에 사의를 표명했고, 사측은 이를 수용해 그해 11월1일 출판부국장으로 승진 발령하는 예우 형식을 빌어 그의 사의를 받아들였다. 그해 말 그는 이명박 캠프 '안국포럼'에 합류, 제 돈을 쓰며 '무급'으로 경선과 대선기간중 이 당선자의 승리를 위해 동분서주했다.

대선때 그가 맡은 공식적 역할은 이 당선자의 각종 연설문과 인터뷰, 축사, 기고 담당. 하지만 그는 이같은 역할 외에 기자출신으로 언론, 정치권, 법조계 등에 맺은 광범위한 인맥을 바탕으로 정보를 수집, 이 당선자에게 직보하는 역할도 함께 한 것으로 알려진다. 그는 특히 '지독한 경선'이었다고 평가받는 치열했던 경선기간때는 매일 새벽 이 당선자의 가회동 자택을 찾아 일일보고를 했던 핵심측근이었다.

신 단장은 대선승리후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이 당선자의 용인술에 대해 “의심 나는 사람은 안 쓰지만, 한 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 당선자는 직선적인 성격의 신 단장에 대해 몇차례 쓴소리도 한 것으로 전해진다. 그러나 "한번 쓴 사람은 의심하지 않는다"는 신 단장 전언처럼 이 당선자의 그에 대한 믿음은 변함없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선대위에 이어 인수위원회에서도 메시지-공보팀장의 중책을 맡았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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