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2004년 6월 "장사는 열배 남는 장사도 있고 열배 밑지는 장사도 있다"며 열린우리당의 총선 공약을 백지화시킨 지 2년 3개월만의 입장 전환이다.
"분양원가 공개는 나도 거역할 수 없는 흐름"
노 대통령은 28일 밤 방영 예정인 'MBC 100분 토론'과의 인터뷰에서 이같은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지난 26일 인터뷰를 사전녹화했었다.
노 대통령은 인터뷰에서 분양원가 공개 여부에 대한 질문을 받자 "지금은 내가 반대할 수가 없다. 왜나면 많은 국민이 그렇게 믿고 있고, 많은 시민사회에서 그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양원가 공개 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원가 공개에 대해서 좀 신중하자'며 오히려 반대 의견을 표명했었는데, 지금은 국민이 제 생각과 달리 공개하는 것이 좋겠다고 바라니까 그 방향으로 가야 되지 않겠나.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라고 본다"면서도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 대통령은 공공부문뿐 아니라 민간부분까지 세부적인 원가 공개를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대해 "이제 반대할 수 없게 됐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것을 하라고 지시할 형편도 아니다. 가급적 많이 공개하는 쪽으로 하겠다"고 답했다.
노 대통령은 분양원가 공개시 민간주택 공급분이 줄어들 수 있다는 반대론자들을 의식한 듯, "주택공사라든지 토지공사라든지 이런 쪽에서 대대적인 주택 공급을 할 수 있는 그런 계획을 지금 세우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국민여론에 항복, 분양원가 공개 방침을 밝힌 노무현 대통령. ⓒ연합뉴스
노대통령, 2년3개월만에 국민에 백기항복
노 대통령의 분양원가 공개 발언은 2년3개월만에 국민여론에 백기항복을 했음을 의미한다.
아파트값 폭등이 심각한 사회문제였던 2004년 4월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은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여론조사 결과 90%의 국민이 분양원가 공개에 찬성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은 그러나 총선에서 열린우리당이 과반수 이상을 차지한 뒤인 2004년 6월9일 민주노동당 당선자들을 청와대에 초청한 만찬석상에서 "아파트 분양원가는 개혁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며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노 대통령은 이어 "이것은 경제계나 건설업계의 압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라며 "장사하는 것인데 10배 남는 장사도 있고 10배 밑지는 장사도 있고, 결국 벌고 못벌고 하는 것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지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 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고 강변했다.
노 대통령은 또 "열린우리당은 내 생각을 모르고, 또 내가 정책에 참여하지 않으니까 원가공개를 공약했는데 다시 상의하자"며 열린우리당에 대해 총선 공약 포기를 요구한 뒤, "이는 결론이 어디로 나더라도 개혁의 후퇴가 아니라 대통령의 소신"이라고 거듭 분양원가 공개 불가 입장을 밝혔다.
유시민-임종석 등 충성경쟁도
노대통령 말이 전해지자, 유시민-임종석 의원 등 친노계는 앞다퉈 노대통령 입장을 지지하고 나섰다.
유시민 의원(현 보건복지부장관)은 며칠 뒤인 9월15일 한 인터넷신문과 인터뷰에서 "원가공개는 개혁이고, 원가연동제는 반개혁이라는 식의 논란은 집값 안정에 아무런 도움이 안된다"며 "원가에는 건축비뿐 아니라 홍보비용이나 마케팅 비용도 포함되기 때문에 파악이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분양원가를 공개할 경우 원가를 얼마로 산정할 것인지, 업계가 공개한 원가를 그대로 인정할 수 있을 것인지 등을 놓고 또다른 논란에 휘말리는 부작용이 크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임종석 의원도 13일 TV프로그램에 출연, "분양원가 공개와 원가연동제가 방향이 다르다면 큰 문제가 되겠지만 오십보냐 칠십보"라며 "원가연동제로도 20~30% 정도 아파트값이 내려갈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당시 친노계와 건교부 등은 분양원가 공개 대신 원가연동제를 대안으로 주장했었다. 결국 노대통령 지시에 따라 열린우리당은 분양원가 공개 공약을 백지화했고, 원가연동제를 부분 도입했지만 아파트값 폭등은 더욱 극심해졌다.
당연히 노대통령을 탄핵에서 구했줬다가 배신당한 국민의 분노로 지지층이 대거 이탈하면서 노대통령과 열린우리당 지지율은 수직하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