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발제] "정치가 관심 가져야 하는 건 350만원 커플"
"수도권서 30석 차지하면 정치 밑바닥부터 바꿀 수 있다"
이날 포럼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 좌장을 맡고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발제를 했다. 아울러 민주당 권지웅 청년미래TF위원, 국민의힘 김재섭 서울 도봉구갑 당협위원장, 김창인 청년정의당 대표 등 여야 청년정치인들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다음은 금 전 의원의 발제문 전문.
<한국 정치, 문제와 제언 - 다른 미래를 찾아서>
1. 대한민국 - 불안한 사회
2023년 현재 한국 사회의 키워드를 하나 꼽는다면 ‘불안’이 될 것이다. 극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하면 누구도 안정된 장래를 장담할 수 없다. 시민들의 불안이 가장 극명하게 나타난 것이 0.78 퍼센트의 출산율이다. 내 한 몸 건사하는 것도 힘든데 가족까지 책임져야 하는 상황은 피하고 싶다는 ‘합리적 선택’이 후손을 가지고 싶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본능까지 억누르게 만들었다. 불안은 불만으로 이어지고 불만은 다양한 수준의 저항과 분열을 불러온다. 예측 불가능한 미래, 한번 낙오되면 다시 일어서기 힘들다는 차가운 현실이 대한민국 국민들을 불행으로 내몰고 있다.
불안의 가장 주요한 원인은 양극화다. 소득과 자산의 격차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고 기회의 불평등마저 고착화되고 있다. (우리 중 가장 가난한 이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으며, 중산층은 자리를 지키느라 애면글면 하고 있다)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극도로 좁아졌고 제자리에서 버티기 위해서도 번아웃이 올 정도로 있는 힘을 다해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당장 조금 여유가 있다고 해서 안심할 수도 없다. 한 번의 실수로 낙오자가 될 수 있고, 나는 괜찮더라도 내 자식이 안락한 생활을 누릴 것이라는 보장은 전혀 없다. 모든 사람이 경쟁의 대상이고 이겨야 할 상대다. 내 안위를 지키는 데에도 급급한데 남의 고통까지 신경 쓸 수는 없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들이 함께 잘 되어야 할 동지라는 의식은 점점 옅어져 간다.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에 갈 때까지 한 번의 궤도 이탈도 허용되지 않는 극한의 경쟁을 견뎌야 한다. 학교를 졸업하고도 바늘귀 같이 좁은 문을 뚫고 대기업 등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지 못하면 평생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두려움이 젊은 세대의 어깨를 짓누른다. 설사 그 모든 싸움을 이겨내고 승자가 된다한들 중산층의 지위를 유지하고 자식들에게 여유로운 삶을 물려줄 수 있는지는 아무도 자신할 수 없다. 결혼을 하거나 가족을 꾸리지 않고 그때그때 상황에 맞추어 살아가려는 풍조가 만연한 것은 이런 현실의 당연한 반영이다.
두 가지의 해결책이 시급하다. 우선 첫째는 공정한 기회의 보장이다. 부모의 재력이든 사회적 네트워크든 기득권의 보호를 받는 구성원들이 부당한 혜택을 받고, 그러한 찬스를 누리지 못하는 평범한 사람들은 더욱 힘든 길을 걸어야 하는 현실이 계속된다면 우리 앞에는 지금보다도 더 낮은 출산율과 바닥을 알 수 없는 냉소주의가 나타날 것이다. 조국 사태 당시 입으로는 공정을 외치면서 스스로는 온갖 불법과 편법으로 특권을 지키려는 우리 사회 엘리트 계층의 위선이 청년층에 회복하기 어려운 충격과 좌절을 안겼다. 내용은 물론 형식과 외형적인 면에서도 공정이 보장되지 않으면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이 급격히 떨어질 것이다.
그러나 공정한 경쟁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시민 모두가 존엄성을 인정받고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일이다. 고도 성장기를 지나보낸 대한민국에서 개인의 노력에 기대는 성공신화만으로 구성원을 통합하고 사회를 원만하게 유지할 수는 없다. 경쟁에서 탈락하더라도 혹은 애초에 경쟁에 뛰어들지 않더라도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는 물적 토대와 사회문화적 인식을 갖추어야 한다. ‘노력한 만큼 잘 살 수 있다.’는 능력주의는 일견 합리적으로 보이지만, 현실 세계에서 ‘평등한 출발선’이란 사실상 허구에 불과하며 설사 제도적으로 최대한 기울어지지 않은 운동장을 만들 수 있다한들 다수의 구성원이 ‘루저’로 낙인찍혀야 하는 상황이라면 자책과 열패감을 양산하는 기제가 될 수밖에 없다. 지난 10여 년간 정치권에서 나온 구호 중 사람들의 마음에 가장 큰 공감을 일으킨 것이 ‘저녁이 있는 삶’이었다는 사실은 시민들이 얼마나 안정과 인간다운 삶을 희구하는지 웅변한다.
