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장학회와 김지태 엿보기
정수장학회와 김지태 엿보기
촌철유감
5.16 군사혁명 당시 김지태씨는 부산의 대표적인 기업가였습니다. 당시 다른 대기업인도 마찬가지 였지만 그도 부정축재와 외화유출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재산 중 일부인 부일장학회, 부산문화방송 등 지금의 정수장학회의 모체가 된 재산을 함께 헌납하였습니다.
그러나 강제헌납은 정황상 그렇다는 것이지, 그가 쓴 글을 보면 “내가 운영하던 부일장학회란 공익재단이 5.16 장학회의 공영제 운영으로 넘어가서 당초 기약했고 목적했던 사회봉사라는 이상이 확대되고 또 영원할 것이므로 나는 이와 같은 운영을 진심으로 환영하며 만족스럽게 생각한다”는 말로 미루어 고인의 명예회복을 위해 정수장학회의 반환을 주장하는 그의 유족의 말도 헷갈리게 합니다.
어쨌거나 그것이 강제 헌납이라고 해도 언론과 방송을 부패기업인에게 맡길 수 없다는 당시나 지금이나의 상황에서 그의 다른 기업들은 하나도 건드리지 않았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김지태씨가 어떻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나 살펴보기로 합니다. 그는 일제시대 때 부산상고 전신인 부산 제2상업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에 입사하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입사 5년 뒤, 폐결핵으로 회사를 그만두면서 이 회사로부터 울산에 있는 땅 2만 평을 아주 후한 조건에 불하받았다는 것입니다.
잘 아는 바와 같이 동양척식주식회사는 대한민국을 깡그리 수탈하기 위한 일제의 앞잡이 회사입니다. 원래 부자이기도 했다는 그는 일제로부터의 이런 특혜를 발판으로 거부가 되었는데, 김지태씨는 훗날 조선인에 대한 이런 특혜는 전무후무한 것이었다고 회고하였습니다. 그 후 해방이 되자 조선견직을 불하받아 대동산업(한국생사), 삼화고무 등 문어발식 기업 확장의 탄탄대로를 걸어왔습니다.
여기에서 잠깐 오늘의 상황을 살펴봅니다. 노무현 정권이 지독하게 싫어하는 부류가 친일파입니다. 금년 5월에 친일반민족행위자 재산조사위원회 라는 곳에서 친일파 9명의 소유 토지를 국가귀속결정을 내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다면 김지태씨의 친일행적은 무엇이란 말입니까? 한쪽 것은 뺏고, 한쪽 것은 어떻게 해서든지 찾아주려는 해괴한 현상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혹시 60~70년대에 부와 명성을 한꺼번에 쥐었던 그가 시대의 조류를 읽지 못하고 주저앉는 바람에 국가에 귀속시킬 재산이 없기 때문일까요?
그래서 이런 엉뚱한 생각을 그래서 해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