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 의원들, 사실상 '항명' 사태
'4대강 사업' '부자 감세' 질타, "이러다간 다 죽는다"
한나라 의원들 초계파적으로 '4대강 사업' 질타
7일 오후 국회 귀빈식당에서 열린 내년도 예산편성 당정회의에는 이례적으로 많은 한나라당 의원들이 참석했다. 당초에는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과 한나라당 정조위원장들만 참석할 예정이었으나 의원들이 대거 참석을 원하면서 회의 규모가 확대됐고, 여기에 무려 50여명의 의원들이 참석했다. 임시국회후 다수 의원들이 휴가를 떠난 점을 감안하면 대단히 높은 참가율이었다.
단순히 참가는 한 게 아니었다. 16명의 의원들이 발언권을 얻어 과도한 '4대강 사업비' 때문에 지역 SOC예산, 민생예산이 초토화되고 있는 어이없는 상황을 질타했다. 성토 대상은 윤증현 기획재정부장관이었으나, 내용상으론 4대강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항명' 성격이 짙었다.
더욱 의원들 사이에선 친이, 친박, 중립파 등 구분도 없었고 지역 구분도 없었다. 모두가 한목소리로 정부를 질타하고 나섰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지역민심의 대규모 이반으로 향후 치러질 재보선, 지방선거는 말할 것도 없고 차기 총선도 대패할 것이란 위기감이 짙게 깔려 있었다.
이명박 서울시장 시절 정무부시장을 지낸 안국포럼 출신의 핵심측근인 정태근 의원은 회의에서 “낙동강 유역사업은 4년차(2012년 목표연도)가 아닌 5~7년, 10년식으로 더욱더 긴 연차로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면서 “대신 10조원이면 할 수 있는 영산강 등 나머지 사업부터 예정대로 빨리 끝내면 성공할 수 있다”며, 이 대통령이 임기 내 4대강 사업을 끝내려 하는 조급함을 질타했다.
정진섭 의원도 “4대강 살리기 예산이 다른 예산에 구름을 가져온다”면서 “내년, 내후년 예산에 집중 편성하지 말고 민간 투자를 유치한 뒤 장기간에 걸쳐 갚아나가는 방안을 검토하라”며 정태근 의원 주장에 동조했다.
인천이 지역구인 친박 이경재 의원은 “‘사회간접자본(SOC)과 4대강은 별도’라더니 지난 정부 때부터 매년 증가해온 전국 도시철도 사업 예산 상한액이 이번에 50% 이상 삭감됐다”며 “재정부 스스로 ‘SOC 선도사업’으로 선정한 인천도시철도 2호선 사업마저 깎는 이유가 뭐냐”고 따졌다.
경남 남해-하동이 지역구인 여상규 의원은 “섬진강변 자전거도로 예산으로 191억원을 책정했는데 정작 이 지역에 필요한 국도19호선 예산은 줄었다”면서 “본말이 전도됐다”고 비판했다.
경기 성남이 지역구인 신상진 5정조위원장은 “복지 예산이 지난해에 비해 3조원이나 줄었다"며 "기초수급대상자 수도 줄고, 기초수급 지원액 인상률도 물가상승률보다 낮다”면서 4대강 사업으로 복지가 급감하는 문제점을 지적했다.
경북 김천의 이철우 의원도 “4대강 때문에 복지예산이 줄어선 안된다”며 “지역에서는 ‘작년 100억원이던 예산이 올해는 왜 90억원이냐. 4대강 때문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고 가세했다.
'부자 감세' 놓고도 충돌
내년으로 예정된 2차 법인세 및 소득세 인하를 놓고도 의원들의 불만이 폭발했다.
서울 관악의 김성식 의원은 "내년에 세율을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감세정책을 포기하는 것은 아니고, 현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치적으로도 부담이 없다"며 2차 인하 유보를 촉구했다.
서울 강서의 김성태 의원 역시 “작년부터의 무리한 감세정책 결과가 세수부족으로 나타나고 있다. 친서민정책 관련 일들이 많이 늘었는데, 서민과 민생을 위한 예산 뒷받침이 되겠느냐”면서 “내년도 법인세·소득세, 고소득 자영업자를 위한 2차 감세가 예정돼 있는데 이를 유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의 질타에도 정부는 '4대강 사업'과 '부가 감세'에 관한 한 '언터처블'이란 입장을 고수했다. 자신들 힘만으로 어찌 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문제의 최종해결자는 이 대통령이나 이 대통령 생각에는 전혀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져, 이날 항명성 반발은 찻잔속 태풍으로 끝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그러나 지금 한나라 의원들이 피부로 느끼고 있는 위기감은 대단하며, 향후 치러질 선거에서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날 경우 2차, 3차의 항명 사태는 계속 벌어질 전망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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