물론 추상적인 구호만으로 변화를 이루어낼 수는 없다. 구체적이고 정교한 방법, 정책, 시스템이 고안되어야 한다. 사회적 타협도 필요하다. 양극화의 심화는 사회 전체에 적대적 기류를 흐르게 해서 가진 자도 불안하게 만든다. 지금과 같이 누구도 안심할 수 없는 환경에서 사회적 경제적 계층을 뛰어넘는 통합의 실마리를 찾는 것은 모든 구성원의 이해에 부합한다. 대체로 균질한 공동체였던 한국사회는 다양한 차원에서 분화 내지 분열하고 있다. 이주 노동자 등 외부 유입도 늘어나고 구성원들 간의 반목도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다. 최근 들어 논의가 계속되고 있는 세대, 젠더 사이의 적대감은 그 예들일 뿐이다. 모든 사람이 쫓기고 불안해하고, 그 불안을 다른 집단에 대한 공격으로 표출하는 사회. 그것이 지금 대한민국의 모습이다.
요약하자면,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1) 구성원들에게 인간다운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찾고, 2) 점차 만연하고 있는 갈등과 균열을 조정하고 완화해서 구성원들에게 일체감과 소속감을 부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되어야만 국민들을 통합하고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게 해서 우리 앞에 닥친 어려움을 뛰어넘고 과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역할이다. 그렇다면 과연 한국 정치의 현실은 어떤가. 이런 임무를 정확히 인식하고 수행해 나가고 있는가. 지극히 의문이다.
2. 한국 정치의 문제
(1) 2017년 이후 유권자의 경험 - 부정적 경험의 축적
한국 유권자들은 2017년 이후 (직선제 부활 이후 최초로 과반 득표를 한) 박근혜 정부의 탄핵, 커다란 기대를 걸었던 문재인 정부의 출범과 그 결과에 대한 더 큰 실망을 겪었다. 지금은 독주하는 윤석열 정부에 대해 실망하고 기대를 접는 중이다. 이러한 부정적 경험이 유권자들의 심리에 미친 영향은 결코 가볍게 볼 수 없다. 언뜻 보기에는 기대와 실망이 단순히 교차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기억이 반복적으로 축적되면 마음 속 깊이 좌절감과 불신이 쌓인다. 변화를 추구하려는 의욕 자체가 사라지는 것이다.
탄핵 당시 촛불집회에는 연인원 1,700만 명이 나왔다. 우리 인구의 1/3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그 추운 겨울에 개인적 이해와는 별 관계도 없는 정치개혁을 위해서 나선 것이다. 그런데 그런 염원을 딛고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지지층만 바라보고 편 가르기에 앞장 서는 정치로 많은 유권자들을 어안이 벙벙하게 만들어 버렸다. 박근혜 정부의 적폐라며 추상 같이 단죄했던 ‘블랙리스트’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판에 밖은 듯 똑같이 만들어졌다. 관저에 칩거했던 전직 대통령을 불통이라고 비난하면서,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라던 문재인 대통령의 기자회견 횟수는 직전 정부 때와 별 차이가 없었다. 곤란한 질문은 받는 것을 거부했다. 이런 일을 겪으면서 사람들은 ‘박근혜 때와 다른 것이 무엇인가’, ‘도대체 우리가 왜 추운 날 그 고생을 했나.’라는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더욱 심각한 것은 편 가르기와 뻔뻔스러울 정도로 계속되는 ‘내로남불’이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지만, 한 정파의 승패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유권자들이 입은 마음의 상처다. 탄핵으로 교체한 정권을 다시 5년 만에 투표로 갈아치워야 하는 마당에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유지하기란 어렵다. 대한민국 유권자 다수가 자신감을 잃기 시작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로 정권이 바뀐 이후에도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편 가르기로 지탄받던 문재인 정부의 문제는 새 정부로 넘어와서 아는 사람, 검사 출신을 주요 포스트에 배치하는 ‘자기 사람 심기’로 심화되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전(前) 정부 탓을 하고 언론 탓을 하는 책임 회피,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의 일방통행식 독주와 이견(異見)에 대한 적대감도 직전 정부와 마찬가지다. 인터넷에 ‘2찍’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는 것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윤석열 대통령에게 투표해서 무엇이 좋아졌느냐고 조롱하며 묻는 말이다. 문제는 이런 것이 반복된다는 점이다. 다수의 ‘2찍’들은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표를 던진 ‘문찍’들에게 똑같은 조롱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탄핵 때 숨죽이고 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지지자들도 지난 기억을 되살리며 같은 얘기를 할지 모른다. “도대체 무엇이 달라졌나?”
