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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와 전체주의는 적이 아니라 형제다

양산도
조회: 184

-= 신자유주의와 전체주의는 적이 아니라 형제다 =-



이 세상은 이러한 식자들에 의해 복잡(複雜)하고 미묘(微妙)해 진다.

인류의 삶에서 전체주의(全體主義)다, 혹은 신자유주의(新自由主義)다

라고 하는 것들은 힘 있는 자들이 마치, 숲 속의 맹수들에 삶과 같이



“네”영역, “내”영역이라며 구분진 것에 불과 한 것으로, 불완전한 인

류의 삶이 낳은 지극히 숲속동물의 하등적(下等的) 사고에 의함이나,

진정한 의미에 완전한 인류가 되려면, 그 같은 사고의 틀을 마치, 알



에서 부화(孵化)하듯이 알을 깨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건 곧 “양종식

(梁種植)”이 주장하는 “생로병사(生老病死)”라고 하는 그릇된 상식이

깨지고, “기업경영(企業經營)”이라고 하는 인류의 기본적 삶에 기초



의 틀이 없으며, 모든 생물들을 살육하고 파괴하던 무기가 “무용지물

(無用之物)”이 될 수밖에 없는 “홍익주의(弘益主義)”라고 하는 새 삶

의 지향(志向)에 있다. 그렇다면 왜? 과거에는 그와 같은 생각을 하



지도 못했을까? 그에 대한 해답은 간단하다. 과거에는 오늘과 같이

모든 문물들이 발달의 임계점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시대는 모든 문물 들이 저마다 발달에 정점(頂點)을 찍음으로 해서,



무엇이던 마음가짐 하나로 다 이뤄낼 수 있는 시대이기에 이제까지

는 감히 신(神)들의 영역이라고 치부하던 “생로병사 (生老病死)”라고

하는 것을 필두로 하여 일자리는 기업이 만들어 낸다고 하는 어리석



음을 훌훌 떨쳐 버리고 진정으로 온전한 인류로 거듭나야 할 때이며,

이를 위하여 이 지구상에 조그마한 구성을 하고 있는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이 일 만년의 유구한 세월에 갈고 닦여진 민족성을 가감 없이



표출하여 침체일로에서 신음하는 많은 인류들을 구해내는 진정한 스

승으로의 길을 선대(先代)의 기개(氣槪)와 기백(氣魄)으로 만 천하에

온전하게 들어내야 할 절호의 시기이자 기회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



메시아주의, 극단주의 공유하며 인민, 자유,

진보 균형 깨뜨리는 양자는 모두 ‘민주주의의 탈선’

출처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구조주의 문학이론가 츠베탕 토도르프 1939년에 불가리에서 태어난 그는 24살 때 프랑스로 유학을 갔고, 이후 49년째 거기서 살고 있다. 프랑스 국립고등연구원 명예원장으로 문명충돌과 휴머니즘 사상을 연구하고 있는 그는 올해 출간한 <민주주의 내부의 적> 에서 이렇게 회고했다.

“나는 20여 년 동안 공산주의체제 하에서 살았다. 가장 깊이 각인된 기억은 일상생활에서 겪은 수만 가지 불편이나 지속적인 감시, 자유가 결여된 상황이 아니다. 나는 무엇보다도 모든 악이 선의 이름으로 실현되고 숭고한 목적이라며 정당화 되는 역설을 뼈저리게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조국을 떠났고, 그러던 서방세계의 자유와 민주주의에 감격했다. 그러나 현실 공산주의체제가 무너진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유럽은 인종차별주의와 포퓰리즘이 판치고 극우정당이 무서운 속도로 세를 불리고 있다.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광풍 속에 양극화와 대외침략으로 얼룩진 미국도 사정이 크게 다르지 않다. “악이 선의 이름으로 실현되고 숭고한 목적이라며 정당화 되는”과거의 역설이 지금 서방에서 고개를 쳐들고 있는 것이다.

