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선대위의 공성진 의원이 마침내 한나라당내 최대 금기어인 "분당"을 입에 담았다. "분당"이란 단어는 이명박-박근혜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는 와중에도 양측 모두 언급을 기피했던 금기어 중 금기어. "분당"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 자체가 한나라당 지지층에겐 엄청한 충격과 배신감을 던져주며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기 때문이다.
공성진 마침내 한나라당 금기어 "분당" 말하다
공성진 의원은 그러나 1일 이명박 후보와 북한산 산행을 마치고 내려오던 중 분당 가능성을 묻는 기자에게 "박근혜가 후보가 된 후의 사태는 끔찍하다"며 "박근혜가 후보가 되면 이재오 최고위원을 중심으로 수도권 의원들이 분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공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파문을 불러일으키자 "그런 뜻이 아니었다"고 애둘러 해명했으나, 이미 말은 입밖에 나온 뒤. 거센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공 의원은 원래 직선적 화법으로 유명하다. 따라서 그의 말도 자신의 해명대로 큰 뜻 없이 우연히 나온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가볍게 치부하기엔 그의 위치가 그렇지 않다. 그는 이명박 선대위의 서울지역 공동선대위원장이자, 한나라당 아성인 강남을 지역구 의원. 요컨대 '이명박 아성'인 서울의 선거총책이다.
따라서 최근 이명박 지지율이 크게 흔들리는 와중에 나온 수도권 이명박계의 분당 가능성 발언은 결코 말실수로 치부할 성질의 것이 아니다. 자신을 포함한 수도권 이명박계가 느끼는 위기감과 분노 등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한나라당 분당 가능성을 언급해 파문을 불러일으킨 이명박계 서울총책 공성진 의원. ⓒ연합뉴스
2가지 한나라당 분당 시나리오 중 첫번째, '수도권 이명박계 탈당'
한나라당 분당 가능성이 맨처음 거론된 것은 연초 김유찬 폭로 등으로 검증공방이 시작되면서였다. 당시 압도적 우위로 선두를 질주하던 이명박계의 반발은 거셌고, 실제로 이재오 최고 등이 중심이 돼 "차라리 당을 깨고 따로 만들자"는 강경론이 팽배했다.이명박 후보는 그러나 장고끝에 한나라당에 남기로 하고 후보등록을 했다. 이로써 경선 결과가 어떻게 나오더라도 한쪽이 경선에 불복, 독자출마할 수는 있는 길은 차단됐다.
그러던 중 이번에 공성진 의원이 "분당"을 언급하고 나선 것이다. 이명박계 서울총책인 공 의원이 지나가는 말로라도 "분당"을 언급했다는 자체가 최악의 사태인 '이명박 패배' 가능성을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증거다. '이명박 대세론'이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증거인 셈.
실제로 이명박-박근혜간 치열했던 '6월 전쟁'의 결과 이명박 대세론이 흔들리자, 정가에서는 노골적으로 한나라당 분당 시나리오가 나돌기 시작했다.
그런 대표적 예가 손학규 전 경기지사측의 잇따른 '한나라 분당' 촉구 발언이다. 손 전지사는 지난달말 독자신당 창당 의지를 밝히면서 "한나라당 의원들을 많이 데려올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어 손학규계 정봉주 의원은 "경선후 한나라당 의원 3분의 1 정도가 탈당해 신당에 합류할 것"이라고 한걸음 더 나아갔다.
손학규 진영이 생각하는 최상의 국면은 이명박 후보가 민심에선 앞서면서도 당심에서 밀려 박근혜 후보에게 패하는 케이스다. 그러면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던 수도권 의원들이 차기 총선 공천에서 배제될 것을 우려해 대거 탈당하고, 그러면 이들을 상대로 '이삭줍기'를 해 세를 크게 키워 연말대선에 도전하겠다는 속내인 셈이다.
공성진 의원의 이번 탈당 발언은 이같은 손학규 진영의 그림이 마냥 황당한 것만은 아님을 입증해 주고 있다.
두번째 시나리오, 'TK 박근혜계 탈당'
정가에서 거론되는 두번째 한나라당 탈당 시나리오는 'TK 박근혜계 탈당' 시나리오다. 현재 박근혜 후보는 TK(대구경북)에서 상대적 우세를 보이며 TK를 '7월 대역전'의 발판으로 삼으려 하고 있다.
따라서 8.20 경선에서 패하면 유승민 등 TK지역 박근혜계 의원들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다. 박근혜 후보는 경선에서 지더라도 깨끗하게 패배를 시인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러나 TK지역을 비롯한 상당수 지역의 박근혜계 의원들의 사정은 다르다. 이들은 내년 총선때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라는 극한적 위기감에 휩싸이고, 이럴 경우 정계복귀를 암중모색중인 이회창 전총재와 결합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TK 박근혜계 탈당' 시나리오다.
분당론까지 공개 언급될 정도로 이명박-박근혜 갈등은 극으로 치닫고 있다. ⓒ연합뉴스
보수진영 유권자가 최종 결정자
하지만 과연 정가에서 나도는 이런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지는 미지수다. 정권교체를 바라는 보수진영의 목소리가 워낙 높기 때문이다. 이들 보수진영은 "분당"이란 단어 자체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인다. 과거 두번의 대선 패배도 결국 "분열"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론조사전문가들은 이명박-박근혜 경선전쟁이 아무리 치열하더라도 8.20 경선에서 그 결과가 나오는 순간 승리한 쪽으로 지지자들이 쏠리면서 분당 가능성 자체를 원천봉쇄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하기도 한다. 당연히 메이저 보수언론들도 이런 쪽으로 여론을 몰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들은 대선 못지않게 자신의 밥줄이 달린 총선을 절대시하는 만큼 일정한 부분의 이탈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 이탈 폭이 어느 정도가 될 것인가가 관건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