탄핵과 정권 교체를 거칠 때 많은 평론가들은 무엇보다 유권자들이 얻은 ‘정치 효능감’이 가장 긍정적인 효과라고들 했다. 적극적으로 나서면 바꿀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끼고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그 이후 똑같은 일이 반복되면서 효능감은 이제 깊은 실망과 무력감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 최근 몇 차례의 선거에서 있었던 일부 지역에서의 유례없이 낮은 투표율, 높아져만 가는 무당층의 비율은 바로 이런 무력감의 반영에 다름 아니다.
(2) 편 가르기의 문제
한국 정치의 가장 큰 문제는 편 가르기다. 이것은 단순한 감정상의 문제가 아니라 선거의 승리를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에서 나온 전략이다. 총선의 투표율은 대체로 50 내지 60 퍼센트 중반대로 나타난다. 바꾸어 말하면 25 내지 30 퍼센트의 득표를 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있다는 뜻이다. 시간과 노력을 들여서 중도층이나 더 나아가 상대 정당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설득해서 마음을 바꾸는 것보다는 기존의 지지자들을 결집시켜서 투표소에 가게 하는 것이 최선의 전략으로 여겨진다. 최근 전광훈 목사가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에게 “전라도는 영원히 (국민의힘 지지율이) 10 퍼센트다. 영원히 10 퍼센트.”라고 단언한 것은 이러한 사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어차피 표가 되지 않을 사람들에게 잘 보이려고 하지 말고 지지층에 먹힐 수 있는 전략을 구사하라는 의미다. 민주당, 국민의힘을 가리지 않고 선거 때 ‘집토끼론’이 득세하는 것은 이런 논리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지지층 결집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정치는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바로 적대적 세력의 양산이다. 원래 지지층 결집에 가장 효과가 큰 전술은 상대 정당과 그 지지자들에 대한 극단적인 비난과 조롱이다. 자기 당을 지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하려면 시간과 힘이 든다. 복잡한 정책, 공약에 대한 설명으로는 사람들의 귀를 사로잡기도 힘들다. 그러나 “저쪽은 토착왜구야.”라고 비난을 퍼붓는 것은 간단하다. “저쪽은 친북이야.”도 마찬가지다. 상대방이 해명을 하기 어렵게 막아버리는 효과도 크다. 친일파나 친북 세력이 우리 사회에서 무슨 발언권이 있겠는가. 잘못을 저질렀을 때 대응하기도 편하다. 상대방이 더 나쁘다고 지적하면 마치 면죄부를 받는 것처럼 여기는 것이 한국 정치인들의 생각이다.
정치의 본질은 갈등과 경쟁이다. 상대편 주장의 모순을 비판하고 자신의 논리를 내세우는 것은 정치 현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러나 현재의 상황은 도저히 정상적인 경쟁이라고 할 수 없다. 상대를 경쟁 상대가 아닌 적으로, 설득해서 함께 가야 할 동료가 아닌 배제해야 하는 악으로 본다. 이런 인식으로 무장한 채 상대편을 향해 극단적인 공격을 퍼붓는 것은 필연적으로 지지층보다 훨씬 더 큰 규모의 부정적 세력을 낳게 된다. 이것은 숫자로도 나타난다.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대통령의 지지율,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모두 30 퍼센트 대로 엇비슷하다. 그러나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부정평가는 60 퍼센트 대를 상회한다. 여야 정당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선거 승리를 가능하게 해주는 지지층의 결속은, 그 부작용으로 두 배에 가까운 부정적 여론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이런 지형에서 성공을 거두기는 극히 어렵다. 국민의 대다수가 정권을 싫어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는 ‘역대급 비호감 선거’로 일컬어졌다. 선거를 앞두고 삼삼오오 모인 자리에서 벌어지는 논쟁에서도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의 장점을 내세우기보다는 “어떻게 윤석열을 찍을 수가 있느냐.” “그렇다고 이재명을 찍으란 말이냐.”라며 상대 후보를 깎아내리는 언사가 훨씬 더 많았다. 윤석열 후보에게 투표한 유권자 중에 상당수는 윤 후보를 지지한다기보다 “이재명이 되는 꼴은 차마 볼 수가 없어서” 표를 던진 것이다. 이재명 후보에게 표를 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누가 당선되더라도 진짜 그 후보를 지지해서 투표한 유권자의 비율은 수치로 나타난 득표율보다 적을 수밖에 없고, 구조적으로 정권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더 많을 가능성이 높다. 이것은 어느 쪽이 정권을 잡든 당연히 국정동력을 약화시킨다. 각 진영이 승리를 위한 최선의 전략이라고 선택하는 지지층 결집이 결과적으로는 쌍방 모두에게 장애물로 작용하는 것이다.
