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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내 안의 욕망과 일문일답

양산도
조회: 149

-= 내 안의 욕망과 일문일답(146) =-



거기엔 그럴만한 이유가 반드시 있지, 이즈음 경제가 어렵다 어쩠다

하더라도 한집에 차 한대씩은 다 있는 시대가 아닌가? 하여 길을

물으면 “여기서 쭉 가다보면 사거리가 나오는데 거기서 우회전

하셔서...”라고 말 하는 것과 듣는 것이 자연스러울 정도가 된

때이잖아? 그래서 차가 없는 뚜벅이라고 하면 마치 염병을

앓는 사람을 대하듯 이상한 시선으로 보는 시대가 아니냔

말이야. 이러한 시대상에서 중고기계 운운하니까 더더욱

별나라의 사람에 말처럼 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러나 여기서 생각을 조금만 해 봐, 우리의 일상에서

우회전, 좌회전 이라고 하는 낱말은 운전문화에서나

상용되는 낱말이지 도보문화에서는 “우회전”이라고

하는 대신 “우측으로 가면”이라고 하는 것이 상례

이듯 우리의 언어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천이

되는 것 또한 자연스러운 이치이겠지, 하지만,

우리에게서 변화해서도 안 되고, 진보 돼서도

안 되는 것이 바로 절약정신이라는 낱말로

이는 제아무리 발달과 발전을 하여 문물

들이 차고 넘쳐흐른다 하더라도 우리는

절약하는 습관이 마치 호흡을 하는 것

처럼 우리의 삶에 습윤 되어 있어야

돼서 라기 보다, 지적 동물로서 에

뭇 동물들과 더불어서 살아간다는

사실에 대한 의무임을 진정으로

알아야 하는 게야. 아무튼 그

같은 소임은 놔두고라도 꼭

중고기계를 고집스럽도록

천거 하는 건 중고기계

나, 새 기계나 그것들이

품고 있는 제반 부품들이

가지고 있는 자재는 똑 같고

성능도 같으나, 다만 사용빈도가

새것에 비해 많음에서 오는 정밀도의

저하라고 하는 것이지만 기술인의 시각으로

봤을 때의 정밀도란 시간과 노력을 더 들이고 덜

드리고의 차이일 뿐이나, 새것만을 선호하고 중고라는

이유로 배타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원을 낭비하는 것이며,

조금은 과장스러워 보이겠지만 기술에 퇴보를 가져온다는 게야.

아니? 아무리 내 안에 자아라지만 이거야 말로 정말이지 아닌 것이,

기술이라고 하는 것은, 오랜 경험과 노력으로 만들어 지는 것이지

저까짓 공작기기가 새것이냐, 중고이냐에 따라 기술이 향상된

다고 하는 자체가 매우 어리석고 한심스런 개그가 아닌가?

뭇 가공이라고 하는 것이 정밀성에 그 성패가 주어지게

마련인데, 정밀성이 떨어질 수밖에 없는 중고기계를

고집하는 것도 그렇고, 새 기계가 기술에 퇴보를

가져온다는 게 무언가 미련스럽게 보이잖아?

물론 그렇게도 보이겠지, 하지만 오늘의

우리를 돌아봐봐, 숱한 현장에서 볼 수

있는 것이 뭔가? 가공기술자가 공작

기기가 고장이 나면 명색이 기술자

라고는 하지만 그 처치를 제대로

할 수 있는가 말이야. 이 같은

사실만 보더라도 뭔가 느낌이

제대로 안 오나? 못 오나?

무슨 소리를 하는 건가?

그래서 가공기술자와 기계

기술자라고 하는 명칭이 산뜻

하고 우아하게 공존을 하고 있잖아?

산뜻, 우아함 좋아 하네, 그로써 야기된

사회적 병폐를 진정으로 몰라서 하는 애긴가?

