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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주역'이 되기 위한 조건

[옛날 정치 지금 정치] 한나라당 소장파의 도전

한나라당은 대표 경쟁이 한창이다. 소장파들은 미래연대라는 이름으로 미니대회를 열어 그들의 대표주자를 내놓았다. 말썽거리일 수도 있는데 조용하다. 잘했다는 평가도 있는 모양이다.

소장파는 어느 면에선 당의 미래다. 그러나 그들은 미래라고 말하지 않는다. 주역이 되려 한다. 그런데 주역이 되기 위한 논리에 문제가 적잖다.

소장파의 구호는 여전히 변화와 개혁이다. 미래연대의 대표주자로 뽑힌 권영세 의원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개혁이 필요하다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겠다"고 말한다. 대체 그들이 말하는 변화와 개혁은 무엇인가.

변화와 개혁은 목표가 아니다. 왜 변해야 하는가. 무엇을 위해 어떤 것이 어떻게 변해야 하는가. 목표를 제시하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이런 것, 저런 것들이 달라져야 한다고 말해야 한다. 소장파들한테선 그 설명이 없다.

변화와 개혁은 3년 동안 복창해온 소장파의 구호다. 그러면서 안 된다는 말은 많이 했다. 수구꼴통, 부패, 기득권, 냉전사고 등 단어들이다. 대체 한나라당이 기를 쓰고 고수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어떤 정책이 수구보수에 해당하는가. 한나라당에 누가 있어서 부패의 수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가. 한나라당이 누리고 있고 한사코 놓지 않는 기득권이 무엇인가.

소장파들이 3년 동안 외친 탓에 이 단어들이 한나라당의 이미지가 되고 말았다. 소장파는 수구꼴통 등 단어들로 당 이미지를 물들여놓고 이런 이미지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들이 당의 이미지에 흙탕물을 끼얹었다는 걸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인가.

미래연대 대표주자 권 의원은 제3세대 기수를 자처했다. 부패한 산업화 1세대, 무능한 민주화 2세대는 물러나고 미래연대가 제3세대가 되어 한나라당의 변화와 개혁을 이끌고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다.

한나라당 소장-개혁파의 대표로 선출된 권영세 의원. ⓒ연합뉴스


산업화 1세대, 민주화 2세대라는 구분에도 이론이 있겠지만 그렇다 치자. 왜 산업화 1세대에게만 부패라는 모자를 씌우는가. 산업화 주역은 가장 가난했던 나라를 세계 10위권의 산업국가로 끌어 올렸다. 요즘 한국의 경제성장은 꼴찌지만 박정희 시대부터 30년은 한국이 경제성장률 세계1위였다. 박정희 대통령을 비방하는 사람들조차 박 대통령을 부패했다고 말하지 못한다.

산업화의 주역은 대한민국의 오늘을 만든 대한민국의 주류다. 그들이 닦아놓은 산업의 동력이 한국의 경제를 끌어가고 있다. 반기업논리에 짓눌리면서도 한국의 부를 힘겹게 지탱하고 있는 것은 한국의 주류 기업들이다. 한나라당은 산업화의 주역이던 대한민국의 주류를 계승하고 있다. 그 전통을 당의 이미지로 연결시키지 못하고 산업화의 주역에 부패를 덧칠하는 저의가 무엇인가.

대한민국의 주류교체는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정치목표다. 열린우리당이 내건 변화와 개혁은 주류교체라는 목표가 뚜렷하다. 열린우리당한테는 한나라당도 바꾸고 쓸어내야 할 대한민국의 구주류로 분류돼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의 소장파들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바꾼다고 말한다. 왜 미래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고 바꿔야 하는가. 무엇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 설명이 없다.

제3세대를 자처하는 소장파가 당을 이끌 준비는 된 것일까. 이 부분 두 가지 문제에서 저울질해 보자,

미래연대 대표주자 경선 토론에서 경쟁자 셋 모두 호남연대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정권교체를 위해 호남연대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데 처방에선 3인 3색이었다. 왜 3색인가. 호남의 지역감정에 대한 풀이의 문제가 아닌가 싶다.

호남 지역감정의 발생 원인은 광주학살 등 여러가지이나, 현실정치적 측면에서 보면 목표는 '김대중 대통령 만들기'였다. 천년 한(恨)이라는 말을 만들어 내고 DJ를 대통령 만들어 천년 한을 풀자고 했다.