역대 선거에서 합리적 중도세력이 버티지 못하고 소멸된 원인도 여기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극과 극이 부딪히고 상대의 몰락을 최우선적 목표로 삼다보니 다른 의견이나 지향을 내세우는 세력은 그저 장애물로 여겨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에서 내부의 문제를 지적하거나 이견을 내는 비주류 세력이 ‘수박’이니 ‘내부총질’이니 하는 욕을 먹는 현상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심지어 내부에 만연한 성폭력 문제를 꺼내도 “해일이 다가오는데 조개를 줍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지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 때문에 경쟁을 하는지, 무엇을 위해서 집권을 하는지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다.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사고와 의견 개진은 억제되고 진영의 이익과 승리를 위해서 복무해야 한다는 정체성 정치가 판을 친다.
편 가르기 문제에서 또 하나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 한국 정치 지형상 야당이 처하게 되는 입장이다. ‘승자독식형’이라는 비판을 받는 우리 헌법의 권력구조 아래에서는 권한도 책임도 모두 집권세력 특히 대통령에게 집중된다. 무엇이라도 성과를 얻으면 여당의 몫이 된다. 반대로 경제가 어려워지거나 예상하지 못한 사고가 나도 역시 집권당이 비난을 받는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야당 입장에서는 ‘되는 일이 없고 상황이 나빠지는 것’이 최선의 상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을 끌면서 5년을 보내다가 대선을 맞으면 “그동안 정부가 한 일이 뭐냐?”라고 외치면서 정권교체를 주장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야당의 입장에서 정치공학적으로만 보면, 집권여당에 협조해서 성과를 내는 것은 바보짓이 된다. 때문에 과거 현실 정치에서 어떤 일이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면 야당과 ‘주고받기 식’, ‘기브 앤드 테이크’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야당에게 여당이 얻는 만큼의 정치적 이득을 제공하고 그 대신 집권세력이 추진하는 목표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진영 간의 대립과 편 가르기가 심해지면서 여당이 야당의 희망을 들어주면서 협조를 구하는 일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 문재인 정부도 힘으로 밀어붙이는 것 이외의 방법은 거들떠보지 않았고 이번 윤석열 정부도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면 야당인 민주당으로서는 어떤 일에도 협조를 하지 않으면서 정부가 성과를 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인 대응이 된다. 이것은 정권이 교체되어 여야가 바뀌어도 마찬가지이다. 문재인 정부나 윤석열 정부나 변함없이 야당의 발목잡기 탓을 하지만,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누가 정권을 잡든 되는 일이 없는 상황이 계속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 만들어낸 편 가르기는 일상에서 정치적 입장에 따른 반목과 불화를 낳는다. 조국 사태 당시 집권세력의 자가당착적인 내로남불과 억지 논리는 우리 사회 구성원의 가슴에 깊은 상처를 냈다. 전에는 정치적 입장이 다를 때 논쟁과 말싸움을 벌였다면 이제는 아예 대화를 하지 않는다. SNS를 비롯한 공론장에서는 비슷한 의견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얘기를 나눈다. 이런 일들이 우리 사회를 조각조각 나누고 대한민국의 에너지를 떨어뜨린다.
