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땡볕 아래 '선생님 찾아 70리'

<현장> 동일여고생들, 선생님 복직 위해 70리 걸어

학교법인 동일학원의 급식비리를 폭로하고 해당 사학의 난맥상을 고발했다는 이유로 보복성 파면을 당한 동일여고 3명의 교사들을 위해 졸업한 제자들이 나섰다. 파면당한 동일여고 음영소, 조연희, 박승진 교사들의 졸업생 제자 10여명은 17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동일여고 앞에서부터 서울 종로구 삼청동 소청심사위원회(위원장 정택현) 앞까지 무려 70리, 약 28km를 행진했다.

이들이 한여름 땡볕 아래 서울 시내를 행진한 까닭은 파면당한 세 사람의 선생님의 복직을 교육부에 촉구하기 위해서다. 제자들과 함께 이 날 70리 도보 행진에는 동일여고 학부모, 동료 교사, 지역주민 등 모두 50여명의 사람들이 참가했다. 이들은 오전 10시 도보에 앞서 동일여고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학생, 학부모, 지역주민, 네티즌 서명자 등 총 1만8백31명이 작성한 탄원서와 함께 파면 교사들의 복직을 촉구했다.

지난 6월 28일, 동일여고는 이 학교 음영소(체육. 48) 선생님, 박승진(체육. 48) 선생님을 파면조치했다. 이들 세 명의 선생님이 학교에서 퇴출당한 이유는 급식비리를 비롯한 일련의 학교-재단(동일학원)이 얽힌 비리를 폭로했기 때문. 보복성 인사조처였던 셈이다. (동일여고 사태, 본보 7월 4일, 14일, 25일자 관련기사 참조)

파면당한 세 선생님들을 위해 10여명의 동일여고 졸업생 제자들을 비롯한 지역주민, 교사, 학부모 등 50여명이 도보 행진 70리길에 나서고 있다. ⓒ뷰스앤뉴스


"선생님, 정의는 승리합니다"

특히 동일여.중고 재학생 1천99명이 작성한 탄원서에는 "선생님들 학교 빨리 돌아오세요", "힘내세요, 정의는 승리합니다", "파면당하신 선생님들의 수업을 받고싶습니다" 등의 학생들이 직접 쓴 깨알같은 지지의 글들이 실려있었다.

이 날 도보 행진에 참가한 김미희(2005년 동일여고 졸. 중앙대 행정학과2) 씨는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아이들을 사랑하신 선생님들이 어떻게 파면을 당할 수 있는지, 그리고 이렇게 거리에 나와서 수업을 해야하는지... 선생님들이 정말 이런 대접을 받는 현실이 너무 가슴 아프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김 씨는 동일여고 재학 당시 자신이 가입한 동아리를 맡았던 조연희 선생님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고 했다.

"제가 학교 다닐 때 일주일에 한번씩 특활활동을 했거든요. 제가 가입한 동아리는 조연희 선생님이 담당하고 계셨던 'NGO 동아리'라는 것이었어요. 솔직히 수업 시간보다 NGO 동아리 시간이 더 기다려졌어요. 조 선생님께서는 다른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특활활동도 무척 열정적으로 우리를 가르치셨어요."

제자인 김 씨가 이토록 조 교사의 특활활동 수업을 잊지 못하는 것은 NGO 동아리에서 경험한 특별한 '체험수업' 때문이다. 조 교사는 NGO 동아리에 가입한 30여명 남짓한 학생들을 이끌고 매 수업시간마다 종군위안부 할머니들과 이주노동자들을 직접 방문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NGO 동아리 활동을 했던 이은영(2005년 동일여고 졸. 한성대 역사문학2) 씨는 "당시 고등학생이라 종군위안부 할머니 문제나 이주노동자 문제에 대해 책이나 신문을 통해 보기만 했었을 뿐 실제로 그 분들이 처한 현실이나 상황에 대해 잘 알지 못했죠. 그러나 직접 그 분들을 만나보니 정말 그 분들의 애환이 뭔지, 또 무엇이 문제인지를 잘 알 수 있었다"며 수업 당시의 소회를 밝혔다.

"선생님은 우리에게 한번도 생각의 방향을 강요하거나 딱딱한 과제로 미리 결론을 긋고 수업하지 않으셨어요. 오로지 우리가 보고 듣고 느낀 그 결과물들을 우리 안에서 다시 토론하게 만드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러한 선생님의 수업방식이나 방향이 바로 참교육, 자율 수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이외에도 조 교사는 NGO 동아리 수업을 통해 학생들에게 동성애자와의 만남을 주선하거나 호주제 철폐를 위한 여성단체 방문 등 우리사회의 소수자와 약자의 문제에 대해 깊은 성찰을 하도록 했다. 학생들은 이렇게 NGO 동아리 활동을 통해 거둔 결실들을 학교 축제 때 알림판을 통해 자신들이 직접 찍은 사진과 감상문들을 게재했다.

