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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한 변호사는 사회적 흉기다"

엄상익 변호사 "후배들이여, '고용된 양심' 아닌 '깨끗한 양심' 되라"

로스쿨법 통과가 초읽기에 들어간 가운데 한 중견변호사가 자신이 경험했던 '변호사 매수 유혹' 및 주변의 '타락상'들을 진솔하게 토로하며 젊은 후배 법학도들에게 '고용된 양심'이 아닌 '깨끗한 양심'의 중요성을 강조해, 잔잔한 감동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법률회사 '정현'의 엄상익 대표변호사(53)는 24일 <한국일보>에 기고한 '변호사, 먼저 인간이 되라'라는 칼럼을 통해 "개인적으로 변호사 등록을 한 지 22년이 지났다. 요즈음은 가급적 배지를 떼고 다닌다. 사람들의 눈길에서 적의를 감지하기 때문"이라며 "내남없이 변호사들이 사회적 의무를 경시한 업보인지도 모른다"고 변호사들을 향한 싸늘한 사회의 시선을 시인했다.

그는 이어 "예전에도 악덕변호사가 있었지만 숫자가 늘어나면 나쁜 건 더 빨리 증식하게 되어 있다. 매년 1,000명이 사법연수원을 졸업한다"며 "벌써 조폭 보스의 집사변호사가 나타났다. 악덕 기업인의 심복변호사도 있다. 아예 납치를 주도한 범죄변호사는 구속되기도 했다. 그들은 사회적 흉기였다"고 최근 사회적 물의를 빚고 있는 변호사들의 타락을 탄식했다.

그는 "변호사는 억울한 문제를 법의 제단 위에 올려놓는 핵심역할을 한다. 고소를 주도하고 소송을 좌우하는 주역"이라며 "변호사생활은 수도사 같은 자기와의 투쟁이 없으면 바로 악마에게 영혼을 팔아 넘기게 된다. 지식보다 깨끗한 양심과 맑은 영혼이 중요하다"며 자신이 경험했던 각종 변호사 매수 유혹들을 소개했다.

그는 "개업 초기였다. 밀수꾼 기업사장이 거액을 주며 사건을 의뢰했다. 자재부장을 희생하는 선에서 사건을 종결시켜 달라고 했다. 자재부장은 평생 그를 위해 공헌한 충신이었다. 감옥 안에서도 그가 구해줄 걸 믿고 있었다"며 "밀수꾼 사장을 비호하는 건 범죄였다. 돈을 돌려줘야 했다. 사무실 유지가 힘들던 그 시절 손 안에 들어온 거액을 반환하기란 정말 힘든 일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저명인사의 강간사건에서 피해자 편에 선 적이 있다. 상대방 변호사가 몰래 찾아왔다. 무죄가 되게 협조해 주면 큰 돈을 주겠다고 유혹했다. 그런 일들이 종종 있었다. 직업적 동료를 뜯어먹는 변호사도 경험했다"고 동료 변호사의 타락을 개탄했다.

그는 이어 "고관 부인의 변호를 맡은 적이 있다. 멋 모르고 변호사선임계를 제출했었다. 그녀는 핸드백에 넣어 다니는 수 억 원의 수표를 과시했다. 어느 날 악랄한 내용이 담긴 진정서를 만들어 와 남편을 파멸시켜 달라고 했다. 알고 보니 그녀는 모략의 천재였다. 거절했다. 재판 중이던 그녀는 당황해서 변호사 선임계만은 그냥 법원에 놔 둬 달라고 했다. 변호사가 갑자기 그만두면 재판장이 나쁘게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정을 들어주었다"며 "1년 후 소장이 날아왔다. 난 사건을 맡고 법정에 한번도 나타나지 않은 악덕변호사가 되어버렸다. 그 여자는 젊은 변호사를 사서 나를 피고로 만들어 괴롭혔다. 문제는 그녀의 변호사였다. 조금만 세심히 보면 금세 진실을 알 수 있는데도 선배변호사의 등에 비수를 찔러 넣었다. 그 변호사는 돈만 되면 어떤 일이라도 할 것 같았다"고 씁쓸한 경험을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로스쿨을 가고 싶다는 한 학생으로부터 솔직한 얘기를 들었다. 국제관계 변호사가 되어 호화빌라와 스포츠 카를 얻고 싶은 게 꿈이라고 했다"며 "변호사가 타락하면 법의 창녀다. 창녀는 몸만 망치지만 변호사는 그 영혼까지 더럽힌다"고 ??은 법학도들에게 '깨끗한 영혼'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사법시험이건 로스쿨이건 그건 목적이 아니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불과하다"며 "중요한 건 소명을 가진 인간을 골라 잘 교육시켜 명품을 만드는 일"이라고 로스쿨 유치에 여념이 없는 대학들에 대한 쓰디쓴 조언으로 글을 끝맺었다.

후배들에게 '고용된 양심'이 아닌 '깨끗한 양심'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엄상익 변호사. ⓒ연합뉴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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