(3)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문제
민주당의 잘못에 대해서 지적할 것은 수도 없이 많지만 대표적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지금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양곡법, 방송법 등의 개정이 진짜로 필요한 것이라면, 왜 집권하고 있던 여당 시절에는 안 했나?” 사실 방송법 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민주당의 행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렵다. 박근혜 정부 당시 민주당이 야당이던 때에 가장 강력하게 추진하던 과제 중 하나가 방송법 개정이었다. 공영방송의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하기 위해 정부 여당의 영향력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그러다가 여당이 되자 정반대로 태도를 바꾸어서 여당의 힘을 최대한 누렸다. 그 후 다시 정권교체가 되니까 또 입장을 바꿔서 여당의 입김이 미치지 않도록 법을 개정해야 된다고 한다. 도대체 민주당의 시각에서 볼 때 방송법 개정은 해야 되는 일인가, 아닌가. 해야 한다면 압도적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던 여당 시절 했어야 한다. 아니라면 그대로 둬야 한다. 입장을 바꾸려면 최소한 여당이었을 때 개정을 하지 않은 데 대한 진심어린 사과라도 있어야 한다. 이 모순에 대해 답을 하지 못하는 것이 지금 민주당의 근본적인 문제다. 내가 하면 괜찮고 남이 하면 문제라는 태도. 정략적으로 자신들에게 유리한 이슈에만 관심을 갖는 모습. 여기에서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신이 생겨난다.
국민의힘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무엇을 했으며, 앞으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을 것이다. 집권 1년이 지났지만 서둘러 청와대를 옮긴 것 외에 이렇다 할 성과를 찾기 어렵다. 비판과 견제에만 힘을 써도 되는 야당과 달리 집권 여당은 문제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들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일들에 대해서 여당이 관심과 노력을 기울이는지는 의문이다. 물론 윤석열 정부와 여당은 국회에서 압도적 다수 의석을 점하고 있는 야당의 비협조를 이유로 항변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면 그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 무슨 시도를 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지금껏 대통령은 야당 대표와 한번도 만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내년 총선에서 압승을 거두거나 갑자기 야당의 협조를 얻을 것이라는 전망을 제시하지도 못 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에서 나오는 메시지의 대부분은 지난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난, 그리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적 문제에 대한 지적이다. “민주당이 나쁘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미 그런 판단에 따라 정권을 교체해 주었다. 다 아는 얘기를 고장 난 녹음기처럼 계속 되풀이하는 것은 국민들을 지치게 만들 뿐이다.
(4) 총선과 그 이후에 대한 전망
총선이 1년 남은 시점에서 결과를 구체적으로 예측하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고 별 의미도 없다. 그러나 크게 볼 때 별로 달라질 것은 없어 보인다. 언론은 대체로 1)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2)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사법 리스크가 선거의 승패에 영향을 미칠 가장 중요한 변수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특별한 사건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긍정평가 30 퍼센트 대 부정평가 60 퍼센트 정도인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율이 역전되는 일이 벌어지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이재명 대표의 각종 혐의를 두고 진행되고 있는 수사나 재판도 총선 전에 극적으로 무죄나 유죄로 결론이 나기 어렵다. 그렇다면 유권자들은 양 진영에 대한 부정적 요소를 인식하고 투표소로 향할 것이고, 그런 상황에서 한쪽의 압승이라는 결과가 나오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를 비판하면서 견제를 위해 야당에 표를 달라고 호소할 것이다. 현 정부에 대한 비판은 일정 부분 유권자들의 공감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들은 그렇다고 해서 문재인 정부 시절과 같은 모습으로 돌아가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 평가는 이미 지난 대선 때 내려졌다. 민주당의 문제는, 지난 정부 때 국민들이 염증을 냈던 모습에 대해서 반성하거나 사과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소득주도성장, 부동산 대책 등 잘못된 경제정책과 그런 정책을 옹호하기 위한 견강부회, 입장에 따라 말을 바꾸는 내로남불, 정치적으로 입장이 다른 사람들을 ‘토착왜구’, ‘친일파’로 부르면서 ‘총선은 한일전!’이라는 구호를 대놓고 외치던 저열함, 이런 잘못들에 대해 인정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오히려 ‘개혁(?)’이 부족했다고 개탄한다. 잘못이라는 인식 자체가 없는 듯하다. 그러나 그때의 기억을 여전히 가지고 있는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어떤 논리로 정부 여당을 비판하더라도 야당에 지금과 같이 압도적인 의석을 안겨주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부에 힘을 실어달라면서 표를 얻으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총선은 집권한지 만 2년이 되었을 때 실시된다. 의석이 부족하다는 변명만으로는 부족하다. 유권자들에게 내놓을 실적이 있어야 한다. 보다 큰 문제는 지금까지 보여준 윤석열 정부의 모습 그 자체다. 조금도 미래지향적인 느낌을 주지 못했다. 집권세력의 유일한 스피커는 대통령이다. 나머지는 모두 눈치를 본다. 대통령의 ‘통치철학과 결단’을 따르지 않으면 국정운영의 훼방꾼 취급을 받는다. 지지자만 바라보고 편 가르기를 하는 것은 문재인 정부 때와 대동소이하다. 달라진 점이 별로 없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면 국민의힘도 압승을 기대하기는 어렵다.