김 씨는 "대학생이 된 지금도 선생님의 수업이 많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지금 이 사회의 문제를 바라볼 때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시각이 쌓인것도 바로 선생님의 수업 덕택이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들어요"라고 말했다.

동일여중.고 재학생 1천여명을 포함한 1만여명에 이르는 탄원서가 세 명의 파면 교사들의 복직을 위해 마련됐다. ⓒ뷰스앤뉴스


동일학원의 정상화를 촉구하는 시민사회단체들은 즉각적인 파면교사 복직과 동일학원 관선이사 파견을 주장하고 있다. ⓒ뷰스앤뉴스


"나도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고 싶다"

이 날 도보행진에 참가한 제자 신정민(2006년 동일여고 졸. 이화여대 기독교학과1) 씨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 신 씨의 어머니는 서울지역 모 중학교에서 교직 생활을 하고 있다. 어머니는 전교조 서울지부에 가입한 이른바 '전교조 선생님'이기도 하다.

"요즘 언론에서 '전교조 비하' 관련 기사가 많이 나오잖아요. 그러나 제가 생각하기에는 정말 터무니 없는 책잡기라고 생각해요. 저희 어머니도 전교조 선생님이지만 정말 어머니가 이제껏 교사 생활 하시는 거 보며 단 한번도 부끄러운 적 없었어요.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또 학교 현장의 문제에 대해 발벗고 나서는 분이에요. 솔직히 동일여고에서 파면당하신 세 분 선생님들을 봤을 때 우리 어머니 생각부터 나더군요. 잘못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면 저렇게 쉽고 간단하게 학교에서 퇴출당하고 억압받는 현실을 정말 제 일처럼 느낄 수 있었어요."

신 씨 또한 장래에 자신의 어머니처럼, 또 동일여고에서 파면당한 세 교사들처럼 교사가 되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윤리 선생님이나 교목 선생님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교사가 되면 정말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었으면 해요. 내 자녀처럼 아이들을 양육할 수 있는 그런 선생님이요... 부끄럽지 않은 교사가 되기 위해서라도 이렇게 부당하게 억압받는 선생님들에게 조금이나마 힘이 되는 일을 하고 싶어서 오늘 도보 행진에 참가했어요."

이 날 도보 행진에 참가한 졸업생 제자들과 교사들은 1만여장의 탄원서를 교청심사위원회에 제출했다. ⓒ뷰스앤뉴스


남아있는 교사들, "언제 퇴출될 지 두려워...그러나 양심에 반하는 일 차마 못해"

한편 이 날 도보행진에 참가한 이들 중에는 동일여중.고에 재직중인 교사들도 있었다. 주로 전교조 서울지부 동일여중.고 분회 소속 전교조 교사들인 이들은 항상 학교측의 탄압에 두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고백했다.

동일여고의 C모 교사는 "항상 두렵죠. 왜 안 두렵겠어요? 나도 언제 저렇게 입바른 소리하다 짤릴 지 모르는 데... 사학에서는 어떤 교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죠. 그래도 양심에 반하는 일은 차마 하지 못하겠어요. 그래서 이런 작은 힘이나마 보태려고 나온거죠"라고 말했다. C교사의 곁으로는 그의 두 명의 초등학교 아이들도 있었다.

또다른 동일여고 교사는 "신분상의 불안함 때문에 항상 재단이 요구하는 불합리하고 비교육적인 행위에 가담하게 되는 것 같아 너무 안타깝다"며 "하루빨리 동일학원의 정상화가 왔으면 좋겠다. 교육부도 제발 손 놓고 있지 말라"고 당부했다.

지난 6월 28일 학교법인 동일학원으로부터 파면당한 세 명의 교사들은 지난 달 14일 교육인적자원부 내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 부당 파면에 따른 소청을 제기했다. 이 날 도보행진을 마친 세 명의 교사들은 1만여장의 탄원서를 소청심사위원회에 제출했다. 소청심위는 이르면 오는 9월께 이들 교사들에 대한 학교측의 파면조처와 관련된 판단을 내릴 예정이다.

이 날 70리 도보 행진에 함께한 동일여고 졸업생들을 비롯한 50여명의 참가자들은 도보 시작 7시간 만인 오후 5시께 광화문 열린시민공원에 도착했다. 제자들과 선생님들은 온몸이 땀으로 흥건히 젖었지만 그래도 웃었다.

한 졸업생 제자는 "흔한 진리 아시죠? '항상 정의가 승리한다'는... 우리 선생님들의 문제는 '사학 비리'라는 거창한 말을 내 걸기 이전에, 정의라는 문제, 진실이라는 문제, 그리고 거짓에 저항 할 수 있느냐의 문제예요. 상식이 통하는 사회이길 기대합니다"라고 이 날 도보 행진의 소감을 밝혔다.

조연희, 박승진, 음영소 세 명의 선생님은 이 날 도보 행진에 참가한 제자들을 꼬옥 껴 안으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김동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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