그래-! 새것? 좋지, 그걸 모른다면 어디 정상적인

사람이라고 할 수가 있겠나? 그래서 우리 사회에서는

언제부터인가 새 기계들이 만연하게 되고, 또 가공비를 더

들이더라도 새 기계가 아닌 것으론 무엇을 해도 왠지 꺼림 찍

스러워 하는 풍조가 생성된 것이 아닌가? 그까짓 거야 가공비를

더 드리고 적게 들이는 차이이니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매우 갑갑하고 확실한 것이 오늘과 같은 경제 침체의 근원이

그러한 것들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데에 있음을 알 수 있다는

게야, 경제라고 하는 것은 기술(技術), 인력(人力), 자본(資本),

시간(時間), 이라고 하는 네 개의 요소가 한데 어우러진 마치

자동차와 같이 매우 정밀한 기계와 같아서 그 중에 어느 것

하나라도 제 역할을 제대로 못하면 언밸런스(unbalance)로

주행에 어려움이 따라 오늘과 같이 총체적인 문제가 발생

하게 마련인 게야. 해서 어느 시대에서나 경제는 인간의

삶에서 매우 소중하고 중요한 부분들을 차지하는 게야.

그것이야 말로 오늘을 살아가는 소위 지식인들 이라고

한다면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어느 종교에서 주장

하고 있는 모든 인간들의 생로병사(生老病死)와 직접

적으로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게야. 여기서 중요하게 다루어져야 할 부분은

기술(技術)과 인력(人力)이 동축(同軸)에 해당되며

자본(資本)과 시간(時間)이 한 축인 고로 이들을

여하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결코 바꾸려야 바꿀

수 없을뿐더러 인위적으로 바꿔도 안 되는 것

또한 피하려야 피할 수없는 사실임을 알아야

하는 것은, 저와 같은 룰(rule)이 곧 인류의

존망(存亡)에 대한 근원적 키(key)를 쥐고

있다는 중요한 진실을 알아야 하는 게야.

아니? 이건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린

게야? 중고기계를 주창하는 당위성을

말 하라고 했는데 도무지 얼도 당치도

않은 말들은 도깨비 같이 다 무엇인가?

그리고 뭐? 사람이 태어나 성장하여 늙고

병들어 죽는 것은 자연의 법칙이며 순리인데

이를 경제와 연관성이 있다고? 이건 해도 정도가

너무 지나친 것 아닌가? 이거야 멀쩡한 껍데기까지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것 같으니 이야기를 더 들을 수 있겠나?

그렇겠지 껍데기로서는 도저히 가늠이 되지 않는 것이야말로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해야겠지만, 거기엔 이 자아가 오늘에 이르기

까지 살아오면서 절실하게 깨닫고 확인되는 것들이 있기에 그 같은

사실을 말 하려고 이렇듯 나 홀로 뚜~욱 떨어져 3.3평도 안 되는

작고 좁은 방에서 외롭고 힘들기는 하지만 마음은 늘 평화로움

속에서 나날들을 보내는 것이 아니겠나? 각설하고, 우리들의

삶에서 기술과 자본을 함께 생각해 왔었지만, 그게 대단한

착각이었던 것으로 오늘에 어려움을 수반케 되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야, 물론 이 같은 말에 혹자는 “야-!

되지도 않는 말장난 그만둬라, 기술에 자본이 따르지

않으면 기술이라는 것이 무슨 힘을 쓸 수 있냐?”는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며, 또 그 같은 논리를 정당

화 하려들겠지만 분명한 것은 밑줄 친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분명하게 자본은 기술을 따라야

하는 것이며, 자본과 기술은 결코 한 축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게야. 여기서 반듯이

이러한 의문이 제기가 될 게야. “기술이 자본을

따르는 것이 아닌가?”라고 하는 생각, 그와 같은

사고가 오늘에 이르기까지 암묵적이며 묵시적으로

그와 같이 인정을 해 왔으며, 그러한 자세로 살아온

삶들, 그 자체가 문제를 이토록 심각 하게 만들어 내고

말았던 중요한 인자이며 요인이었음을 우리들 모두가 꼭,

그리고 반드시, 알아야 하며, 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는

사실인 게야.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미래를 염려하는

마음을 티끌만큼 이라도 가지고, 또 그 같은 생각으로 살고 싶다면,

많이 가지고, 적게 가지고, 배우고, 못 배우고를 고사하고 모두가

진솔하게 알아야 하는 것이, 모든 사람들 스스로가 보다 건강

하고 행복한 삶으로 영생을 누릴 수 있는 확실한 길이기에

마음을 다 하여 간절하고 애절 하게 호소하는 게야. 예서

자본이 기술을 따르는 것과 기술이 자본을 따르는 것만

언 듯, 보기에는 차이가 전혀 없어 보이겠지만, 그에

대해 후속으로 파생되지는 엄청난 괴리가 있다는

분명한 사실들을 또한 반드시 짚고 넘어야해,

자본이 기술을 따를 때에는 그 기술이 생명력을

가지게 되지만, 기술이 자본을 따를 때에는 기술이

생명력을 잃어, 오늘과 같이 총체적인 문제가 생성된

다고 하는 끔찍스러운 결과를 초래한다는 분명한 사실인

게야. 그것엔 안타깝게도 인간들의 건강은 물론이려니와 수명

까지도 좌지우지한다고 하는 매우 기막힌 비밀을 안고 있는 게야.