걱정스러운 것은 총선 이후 다음 대선까지 3년이다. 대통령의 국정 장악력은 극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가장 힘이 있는 집권 후 2년은 이미 지났다. 공천에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여당 의원들은 용산의 눈치를 보지 않을 것이다. 야당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대표가 낙마를 하든 안 하든 민주당 지도부는 3년 남은 대선까지 윤석열 정부가 내놓을만한 실적을 쌓지 못하도록 발목을 잡는데 온 힘을 다할 것이다. 총선 이후 3년간 여야는 진짜 중요한 문제는 다루지도 못 한 채 서로 비난만 퍼붓다가 대선을 맞아 “그래도 우리가 낫지 않느냐.”라고 유권자에게 호소하는 암울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양 진영이 부정적 에너지로 연명하는 이런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지 여부에 한국 정치의 운명이 달려 있다.
3. 제언
(1) 리더십의 변화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쉽고 간단한 방법은 지금 존재하는 양 진영이 변화하는 것이다. 공학적으로 이기는 것만을 추구하다가 정치판 전체의 수준을 떨어뜨리고 국민들에게 환멸을 안겨주는 지금까지의 모습을 바꿀 수 있다면 그것이 최선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공동선에 대한 인식이다. 경쟁을 하더라도 각 진영의 승리보다 우리 사회 전체의 유지와 발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이 정치인으로서 당연히 가져야 할 기본적 소명의식이다. 그러나 지금은 특정 정파에 소속된 멤버라는 정체성이 정치인들의 의식을 지배한다. 예를 들어 법원에서 불리한 판결이 나왔다고 해서 판사의 신상을 뒤지고 인신공격을 하는 행태를 하다 보면 당장은 지지층의 응원을 받을지 모르지만 사법부에 대한 신뢰라는 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망가뜨린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한쪽에서 그런 일을 시작하면 반드시 상대편에서도 똑같은 대응을 하기 때문에 결국 정치권 전체가 퇴행을 불러오는 셈이 된다. 그러나 현장에서 겪어보면 그런 논리가 먹히지 않는다. 문재인 정부 당시 진영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정치인에게 예상 밖의 유죄판결이 선고되었을 때 당 지도부측에, ‘판결을 비판하더라도 판사에 대한 공격은 하지 말자, 강성 지지자들이 그런 행태를 보인다면 자제를 당부하는 메시지를 내자.’는 요청을 간곡하게 한 적이 있다. 돌아온 것은 ‘지금은 지지층의 마음을 달랠 때다.’라는 답이었다. 그 판사의 출신지역, 학교, 가족사항과 경력은 인터넷에서 낱낱이 파헤쳐지고 극단적인 조롱과 비난의 소재가 되었다. 그 후 정치적 사건의 판결이 나올 때마다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어느 쪽이든 스스로 이런 일을 해서는 안 된다는 문화를 만들고 강성 지지자들도 자제시켜야 지금의 상황이 바뀔 수 있다.
또한 진영 내이든 혹은 다른 진영과의 관계에 있어서든 소통과 대화가 있어야 한다. 이것은 상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진영이든 혹은 진영 내에서 다른 의견을 가진 구성원이든 우리 사회를 보다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국민들을 행복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면 결국 각자의 차이는 방법에 관한 것일 수밖에 없다. 방법에 대한 이견은 얼마든지 토론을 통해서 해결해 나갈 수 있다. 그러나 상대를 ‘친일파’나 ‘친북 세력’으로 본다면 그런 대화가 불가능해진다. 애초에 상대의 목적이 불순한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저지해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총선은 한일전’ 같은 구호는 애초에 정치를 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시하는 것과 다름 없다.
