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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에 의한 아버지 찾아 오만 里 종용에

양산도
조회: 160

-= 연민에 의한 아버지 찾아 오만 里 종용에 =-




아래 글을 블로깅 중 얻게 된 것이, 박근혜를 53세라고 칭한 것을 보면,

벌써 7년이라는 세월이 비켜간 것 같다. 하지만 이 시대에서도 여전하게

정치행보에 미련을 버리지 못한 것 같아, 이 세상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




러했듯이, 이 못난 위인도 그 같은 맥락에서 자식들을 생각하는 측은지

심(惻隱之心)과 모든 국민들 가운데 한 사람으로 박근혜에게 아버지 박

정희가 권력에 대한 욕망을 넘어 노예화되어졌던 망령에서 벗어나는 결




단이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몇 자 적어보려 한다. 무릇 아버지란 자식

들의 안락한 삶을 위하여 열과 성을 다 기우려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최

선에 삶을 살게 마련이며, 국민들 또한 그 누가 되었든 간에 국민들 편




에서 국민들의 안녕을 지켜주는 위정자가 되기를 간절히 원하기 마련이

다. 다만 그것을 위해 행하는 방법에 의해 나쁜 아버지와 좋은 아버지로

비쳐질 뿐이나, 서로 다른 두 아버지의 궁극적 목적을 이루기 위한 행보




는 설령 다를 지라도 자식들을 위하는 마음은 하나일 수밖에 없듯이 국

민들 또한 다를 바가 없이 원시시대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삶이 평탄하여 지기만을 간절히 원하고 바란다는 사실은 변할 수 없다.




[박근혜, 아버지를 찾아 떠나라!]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도 이제 어느덧 하늘의 명을 깨닳아 마침내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가치의 세계로 들어선다는 지천명(知天命), 즉 나이 오십을 훌쩍 넘어 섰다.


그런데 최근 그의 여러 발언들을 보면, 특히나 그의 아비 박정희에 대한 부분에서 만큼은 그 객관성과 보편성이 많이 결여되어 있어서 비단 정치인으로서만 아니라 그 개인사로 볼 때도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


해서 이 기회에 잠시 혼란한 정국을 떠나 아비의 살아온 발자취를 따라 그의 삶에 대해 한번 제대로 객관적으로 조명해 봄으로써 보편적 가치의 세계로 무리 없이 들어설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 보기를 제안한다.


잠시 그대가 없다 해서 당장 이 나라가 무너지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혹시라도 노파심에서 중요한 것들을 놓치고 그냥 지나칠지도 몰라 아래에 몇 가지 제시하니 참고하여 의미 있는 여행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먼저 박정희가 태어난 경북 선산군 구미면 상모리에서 그 출발점을 삼아 아비로서가 아닌 한 인간으로서의 박정희가 과연 어떠한 궤적을 그리며 살았었던가를 가감 없이 직시하고 평가할 마음의 준비를 꼭 하길 바란다.


그리고 이어서 구미 보통학교에 들려 그의 유년의 흔적을 더듬어 볼 것이며 대구 사범학교 시절의 첫 번째 결혼과 졸업 후 문경 보통학교 교사시절은 어떠했는지, 왜 그 자리를 팽개치고 일본군에 자원입대 해야만 했는지도 꼭 살펴볼 일이다.


이어서 이제부터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중국으로 출발해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최근, 가장 큰 논란이 되고 있는 ‘친일부역인사’로서의 아비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길을 따라 갈 테니 좀 더 내실 있는 결과를 위해서도 사전에 중국정부에 이에 관한 권위 있는 역사학자 한 둘 쯤은 꼭 미리 협조요청을 구해 대동하기 바란다.


제일 먼저 만주군관학교에 관한 흔적으로, 이름은 왜 다카기 마사오로 개명했으며, 혈서는 왜 썼고 수석졸업은 어떠한 과정을 거쳐 수상하게 되었는가, 등은 꼭 규명해 보기 바란다.


이어서 일본 육군사관학교 본과에 어떤 특전을 거쳐 진학하게 되었으며 일본은 그에게 왜 그러한 특전을 주게 되었는가도 살펴 볼 일이다.


졸업 때 일본 육군 대신 상을 수상할 정도의 빛나는 학업성적은 어떻게 획득했으며 그 후 소위로 임관되어 마쓰야마 14연대에 배속되었다가 만주 8연대의 소대장이 되어 모란강 부근 영안에서 왜 항일투쟁의 치열한 격전지였던 화북지방의 열하지구 보병 8군단에 배속되게 되었는가를…….


