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을 방불케 한 경찰의 원천봉쇄를 뚫고 한미FTA저지 범국민운동본부(범국본)의 주최로 29일 서울을 비롯한 전국 8개 주요도시에서 ‘한미FTA’ 반대 2차 총궐기 대회가 열렸다. 경찰은 예고한대로 1만5천여명의 병력을 동원해 사전봉쇄에 나섰고, 시위대는 집회장소를 바꿔가며 산발적인 도심집회로 이에 저항했다.
이날 경찰은 전국 곳곳에서 시위대의 이동마저 제한하고 일반 시민을 연행해가는 등 과잉대응으로 일관했다. 지역농가에서는 경찰이 마을까지 진입해 농민들의 이동을 막는 일까지 벌어졌고 경기 화성 기아자동차 공장은 공장문을 나서는 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일 것으로 예상했던 서울지역 집회는 경찰이 집회 장소인 서울시청 앞 광장을 버스로 막아 시위대의 접근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경찰의 지역봉쇄를 뚫고 상경한 농민 시위대 7백여명은 서울역 광장에서부터 경찰과 대치했고 사전 집회 허가가 떨어졌던 광화문 동화면세점 앞의 민주노총 서울본부 결의대회도 경찰의 방해로 무산됐다.
서울지역 집회 참가자 2천5백여명은 오후 4시 30분 기습적인 을지로 4거리 점거 후 본대회를 시작하려했지만 경찰의 진압으로 무산됐다.ⓒ최병성 기자
경찰 전국에서 상경 농민.노동자 차단
역시 사전에 허가됐던 민주노총의 ‘고 하중근 열사 정신 계승, 살인 경찰 책임자 처벌 촉구 총파업투쟁 승리 결의대회’도 ‘범국본 관계자가 참가할 수 있다’는 이유로 불허하려다 노총 측의 항의로 약식집회만 허용하기도 했다.
서울지역 집회는 오후 4시 30분께 도심 곳곳에 흩어져있던 시위대 1천여명이 모인 을지로에서 기습적으로 시작됐다.
시위대는 평화시위 보장을 촉구하며 을지로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사이 8개 차로를 기습 점거하고 가두시위에 돌입, 경찰과 3시간가량 대치했다.
이후 서울역에 고립됐던 농민 시위대와 청와대 인근 청운동사무소에서 사전대회를 마친 노동자들이 합류해 6시께 시위대는 2천5백여명으로 불어났다.
이들은 오후 5시께 2차 총궐기대회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뒤늦게 도착한 경찰이 곧바로 진압에 나서면서 무산됐다.
서울지역 2천5백여명, 을지로 4거리 점거 기습시위
시위대는 1시간 넘게 경찰과 대치하며 ‘평화 집회 보장’, ‘노무현 심판’ 등의 구호를 외치며 저항하다 6시 30분께 반대편 한국은행 4거리쪽으로 이동하며 가두집회를 벌였다.
이날 경찰은 합법적으로 신고가 완료된 집회장소마저 사전통보없이 봉쇄했다.ⓒ최병성 기자
한 집회 참가자가 경찰과의 대치 상황에서 '한미FTA저지' 플랫카드를 들어보이고 있다.ⓒ최병성 기자
가두행진은 뒤늦게 상황을 파악한 경찰이 한국은행 4거리 앞에 병력을 배치하면서 중단됐고 이후 30여분간의 대치가 이어지는 과정에서 일부 대오는 경찰과 충돌했다.
한국은행 소공동 별관 앞에서는 경찰과 시위대가 충돌해 부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불과 이틀 전 인권위로부터 ‘방패의 공격적 사용은 과잉진압’이라는 지적을 받은 경찰이었지만 이날도 어김없이 방패를 세워 찍는 광경이 연출됐다.
이 과정에서 니혼TV네트워크코포레이션 소속 기자가 경찰의 방패에 찍혀 좌측이마가 찢어지는 부상을 입었고 한 집회 참가자에게는 경찰 서너명이 달려들어 방패를 휘둘러 지나가던 시민들조차 ‘방패는 안된다. 사람이 죽는다’며 비난하기도 했다.
경찰 방패공격으로 부상자 속출
시위대는 오후 7시께 경찰과의 대치를 유지하며 명동성당 앞으로 이동, 촛불문화제를 열고 8시께 이날의 모든 행사를 마무리했다.
경찰은 이날 새벽부터 전국의 주요 고속도로 톨게이트 등 74개 길목과 지방도로 16곳 등 1천2백52곳에 경찰병력 3백83개 중대, 1만4천여명을 배치해 검문검색을 실시, 농민과 노동자들이 탄 차를 막아섰다.
범국본과 민주노총에 따르면 이날 서울을 비롯한 대구, 창원, 광주, 전주, 부산, 울산, 제주에서 1만명이상이 한미FTA저지 집회를 열었고 대부분 약식집회와 거리 선전전을 중심으로 진행됐다.
한국은행 4거리 앞에서 대치하고 있는 시위대와 경찰.ⓒ최병성 기자
명동성당 앞을 가득 메운 2천5백여명의 집회 참가자들.ⓒ최병성 기자
다만 전북지역 집회가 열린 전주에서는 1천2백여명의 시위대가 전주 관통로 사거리에서 충돌, 부상자와 연행자가 속출했다. 범국본에 따르면 이날 경찰은 수 차례 강제진압을 시도, 9명의 부상자와 5명의 연행자가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은 일반시민 한 명에게도 폭력을 행사한 후 연행해갔다.
범국본 "군사독재에서나 볼법한 막가파식 탄압"
범국본은 이날 경찰의 집회 원천봉쇄와 이동의 자유제한을 “경찰계엄사태에 준하는 막가파식 탄압”이라며 강하게 비판했다.
범국본은 “집회.결사의 자유는 헌법에 명시된 권리로 경찰이 자의적인 법적용을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라며 “경찰이 군사독재시대에나 볼 수 있었던 원천봉쇄 등 불법탄압을 자행한다면 우리 역시 군사독재시대 방식의 저항으로 대응할 수 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이날 경찰은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가 집회신고를 완료한 동화면세점 앞 인도, 세종문화회관 앞 인도, 국가인권위원회 앞 인도, 종묘공원 등 4군데 집화장소를 당일 오전 집회금지통보 없이 원천봉쇄했다.
한미FTA저지 3차 민중총궐기는 오는 12월 6일 서울시청 광장에서 열릴 예정이지만 경찰은 또 다시 원천봉쇄에 나설 것으로 보여 추후 일정은 불투명한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