(2) 새로운 세력의 구축 - 정의, 조건, 전망
그러나 기존의 진영에서 리더십이 변화를 하리라는 전망은 쉽지 않다. 모든 정치인과 정치 세력은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평가받고 싶어 하지만, 지금껏 해온 일로 평가받는다. 편 가르기와 진영 논리를 비롯한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들은 누차에 걸쳐 지적되어 왔지만 개선되기는커녕 점점 심화되고 있다. 한쪽 진영의 퇴행이 상대진영의 퇴보를 불러오기도 한다. 선거에서는 절대 평가가 아닌 상대 평가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우리 편의 수준이 낮아져도 별 걱정을 안 한다. 상대가 더 못한다고 말할 수 있으면 괜찮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의 원인은 결국 선택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정치 세력 모두를 불신하지만 현실적으로 그 중 그나마 덜 나쁜 쪽을 선택해야 한다. 소신을 가진 정치 지망생들도 달리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는 기존 정당 안에서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것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옵션이 열려야 한다. 앞서 본 것처럼 2017년 이후만 보더라도 한국 유권자들은 과반수의 표를 줬던 박근혜 정부를 탄핵하고 민주당 정부에 힘을 몰아줬다가 다시 실망을 겪고 국민의힘으로 정권 교체를 했지만 상황이 나아진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모든 정치 세력이 긍정평가보다 부정평가가 높지만 온존하고 있는 현실. 이것이 바로 적대적 공생관계이며 새로운 세력이 출현하지 않으면 이런 교착을 깰 수 없다.
언론에서는 흔히 새로운 세력을 제3지대라고 부른다. 중도세력이라고도 한다. 보수/진보로 나뉜 스펙트럼에서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는 의미다. 그러나 틀린 말이다. 보수/진보의 구분은 이미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각각 진보와 보수의 전통적 가치를 지키고 있다고 볼 수도 없다. 무엇보다 새로운 세력이 여야의 중간에서 눈치를 보는 입장이 된다면 애초에 존재 가치가 크다고 하기도 어렵다. 새롭게 출현할 세력은 기존 한국 정치의 문제들을 일소하는 합리성과 객관성을 갖추어야 하고 자기 편에 유리한 의제가 아닌 우리 사회에 진짜 중요한 문제를 찾아서 제기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단순히 기존 정당들의 행태를 반대하고 비판하는 ‘반사체’가 되는 데서 존재 이유를 찾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 비전을 제시하는 ‘발광체’가 되어야 한다. 양 진영으로 나누어져 있는 현재의 정치 지형을 3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세력을 갈아치우겠다는 의지와 힘이 있어야 새로운 세력으로서 의미가 있다.
과거 우리 정치판에 민주당 계열이나 국민의힘 계열이 아닌 제3의 인물이나 세력이 등장한 일은 몇 차례 있었다. 박찬종, 김종필, 안철수 등이 주목을 받았고, 지역을 기반으로 한 공화당, 자민련 및 이념, 계급을 기반으로 한 진보정당이 정치권에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한때의 작은 성과를 내는데 그쳤을 뿐 지형 자체를 바꾼 일은 없다. 몇 가지 원인을 짚어볼 수 있다. 우선 인지도가 높은 인물을 중심으로 모인 경우 기존의 정치와 구별되는 뚜렷하고 구체적인 내용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많다. ‘깨끗한 인물’, ‘새 정치’ 등의 구호만으로는 어떤 변화를 추구하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내가 하면 잘 할 수 있다.’만으로는 부족하다. 영속적인 정당이 아니라 특정 대선주자를 돕기 위해서 일시적으로 모인 응원부대의 성격을 가진 세력은 내부적으로 건강한 구조를 갖추기도 어렵고 자칫 추종자 모임의 성격을 띨 위험도 있다. 지역이나 이념을 기반으로 하는 세력의 경우, 보편적으로 납득 가능한 집권 이유를 제시하지 못하는 한 유권자의 일부만을 대표하는 닫힌 조직이 될 위험성이 높다.
현실적인 문제도 있다. 새로운 세력에 기대되는 역할은 과중한데 현실적으로 그것을 충족시키는 것은 극히 어렵기 때문이다. 제3세력이 등장하면 언론이나 유권자들은 집권의 가능성을, 그것도 당해 선거에서의 가능성을 물었다. 때문에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만한 주자가 필요했고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에 비견될만한 조직도 갖추어야 했다. 그러나 기존의 정당에 필적할만한 규모와 내실을 갖추고 대표 정치인도 국정을 이끌만한 실력을 키우려면 장기간의 노력과 투자, 그리고 시행착오가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대선을 1년 정도 남긴 시기 이전에는 정치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 자체가 낮기 때문에 그런 준비를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미리 출전을 표방하고 조직을 가동하기 시작하면 기존 세력의 견제를 집중적으로 받을 가능성이 있기도 하다. 결국 새로운 세력은 기존 정당과는 비교할 수 없이 미비한 상태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를 치르게 되는데, 한때 바람을 타고 지지율을 올리더라도 결국 준비가 부족한 후보와 조직에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냉정한 평가 앞에서 좌절해 왔다.