DJ 대통령 만들기는 성공했고 한이 있었다면 그 한은 풀었다. 그런데 지역감정은 견고하게 남아있다. 어떻게 쟁취한 권력인데 내놓아. 호남정권을 유지하자. 이런 정서가 깔려 있다. 그래서 경상도 출신 노무현을 안아들여 전라도 정권을 유지했다. "경상도한테 정권을 주어? 안 될 소리다." 이게 호남 지역감정의 한 측면이다.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호남정권 유지에 편승하든지, 아니면 호남정권 유지라는 것 이상의 다른 투표동기를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말고는 다른 길이 잘 안 보인다. 소장파들도 아는 일일 게다. 그런데 이 말을 할 용기가 없다. 호남의 지역감정을 정면에서 제기하지 못하고 이리저리 둘러댄다. 그런 어긋난 풀이에 기초해 처방을 말하려니까 제대로 된 처방이 나올 리 없지 않은가.

이번 대회에서 선출될 대표의 역할에 관한 인식도 문제다. 소장파들은 대표를 대통령 후보보다 우위에 자리 매김하고 있는 것이 공통점이다. 권 대표후보는 "소극적인 대선후보 관리지도부 아닌 정권교체지도부가 돼야 한다"고 했다. 미래연대를 대변하고 있는 새정치수요모임의 박형준 의원은 "후보 아닌 대표를 중심에 세우고 제3세대가 이끌어야 한다"고 했다.

이 말대로라면 대표단이 대통령 후보를 만들어내야 한다. 지명대회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후보를 만들어 낸다는 얘기다. 정권교체를 위한 방책도 대표가 마련한다. 대통령 후보는 대표의 각본대로 연출만 하면 된다. 그런 뜻이 된다. 그게 가능할까. 한발 물러서서 풀이해도 임태희 의원 말대로 최소한 후보한테 휘둘리지 않고 밸런스 역할을 할 수 있는 대표다.

대표와 후보의 이원체제로 선거를 잘 치를 수 있을까. 한국의 대통령 선거는 전쟁이다. 이번 선거의 상대는 누군가. 서부벨트가 될지 어떨지는 몰라도 중심부는 한국의 진보들이다. 대한민국 주류를 갈아치우기로 작정한 이들이다. 여기서 멈추면 말짱 도루묵이라면서 사생결단에 나설 사람들이다. 후보를 중심으로 일사불란하게 뭉쳐도 틈새가 보이면 프락치도 끼어 들고 잡음도 만들어질 공작이 난무할 선거다. 그런 선거를 이원체제로 치른다. 아마추어 냄새가 물씬 풍기는 발상이다.

한마디로 대표와 후보가 윗자리, 아래 자리 혹은 같은 자리 따지는 것부터 문제다. 대표가 그런 의식을 갖고 대표의 권력을 행사하려 들면 대표 팀과 후보 팀이 티격태격하게 될 테고 정권교체는 물 건너갈 게 뻔하다. 소장파는 왜 이토록 성급할까.

정치인은 국민의 검증을 거치며 성장한다. 그게 민주정치다. 소장파란 젊은 층을 가리킨다. 아직 검증이 덜 된 사람들이다. 일을 통해 검증 받으며 정치이력을 쌓아 나가야 한다.

지난날 소장파는 치열하게 싸웠다. 야당의 소장파는 반대당의 위치에서 치열하게 싸웠다. 언제나 대여투쟁의 선두에 있었다. 그런 실적을 갖고 당권에도 도전하고 대통령 지명전에도 나섰다. 여당의 소장파는 정책개발에서 실적을 쌓으려고 애썼다. 그런 실적으로 점수를 따서 계단을 올랐다.

요즘 한나라당의 소장파는 대여투쟁을 모른다. 정부나 여당의 하는 일에 대해 반대의 선봉에 나서는 일도 없었다. 합리적인 것은 받아야 한다면서 반대투쟁에 도리어 힘을 빼기 일쑤였다. 그들이 해온 건 안 된다는 소리였다. 선배들을 겨냥해 당신들로는 안 된다는 말만 해왔다.

현재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의 정치이력을 보면 민정계 4, 민주계 4, 운동권 출신 11, 그리고 나머지는 모두 정당경력이 없다. 정당 경력자는 단 8명이다. 이들 중 누가 왜 안 된다는 것인가. 소장파가 당중당 행동을 해도 말이 없는 한나라당이다. 한나라당 소장파는 당내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단계에 이르러 있다. '이젠 안 된다' 소리는 넘어서야 한다. 소장파도 제 자리를 찾아 대여투쟁의 선봉에도 서고 내용이 담긴 말을 해야 한다. 그게 변해야 할 첫 번째다.
이영석 교수신문 고문/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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