또한 일본 특수부대인 철석부대 산하의 간도특설 대에는 어떻게 들어갔으며 그들의 특수한 주요임무란 무엇을 하는 것이었던가를 낱낱이 살펴보기 바란다.


그리고 이어서 불과 일 년 만에 중위로 진급할 정도의 일본군에 대한 공헌은 무엇이었으며 해방을 맞아 왜 그냥 일본군을 따라가지 않고 끝난 전쟁에서 새삼 광복군에 합류했는지…..


그리고 왜 다시 이탈하여 단독으로 귀국했는지….


귀국하여 육사의 전신인 조선경비사관학교에는 왜 들어갔으며 그 학교란 어떤 인물들이 주로 들어갔으며 1946년 9월에 입학해 불과 3개여 월 만인 12월에 대위로 임관되어 졸업한 경위는 그의 일본군으로서의 탁월했던 활약을 인정받은 건지 아니면 아무나 들어가기만 하면 저절로 다 그리 했었던 건지….


같은 동기생들로는 누가 있으며 그들의 출신과 이후 박정희 쿠데타에 그 중 몇 명이 어떻게 동참하였으며 나중에 이들이 어떠한 요직들을 두루 거치게 되는지도 한번 제대로 살펴볼 일이다.


이어서 48년엔 왜 그가 평생을 그렇게도 치를 떨며 말살 하려한 빨갱이 사건에 직접 연루되었으며 그가 사형선고 후 어떤 동료들의 구명운동으로 인해 석방 되었는가… 그러고도 어떻게 다시 육군 정보국이라는 요직에 다시 기용되었는가..


등등을 가감 없이 살펴보기 바란다.


6.25 발발 후 12월 그대 친모와 두 번째 결혼을 하였으며 그 후 사단장, 사령관 등을 거치며 승승장구하다 정군운동으로 좌천하게 되었는데 그 정군운동이란 무엇이었으며 이듬해 그가 일으킨 5.16 쿠데타와는 어떠한 상관관계가 있는지 면밀히 살펴볼 일이다.


그리고 쿠데타에 동참한 핵심적 인물들은 누구였으며 그는 8월에 민간인에게 정권이양에 대해 성명까지 발표하고도 왜 그가 무슨 자격으로 그해 11월에는 서둘러 일본을 방문해 이케다 수상과 국교정상화 회담을 하였는지….


그리고 이어서 미국을 방문하여 케네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등 사실상 정권이양에 관한 마음은 추호도 없었던 대 국민기만을 한건 아닌지….


이어서 그러한 의문에 대해 증명이라도 하듯이 63년엔 당당히 대통령에 취임하여 한일굴욕회담에 대한 반대 데모가 거세지자, 왜 즉시 계엄령을 선포하고 물리력으로 국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기 시작했는지…


이어 65년의 베트남 파병은 누구를, 무엇을 위해 젊은이들을 전쟁터에 내몰았는지… 미국으로부터 받은 보상과 일본과 맺은 굴욕조약의 대가로 받은 돈들은 어디에 다 쓰여 졌는지….

등등 하나도 빼놓치 말고 챙겨보기 바란다.


67년에 대통령에 재선되고 이어 68년엔 김신조 등이 청와대를 습격하는 황당한 일이 발생했는데, 그러고도 이번 NLL사건에서 보고체계의 문제를 일으키고 대외비를 가지고 언론 플레이를 한 장성에 대해서는 억울한 누명이라도 쓴 듯이 말하는 게 과연 사리에 맞는 행동들인지…..


68년엔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하여 전 국민을 상대로 강제적으로 주입식 국가관을 세뇌 시키려한 것에 대한 문제점은 없다고 보는지…


69년의 3선 개헌안은 장기집권을 위한 야비한 포석이 아니었는지, 그러고서도 온갖 정경유착으로 말도 안 되는 건설비만을 들여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밀어 부쳤는데 그것은 오로지 투철한 군인정신 때문에 가능했던 것인지…


오늘날 그래도 ‘소 뒷걸음치다가 쥐 잡은 꼴’로 중요한 동맥으로 자리 잡은 그 누더기 도로를 보면서 전향적으로 행정수도이전문제에 대해서도 엄격히 예산집행을 감시하고 문제점을 보완한다는 전제 하에 진지하게 검토해 볼 의향은 없는지….