총선을 1년 앞둔 지금의 상황에서도 비슷한 이유로 새로운 세력의 등장을 비관적으로 보는 시각들이 있다. 마땅한 대선 주자가 없고 기존 정당을 대체할만한 조직을 구성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한다. 그러나 역으로 그런 상황이 오히려 새로운 세력에 대한 과대한 기대를 낮추고 시간과 여유를 부여한다고 볼 수도 있다. 유권자들은 지금 당장 내년 총선에서 1당이나 2당의 자리를 차지하고 그대로 직진해서 대선에 도전할 세력을 등장하리라는 기대를 하지 않는다. 다만 기존 정치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지적하고 고쳐나가는 계기를 만들 수 있는 세력, 진짜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틀을 만들 수 있는 세력이 등장한다면 얼마든지 선택을 고려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수도권을 중심으로 총선에서 30석 정도를 차지할 수 있는 정당이 나타난다면 한국 정치를 밑바닥부터 바꿀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유권자들은 그런 변화를 기대하고 있으며 개인적으로 그 방법이 우리 정치를 달라지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정치는 인물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이명박 정권이 저물어갈 때 ‘가치보수’를 표방한 박근혜가 유권자들의 기대를 받았고, 한때는 안철수 현상이 큰 주목을 끌기도 했다. 그 후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자 문재인 대통령이 통합의 정치를 하리라는 예찬을 받았다. 문재인 정부마저 기대에 못 미쳤을 때는 ‘공정과 상식’을 내세운 윤석열 대통령이 정치를 바꾸리라는 희망과 함께 등장했으나 역시 별다른 변화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지금 거명한 모든 정치인들은 추종자들로부터 하나같이 학습능력이 너무나 뛰어나서 자신이 활동하던 분야가 아닌 다른 영역에 있어서도 대단한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는 칭송을 받았으나 실제로는 그에 크게 못 미쳤다. 한국의 어떤 국가 지도자도 임기 전에 받았던 평가보다 퇴임한 후에 더 나은 점수를 받지 못했다.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탁월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메시아처럼 등장해서 우리 정치판을 한 번에 바꿀 수 있다는 기대는 이제 설득력을 잃은 지 오래다. 유권자들도 식상해 한다.
실패한 대통령이 연이어 계속 나온다면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한다. 사실 우리 정치를 바꾸려면 개헌을 포함해서 지금의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꾸어야 하는지 깊이 고민해야 한다. 승자독식, 제왕적 대통령제, 집권여당이 모든 권한과 책임을 독점하고 야당은 반대하고 저지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되는 체제에서는 건강하고 좋은 정치가 자라기 어렵다. 현행 헌법의 틀을 넘어서 시스템 자체를 바꾸기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새로운 세력은 이런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인물 중심이 아닌 문제 중심의 새로운 세력, 지금 당장의 집권이 아니라 조금씩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면서 경험을 쌓아나갈 수 있는 정당의 등장이 필요한 까닭이 여기에 있다.
(3) 350만원을 버는 커플
결국 정치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은 보통 사람들의 삶이다. 둘이 합쳐서 매달 평균 350만원을 버는 커플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대기업에 정규직으로 근무하면서 안정되고 미래가 보장된 삶을 누리는 것은 아니다. 택배도 하고,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기도 하면서 잘 버는 달은 400만원 넘게 벌기도 하고 운이 없는 달은 수입이 300만원에 못 미치기도 한다. 일자리를 잡지 못해서 수입이 없을 때도 있다. 어떻게 하면 이 커플이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지게 할 것인가. 장래를 예측해서 계획을 세울 수 있고 힘껏 노력하면 조금씩 삶이 나아지리라는 전망을 가질 수 있을까.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가질 생각이 들게 하려면 어떤 정책을 만들어야 하고 어떤 제도를 도입해야 할까. 기존의 정치는 이런 일을 거의 못해왔고 관심도 별로 없었다. ‘총선은 한일전!’ 또는 ‘윤석열 정부에 힘을 모아주자!’는 구호에 이 커플을 위한 자리는 없다. 그러나 정치가 진짜 관심을 갖고 해야 하는 일은 바로 350만원을 버는 우리 주변의 커플을 위해 길을 제시하고 답을 마련해 나가는 것이다. 구성원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문제를 정확히 선정해서 그에 집중하도록 하는 것이 정치 변화의 첫걸음이다. 그 길을 걸을 세력이 있다면 분열되고 반목하는 우리 사회를 통합시키고 불안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다시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