위기는 어디에서 비롯됐는가? <민주주의 내부의 적> 은 제목 그대로,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 있다. 그 내부 적의 사상적 계보를 고대부터 현재까지 추적하는 게 이 책의 줄기다. 토도로프는 인민, 자유, 진보를 민주주의의 핵심 구성요소로 보고 위기는 이 삼자의 균형이 깨질 때 시작 된다고 얘기한다. 극단적 자유주의=신자유주의 체제와 예전 공산주의 체제도 그 균형이 깨진 상태다. 그리고 그 둘은 닮은 점이 많다고 토도로프는 주장한다. 자연과 역사과 역사에 대한 법칙에 대한 맹목적인 믿음과 주어진 목표에 도달할 것이라는 확신, 이 두 가지가 결합된 것이 바로 공산주의자와 신자유주의자에게 공통된 과학주의의 특징이란다.

“몇몇 특징을 보면, (신)자유주의는 전체주의의 적이 아니라 형제다... 신자유주의 기획은 우리를 한 극단주의에서 다른 극단주의로, 곧 전체주의적인 ‘국가우선’에서 극단적인 ‘개인우선’으로, 자유를 죽이는 체제에서 사회를 죽이는 체제로 이행시켰다.”

<민주주의 내부의 적> 은 처음부터 펠라기우스라는 사람에 주목한다. 그는 4세기 초 기독교가 로마 국교로 공인된 뒤 아우구스티누스 주교와 기독교 역사상 가장 종요한 논쟁 가운데 하나를 벌인 사람이다. 펠라기우스에 따르면 인간의 행동은 전적으로 자신에 의지에 달려 있으며, 신과 비견할 만한 능력을 행사 하면서 자율적으로 자신의 창조자가 될 수 있다. 이에 비해 힘은 이성이나 의지가 아니라 신앙에서 나오며 구원은 인간의 자유의지가 아니라 신에 은총에 기댈 수밖에 없다는 게 아우구스티누스의 논리다. 기독교는 아우구스티누스를 전통으로 삼았으나 이단이 된 펠라기우스 사상도 살아남았다.

18세기 프랑스 계몽주의 대두와 한께 펠라기우스 사상은 기독교 천년왕국주의, 메시아주의와 결합한다. 혁명가들은 법을 통해 새로운 사회, 새로운 인간을 만드는 걸 목표로 삼았다. 이를 위해선 폭력사용도 정당화 됐으며, 공포정치는 우연이 아니라 혁명적 기획에 따른 것이었다. 나폴레옹군의 대외침략도 “고등한 인종이 열등한 인종을 문명화 하고 도처에 계몽주의 정신을 전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정당화 했다.

여기까지가 정치적 메시아주의의 첫 번째 흐름이다. 두 번째 흐름은 테르미도르 반동 이후 생시몽, 푸리에, 프루동, 바쿠닌 등을 거쳐 마르크수와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에 이르는, 더욱 급진화한 정치적 메시아주의, 곧 공산주의의 등장이다. 그리고 세 번째 흐름이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과 함께 등장하는 신자유주의다.

메시아주의, 긴자유주의, 포퓰리즘 등은 모두 “민주주의의 탈선”이다. 토도로프는 그 치유책을 ‘정치적 다원성’에서 찾는다. 그는 확실한 해결책이 있다고 보진 않지만, 절망하지도 않는다.

한승동 기자


sdhan@hani.co.kr.





위의 기사는 도서관에서 우연히 보게 된 기사를

일말의 양해 없이 본인에 의지한바 대로

펌 한 것으로, 이에 본인의 앎을 덧입힌 것이다.



弘 홍 모든 국민을 차등(差等) 없이 평등하게

益 익 이로움을 안겨 줌으로 배려(配慮)하는

主 주 주인정신으로 상대(相對)를 대하도록

義 의 바른 마음가짐을 생성(生成)케 하여



天 천 하늘마저 시샘을 내야 할 제도(制度)로

下 하 밑으론 힘과 재물의 편차(偏差)가 없는



之 지 보편행보에 참 지식사회 개장(開場)을



大 대 큰 목적으로 전 국민들이 동참(同參)하여

本 본 참 인류에 삶의 근본(根本)이 되는 제도.





나는 每日, 오늘도 下記같이

나 梁 種 植은 大韓民國 大統領으로

世界를 完全히 平定하고

人類를 宇宙에 스승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고 念願을 담고, 또 주어 담으며, 呪文처럼 뇌까린다.



-=략=-(2012/07/26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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