71년 앞의 3선 개헌안에 의해 다시 세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이에 불만을 느낀 국민들의 눈을 돌리려 이듬해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고 곧바로 유신체제의 비상계엄령을 선포하여 자신이 지명한 대의원들로 구성된 자들에 의해 전광석화처럼, 공산국가에서나 가능한 99%의 지지율로 네 번째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너무도 낯간지러운 비열한 권력욕이 아니었는지…


만약 현 대통령이 그러한 이유로 같은 짓을 행한다면 과연 뭐라고 말할 수 있겠는지…


그러고도 그가 여전히 위대했던 아버지요 훌륭한 지도자로 보이는지………


73년엔 이전의 대통령선거에서 강력한 라이벌이었으며 최대의 정적이었던 김대중씨를 중정요원들을 이용하여 납치해 살해 하려한 사건이 발생했는데 그것과는 정말 아무 관계도 없었는지….


툭하면 발동하던 계엄령이 이제 부끄러웠던지 74년, 말도 안 되는 ‘긴급조치법’을 만들어 발효시켰는데 그러한 악법의 연장선상인 ‘국가보안법’ 같은 법에 대해서는 왜 아직까지도 그리 집착하는지…..


아이러니 하게도 그러한 긴급조치 몇 호, 몇 호를 위반한 사람들이 상대적으로 그 이후에는 왜 모두 ‘민주투사’로 불림 받으며 이 나라 정치의 핵심 인물들로 떠오르게 되었던 것인지… 한번 새겨볼 일이다.


그렇게 해를 두고 연연히 쌓여 갔던 국민들의 울분은 모두 뒤로한 채 모든 걸 힘으로, 폭력으로만 해결하였으며 그 부끄러움 때문이었는지 그대 어머니가 간첩 문세광에 의해 사망하고 난후에는 낮에는 꽃 같던 나이의 그대를 앞세웠으며 밤에는 채홍사까지 따로 두어 황제 같은 방탕한 삶을 허비하던 그대의 아버지가 78년에는 이제 세기도 지겨운 무려 다섯 번째로, 여전히 하수인들의 의결 기관인 ‘통일주체국민회의’에 의하여 대통령직에 당선되었으며 이어지는 일련의 사태들인 79년 카터의 한국 방한에서의 갈등과 그때서야 비로소 화나서 외치던 자주국방의 공허한 소리와 연이어 8월의 그렇게도 요란하게 선전하던 100억 달러 수출의 영광과 광휘의 단감은 다 어디로 갔는지, 그대와 똑 같은 또래들이었지만 그대와는 너무도 다르게 살 수 밖에 없었던…


오로지 생존을 위해 24시간 너무도 일찍이 가난의 처참함을 몸으로 감내할 수밖에는 없었던 여공들에 눈물 나던 절망의 노래가, 그 부당함에 대한 분노가 기폭제가 되어 터져 나왔던 YH 사태가 알려졌으며 이어 9월에는 유신의 종말을 앞당긴 부마사태가 발생했는데 이는 당시 야당이었던 신민당 총재 김영삼에 대한 총재직 정지 가처분 신청과 의원직 박탈 등 가히 자유민주주의를 국가 정체성으로 내세운 나라에서는 도저히 행할 수 없는 패악을 저지르고도 이에 분노한 부산, 마산 지역의 시민들이 정면으로 유신독재에 항거한 시위를 두고, 박정희는 군대를 보내 쓸어버리려 하였으며 이에 갈등한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에 의해 그렇게도 길었던 18년간의 긴 암흑의 터널을 뚫어 버렸던 한발의 총성………..


그날 79년 12월 26일, 여전히 궁정동 안가에서 대낮부터 꽃다운 대학생 신모씨를 옆에 끼고 단지 못생겼단 이유로 병풍 뒤에서 노래를 불러야만 했던 당시의 명가수 심모씨의, 일국의 대통령의 마지막자리로는 너무도 적은 달랑 두 증인만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마쳐야만 했던 게 바로 그대 아비 박정희의 개인사이자 역사였음을 쉽게 간과하지 말고 직시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기를 기대한다.


명백한 역사적 진실 앞엔 빈자도 부자도, 흥한 자도 망한 자도 모두 공평하여야 할 것이며 그것을 가감 없이 객관적으로 보편타당하게 바라볼 수 있는 충분한 나이에 도달한 53세라는 그대 나이를 인식해서라도, 이제 더 이상의 변명과 더러운 역사에 덧칠하는 한심한 작태는 이 여행 뒤에는 반드시 멈춰주길 바라며 아울러 끊임없이 ‘자유민주주의와 자유 시장경제’라는 대한민국의 국가정체성을 파괴하고 훼손하기만한 그대 아비의 잘못된 역사 앞에서 진실로 참회하고 떳떳이 다시 태어날 정치인 박근혜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