그렇다면 “그 같은 사실들이 생성되는 과정은 어떻게 이루어지는 것

인가?”하는 의혹을 가지게 되겠지? 하지만 의외로 간단한 거야. 이는

껍데기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것임에도, 의례 그러려니 하고 예사롭게

봐 넘긴 부분 이라는 것이야. 그럼 먼저 오늘이 있게 된 기술이 그

생명력을 잃게 되는 과정에서부터 시작하지, 기술이 자본을 따름

으로 해서 오는 패악으로는, 기술인들 스스로가 그 기술들로

하여금 자본을 찾게 되는 힘이 된다는 사실과 또 찾을 수

있다고 하는 막연한 기대감들이 함께 어울려 있을망정

모든 자본들에겐 되도록 적은 돈을 들여 큰 이득을

얻으려는 특성상 별스럽고 빼어난 기술이라 해도

가급적이면 적은 돈을 들이려는 속성이 이제껏,

그 기술로 얻어지던 물질적 가치가 노력들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보잘 것 없는 결과들에

대해 진한 실망감들이 뇌리에 각인되고

가슴 속 깊이 내재하게 되었던 응어리

들이 농익게 되어 무의식중이라 하여도

본인이 보유하고 있는 기술을 보호 하려는

차원에서 본능적으로 은폐하려는 모양새들이

나타나게 되어 진 것들이 우리사회에 보편적이며

일반적인 사회기조로 역시 기술인과 기술인들 사이

에서도 서로를 경계하려는 보이지 않는 장벽을 쌓게

되어 그로써 기술인들은 스스로 자멸의 구렁으로 함몰

될 수밖에 없지만, 그에 반하여 자본이 기술을 찾는 것이

일반적인 사회기조라고 한다면, 그에 대한 양상이 사뭇 달라

질수밖에 없는 것이, 과거 자본들이 암묵적이며 묵시적으로 단합

하던 그 양상이 기술인들에게 전위돼 과거와 같이 저마다의 기술을

은폐하기는커녕 오히려 서로 간에 공유 하려는 양상으로 이어지고

이러한 현상으로 기술자체의 삶에 힘을 얻어 지속적으로 발달과

발전을 거듭함으로 자본 측에서 보면, 기술을 따라야 하니 비록

비용이 더 들어가는 것으로 여겨지겠으나 역시 상시라도 본인

들이 필요로 하는 기술들을 머뭇거릴 필요가 없이 하시라도

발취할 수 있어 비록 이윤은 적어진다하더라도 자금 순환

주기가 짧아짐으로 적게 보이던 이윤이 실질적인 면에서

그리 적게 느끼게 되지는 않는 게야. 아니? 어느 면에선

외려 더한 이윤을 창출 하는 계기가 됨으로 그야말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격”이 되어 진다는 사실이지.

어디 그뿐인가? 그로써 사회 저변엔 삶에 신바람이

불게 된다고 하는 사실 또한 고무할 일이 아닌가?

그러면 기술이란 어디서 오는 것일까? 막연하게

시간으로 주어진 경험에서 온다고? 천만에, 그

경험이라고 하는 것이 뭐겠어 자신이 하는

일에 몸소 부딪치는 과정에서 느낌으로

얻어지는 것이 곧 경험이 아닌가 말이야.

