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언석 "YS '5대 요구'도 수용 안됐다". YS '23일 단식투쟁'은?
병원에 강제입원된 뒤에도 목숨 건 단식. 전두환의 회유도 일축
송언석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에서 "1983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 투쟁 당시에 전두환 정권은 김영삼 전 대통령의 5대 민주화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며 "하지만 2026년 현재, 그 어느 누구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을 실패한 단식이라고 하지 않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단식이 당시 야당과 민주화 세력을 결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고, 그 힘이 결국 1987년 민주항쟁으로 이어지면서, 민주세력 집권의 길이 열리게 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동혁 대표의 단식 투쟁은, 그런 점에서 단지 ‘쌍특검 수용’만을 요구하는 투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쌍특검’이 상징하는 이재명 정권의 위선과 거짓, 부도덕을 국민들께 고발하는 처절한 투쟁이었다. 거짓과 부패의 이재명 정권에 맞선 범국민 대투쟁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었다"며 장 대표 단식을 치켜세웠다.
YS의 23일간 단식은 어떠했나.
전두환 신군부에 의해 강제로 정계은퇴 당한 뒤 상도동 자택에서 연금생활을 하던 YS는 광주 민주화운동 3주년이 되는 1983년 5월 18일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통해 언론 통제의 전면 해제, 정치범 석방, 해직 인사들 복직, 정치활동 규제 해제, 대통령 직선제 개헌 등 ' '민주화 5개항'을 요구하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다음날 상도동계 '민주산악회' 인사 70여 명도 동조단식에 들어갔다. 전두환 정권의 언론통제로 YS 단식 돌입 소식이 알려지지 않자 손명순 여사는 외신들에 일일이 전화를 걸어 외신이 보도하게 했고, 가신들은 유인물을 만들어 골목에 살포했다.
단식 8일째 YS의 계속된 단식으로 몸무게가 14kg이나 빠지고 건강이 차츰 악화되자 전두환 정부는 상도동 자택으로 사복경찰과 정보요원을 투입, YS를 강제로 서울대학교 대학병원에 입원시켰다. YS는 그러나 강제입원후에도 치료를 거부하고 단식을 이어갔다. 단식이 열흘을 넘자 다급해진 전두환은 권익현 민정당 사무총장을 보내 단식 중단을 권유하며 '정부가 모든 비용을 부담하는 가족과의 장기간 해외여행 허용' '자택연금 해제' 등의 떡고물을 건넸으나 YS는 "씰데 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단식 17일째인 6월 4일, 병원 측은 더 이상 단식을 계속할 땐 생명에 지장을 줄 수 있다고 경고했고, 이날 김수환 추기경도 김영삼을 방문하여 단식을 중단할 것을 권유했다.
단식 23일째인 6월 10일, 함석헌옹, 윤보선 전 대통령, 강원룡 목사, 문익환 목사 등 재야 원로인사들의 간곡한 권유에 단식을 중단하며 "나는 부끄럽게 살기 위해 단식을 중단하는 것이 아니다. 앉아서 죽기보다 서서 싸우다 죽기 위해 단식을 중단하는 것이다. 나의 투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이제 겨우 시작을 알렸을 뿐"이라는 대국민 성명을 발표했다.
자택연금에서 해제된 YS는 단식기간중 상도동 인사들이 결성한 '민추협'을 전진기지로 왕성한 반전두환 투쟁을 벌여 1987년 민주항쟁의 디딤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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