윗글에선 “그대 아비의 잘못된 역사 앞에서 진실로 참회하고 떳떳이 다

시 태어날 정치인 박근혜를 진심으로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고 하였으

나, 나는 오히려 극구 말리고 싶다. 정치인? 대통령? 이 얼마나 매력이




줄줄 흐르는 말인가? 하지만, 이명박이 당선된 때라면 몰라도 이 시대엔

이미 늦은 때라는 사실을 진솔하게 깨우쳐야 하겠다. 생각해보라-! EU

의 움직임들 위에 중동권의 일련에 사태들이 합세되어진 그곳엔 만신창




이가 되어버린 경제가 보기도 흉하게 널브러져 있잖은가? 어디 그뿐인

가? 세계 처처 곳곳에서도 그런 모양들을 하고 가쁜 숨을 할딱이고 있잖

은가? 이때엔 지구력이 약한 국가라면, 그 어떤 모양으로이던 도발을 저




지르게 마련이며, 설 싸, 그렇지 않다면, 오늘의 발달된 문물들로 인명을

해할 수 있는 것들을 만들어내서 인류의 삶을 위협하는 단체나 개인들도

생성될 수 있는 불가분의 시대임을 진정으로 깨달아야 하기에 말이다.




물론 이 같은 말에 “뭐 무서워 장 못 담겠냐.”는 말로 일축해 버릴 수도

분명히 있을 것이나, 하지만 그 또한 아닌 것이, 한시각이 다르게 변하고

있는 시대상과 나라 안에서 일고 있는 사태들의 심각성에 있는 것이다.




성범죄, 학교폭력, 한껏 가늠되지 않을 꿈을 기라성처럼 펼쳐야 할 학생

들의 빈번한 자살, 등등은 http://cafe.naver.com/didsando/1728에서 “엄청


심심하신 모양들이 구려”라는 타이틀의 글에서 위정자들에게 갈구하는




바와 같이 행하는 가운데 http://cafe.naver.com/didsando/1726의 창에 등


재 된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내용을 참고 하여야 함

은 이 지구상의 모든 물질들(하다못해 악취와 혐오감을 일으키는 것까지




의 총칭)이 후에 우리에게 있어 귀중한 자원으로 재 생성될 것이기에 말

이다. 그러려면 원시시대에 이은 오늘과 같은 정치성으로는 그 무엇도

할 수 없으나, 본 창 안에 여러 모양으로 기술된 바와 같이 정치성에 지




각 변동이 일게 되면, 이제까지, 우리나라를 위시하여 이 지구상에서 일

어나는, 총체적인 문제들은 일시에 해결될 수 있기에 말이다. 그럼에도

보잘 것 없는 개개인의 욕심과 야망 때문에 인류가 멸종의 위기에 봉착




되고 만다면,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일이겠는가? 그래서 오늘엔 미래의

모든 인류들을 위하여서도 과거 “세종대왕”에 어필할 자로 하여금 현행

되고 있는 정치성을 온전히 갈아엎고 그 자리에 새 정치성과 새 담론 으




로 이끌어 갈 수 있는 뚜렷한 철학과 사명감이 있는 자로 하여금 미래를

맞이하게끔 기회를 열어 주어야 하기에 말이다. 행여 이러한 것들을 마

이동풍(馬耳東風)에 우이독경(牛耳讀經) 쯤으로 흘려버리고 아버지의 영




광(?)을 못 잊고, 주변에서 극구 부추긴다고 해서 오늘과 같이 정치판에

서 발을 못 빼는 날엔, 그 결과가 참혹함으로 다가올 수 있다는 생각의

끈 꼬~ 옥 붙잡고 하루하루를 범인(凡人)의 행복한 삶을 맞기를 바란다.





弘 홍 모든 국민을 차등(差等) 없이 평등하게

益 익 이로움을 안겨 줌으로 배려(配慮)하는

主 주 주인정신으로 상대(相對)를 대하도록

義 의 바른 마음가짐을 생성(生成)케 하여




天 천 하늘마저 시샘을 내야 할 제도(制度)로

下 하 밑으론 힘과 재물의 편차(偏差)가 없는




之 지 보편행보에 참 지식사회 개장(開場)을




大 대 큰 목적으로 전 국민들이 동참(同參)하여

本 본 참 인류에 삶의 근본(根本)이 되는 제도.





나는 每日, 오늘도 下記같이

나 梁 種 植은 大韓民國 大統領으로

世界를 完全히 平定하고

人類를 宇宙에 스승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고 念願을 담고, 또 주어 담으며, 呪文처럼 뇌까린다.




-=략=-(2012/02/25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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