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2년부터 현재까지 수시 입학제도가 도입돼 운영되고 있지만 학교생활기록부(학생부)가 없는 검정고시 출신자들에게는 사실상 지원 자격조차 주어지지 않는 등 대입 전형과정에서 검정고시 출신자들에 대한 차별과 소외가 심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최근 일부 검정고시 출신자들은 “대학의 수시 전형 시 검정고시 출신자의 지원을 제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이라며 국가인권위원회(위원장 조영황)에 진정을 제기했다. 이에 인권위는 24일 오후 3시 인권위 배움터에서 ‘대학 수시 모집 시 검정고시 출신자 차별 토론회’를 열었다.
대학 99.9%는 검정고시 출신자 수시입학지원 자격 안 줘
문제가 되고있는 수시 입학 제도는 각 대학별로 1년에 크게 두 차례(수시1학기, 2학기)에 걸쳐 실시되고 있다. 이와같은 수시 입학은 '일반전형'과 '특별전형' 두 가지로 나뉘어 실시되는데, 일반 전형의 경우 현재 고등학교에 재학중인 학생들을 주요 대상으로 하고 있다. 반면 특별전형의 경우 학교장 추천, 농어촌 학생 등이 대상이다.
문제는 수시입학의 주요 전형 기준으로 각 대학들은 어김없이 내신성적(학생부)을 요구한다는 것. 따라서 학생부 성적이 있을리 없는 검정고시 출신자들은 이같은 수시 입학 전형에 원서 조차 내지 못하는 셈이다. 수시 전형의 또 다른 유형인 특별전형의 경우에도 검정고시 출신자들은 지원 자격이 없다.
수시 입학 제도가 처음 도입된 지난 2002년부터 지금까지 각 대학이 검정고시 출신 지원자에게 수시 입학 지원을 허용한 대학은 불과 1%도 채 안된다.
서울대ㆍ연세대ㆍ고려대 등 전년도(2006년) 수시 모집(1학기 경우)을 실시한 전국 42곳의 주요대학들 중 검정고시 출신자들도 지원이 가능하도록 배려한 대학은 ▲고려대 ▲동국대(경주 캠퍼스) ▲이화여대 등 고작 3곳에 불과하다.
관련사진은 특정대학과 관계 없음. ⓒ뷰스앤뉴스
교육부ㆍ대학들은 “입학전형 기준은 대학 자율 사항”이라며 뒷짐
그러나 교육부는 “원칙적으로 입시 전형 기준은 대학 자율 사항”이라며 뒷짐을 지고있다. 대학 역시도 자신들의 자율 사항이라는 '권리'만 주장하고 있다.
이에대해 이 날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한영선 용산공업고등학교 교사는 “각 대학이 ‘자율’이라는 자체 기준만으로 과연 대학 마음대로 일방적인 결정을 내리는 것은 사회 구성원의 다양성과 개인에게 미치는 파장을 고려할 때 지나 친 것”이라고 교육부와 대학의 태도를 비판했다.
특히 한 교사는 “검정고시 출신자들의 상당수가 저소득층 자녀, 소년소녀가장, 장애아, 비인가 대안학교 출신 위주의 교육소외계층인 점을 감안할 때, 교육격차해소 차원의 배려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특목고 자퇴생 ‘무임승차’ 막기위한 조치?
한편 일선 대학들이 수시 입학 전형에 검정고시 출신자들에 지원자격을 부여하지 않는 또다른 이유로 특목고ㆍ사립고 출신학생들의 무임승차를 막기위한 조치라는 반론도 있다.
특목고와 유력 사립고를 다니다 불리한 내신을 만회하기 위해 고의로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짝퉁 검정고시생’들을 막기위한 대학 차원의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것이다.
이에대해 한 교사는 “불리한 내신을 만회하기 위해 중도에 고의로 자퇴하는 학생들 비율이 얼마나 되겠냐”며 “설령 그런 학생들이 증가하더라도 그것이 어떻게 해당 학생의 전적인 책임으로 볼수 있나"고 되물었다.
한 교사는 "이같은 문제는 대입제도의 빈틈이나 불완전한 장치를 방치하고 있는 현 입시제도에 책임을 물어야 한다"며 “자퇴생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순수한 검정고시 출신자들에게 왜 고스란히 피해를 떠 넘기느냐”고 비판했다.
“검정고시생? 얼마나 된다고”... ‘소수자’에 대한 냉대가 차별의 원인
이처럼 검정고시 출신자들에 대한 대학입학 전형 시 차별이 빈번하게 자행되고 있음에도 교육부와 관련 대학들은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고 있지 않는 실정이다.
한 교사는 이같은 교육부와 대학들의 냉대의 원인에 대해 "소수자에 대한 배려 부족과 사회적으로 다양한 계층을 인정하지 않는 풍토에 있다"고 지적했다. 한 교사는 “실제로 대학이나 교육부는 이같은 문제제기에 대해 ‘그래봤자 검정고시 출신자들이 얼마나 되겠냐. 수시로 뽑아야 몇 명이나 되겠냐’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 교사는 지난 2002년부터 2006년 대입까지 학생부가 없어 수시 입학을 지원하지 못한 검정고시 출신자들이 무려 6만5천명이 넘으며, 올해와 내년 입시에서도 약 4만명의 검정고시 출신자들이 차별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울시내의 한 검정고시 학원에서 입시지도를 담당하고 있는 모 강사는 본지와의 전화통화에서 “기본적으로 우리 학생들(검정고시 준비생)에게 교육부나 대학이나 '관심'이나 두겠냐”면서 “차별은 바로 무관심에서 비롯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