그래서 막연하게 시간들만 죽인다고 하여서

경험이 쌓여지는 것은 아니라는 게야. 그러면

기술인이 하는 일이란 대체 뭐야? 모종에 물품

이나 기구들을 만들기 위하여 공작기계를 다루는

것으로부터 시작 하는 것이 아닌가 말이야. 그런데

그 공작기계가 중고가 아닌 신품이라고 한다면 기술을

처음 익히는 입장에서 보면 매우 불리한 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는 게야. 왜 그럴까? 새 기계에선 중고기계에서

맛보는 리얼하고 짜릿한 맛을 근본적으로 볼 수 없다는 데에서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겠지, 그렇다면 중고기계와 새 기계의

차이점이 무엇일까? 라는 바보스러운 질문에 신속하게 튀어나오는

대답이 곧 빈번한 사용으로 인한 마모현상이 가져다 준 낙후되어

진 정밀도이잖아? 이쯤 되면 정답이 나온 것 아닌가? 그와 같은

기계적 요소요소에서의 마모로 인하여 가공작업을 할 때 부분

부분에서 백 래시(backlash)현상이 발생함에서 오게 된 긴장

감들이 손끝에 전해지는 예리한 감각들로 익혀지게 되고 헌

기계들에게서 흔하게 접할 수 있는 기계적 결함에서 오는

고장으로 이어지더라도 부담 없이 해체하여 수리를 하는

과정들에서 기계요소들의 구조적 조합과 특성들을 자연

스럽게 익히게 되어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습윤 된 남

다른 감각과 노하우들이 기술을 배가시키는 기본소자

의 역할을 담당케 되어 심도 깊은 기술력으로 자리

매김을 하게 되어진다는 매우 중요한 사실인 게야.

아니? 새 기계라고 고장이 없으라는 법이라도 있나?

그럴 리야 있겠나? 그 같은 경우라면 기계제작사로부터

AS를 받을 수도 있기에 굳이 손수 해체할 필요도 없으려니

와 또 새 기계가 주는 부담이 따르겠지만, 헌 기계라고 한다면

그 같은 부담 없이 가볍게 손수 해체할 수 있음을 말하는 것이지.

그래서 그 같이 하찮은 것들이 우리들의 건강과 생사의 고삐를 쥐고

있다는 것이 도무지 웃다가 뒤로 백번을 넘어질 일이 아닌가 말이야.

이 같은 것이 그렇게도 하찮게 여겨진다 말인가? 지금 이 시간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병원 문턱을 찾으며, 귀중한 생명들이 죽어가고,

소중한 생명들이 불확실하고 암울한 미래로 인하여 시들어가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위해서라도 이쯤에서 진솔하게 성찰의

계기로 삼아 보다 나은 미래로 에 총력을 기우려야 할 텐데?

아니? 우리가 지금까지 버둥거리며 살아온 목적이 무엇인지

자아가 정녕 몰라서 그 같은 말을 하는 겐가? 늘 상 숙의

하며 밝은 미래로의 족적을 옮겨가고 있잖은가 말이야.

그리고 자아가 입만 열면, 부정적으로 보고, 생각함을

기탄없이 내 뱉는 말 중엔 “MB-오세훈-김문수라는

삼인이 국토를 아작 내는 트리오악당임을 온 국민

들이 다 아는 데에서도, 이명박이라는 똥통은 일

저지르고, 김문수라는 놈은 젖 딩 마저도 씨가

먹히지 않는 주둥이로 이명박 똥통을 불도저

라고 하는데 그렇게 간이 크신 분이 아니다

라고 극구 변명을 하는가 하면, 오세훈 이

라는 어리석은 자는 행동파로 시장 직을

걸고 무상급식에 목숨이라도 거는 듯이

세인들에게 있는 주접, 없는 주접, 다

떨어가며 똥통이 저지르는 짓거리에

바람이나 잡고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뜻대로 안 이루어지자 뭐? 시장

이라고 하는 자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한나라당에 미칠 영향들을 고려해서 거취문젠

차후에 발표하겠다고 슬그머니 꼬랑지를 사타구니

안으로 잔뜩 끌어들이고...”라고 하였듯이 수 일이 지나

서야 거취를 정할 듯 하더니만, 오늘을 봐-! 즉시 사퇴의사를

결행한 것에서 유추 할 수 있듯이, 이젠 무엇 인가 가, 달라지고

있음이 보이지 않는가 말이야. 그러니 자아가 생각하는 것처럼 우리

나라가 그렇게 부정적이지 만은 않다는 사실을 염두에 둬야 할 게야.






나는 每日, 오늘도 下記같이

나 梁 鍾 植은 大韓民國 大統領으로

世界를 完全히 平定하고

人類를 宇宙에 스승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고 念願을 담고, 또 주어 담으며, 呪文처럼 뇌까린다.



<차후 후편으로 계속 이을 것임>



-=략=-(2011/08/27 15:47)http://blog.naver.com/tact0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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