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오존맨' 고어, 환경대통령 되나

[세계를 움직이는 뉴월드 파워] <7> 아카데미상 수상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25일(현지시간) 아카데미상을 수상했다. 미국 정치인 가운데 노벨상 수상자는 있지만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것은 그가 최초다.

고어가 던진 '미래의 묵시록'

그에게 아카데미위원회가 안겨준 상은 장편 다큐멘터리상과 주제가상 두개. 그가 직접 제작하고 해설자로 출연까지 한 환경다큐멘터리 영화 <불편한 진실(An Inconvenient Truth)>이 화제의 작품이다. 다큐멘터리 영화로는 드물게 3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히트를 하기로 했던 이 영화에서 그는 직접 환경파괴의 현장을 뛰며 환경재앙을 경고했다.

그는 수상소감에서 "환경문제는 정치적인 문제가 아닌 우리 지구의 문제"라며 "정치와 영화는 다르지만, 하고 싶은 말을 하는 데 영화가 도움이 되리라는 생각에 영화를 제작하게 됐다"고 밝혔다.

고어가 만든 영화가 아카데미상 후보로 올랐을 때 많은이들은 그의 수상을 예견했었다. 아카데미가 원래 '친민주당' 성향이 강하기 때문이다. 또한 환경문제는 부시의 대표적 실정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불편한 진실>을 본 사람들은 이 영화 자체의 수상 자격을 의심치 않는다. 그만큼 던지는 메시지가 충격적이기 때문이다.

영화는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가 북극의 빙하를 10년을 주기로 9%씩 녹이고 있으며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머지않아 플로리다, 상하이, 인도, 뉴욕 등 대도시의 40% 이상이 물에 잠기고 네덜란드는 지도에서 사라지게 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영화는 또 "빙하가 사라지면서 빙하를 식수원으로 사용하고 있는 인구의 40%가 심각한 식수난을 겪을 것이며, 해수면의 온도가 상승하면서 2005년의 '카트리나' 같은 초강력 허리케인이 2배로 증가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영화는 "이 같은 끔찍한 미래가 앞으로 20여 년 안에 발생할 수 있다"며 전 세계적 공동 대응을 강조했다. 말 그대로 '미래의 묵시론'인 셈이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 영화 <불편한 진실>에 직접 해설자로 출연해 환경재앙의 심각성을 전문가적 식견으로 설명하고 있다..ⓒ<불편한 진실>


30년동안 환경재앙 경고한 '오존맨'

영화를 감독한 데이비드 구겐하임 감독은 "30년 동안 우리에게 진실을 전달해 주려했던 앨 고어에게 감사한다"고 모든 공을 돌렸다. 그의 찬사는 지나친 과장이 아니다. 실제로 고어는 지난 30년간 그 누구보다 일관되게 환경보존을 위해 동분서주해왔기 때문이다.

그는 아카데미상뿐 아니라 올해 노벨평화상의 강력한 후보이기도 하다. 노르웨이 환경장관을 지낸 브렌데 보르게 의원은 지난 1일 기자회견을 갖고 고어를 올해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추천했다.

"고어 전 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했다. 노벨평화상 후보의 자격조건은 변화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고어는 그 같은 변화를 만들어냈다. 고어는 다른 이들과 달리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인 지구 기후변화의 문제를 제기하며 그의 정치적 위치를 이용해 지구온난화 문제를 효과적으로 부각시켰다.”

2000년 부시 미대통령에게 억울하게 대통령자리를 빼앗긴 이래, 세인의 관심속에서 멀어진듯한 고어를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이다. 그가 노벨평화상을 받으리란 보장은 없다. 1백여명의 내로라 하는 인사들이 후보로 추천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빌 클린턴 전 대통령도 포함돼 있다. 그러나 그가 후보로 추천됐다는 의미는 중차대하다. 정치인에 앞서 한 인간으로 지난 30년간 그가 보여온 환경파수꾼 노력에 대한 범지구적 인정이기 때문이다.

고어는 1992년 미국 부통령이 돼 8년간 미국 정부를 쥐락펴락하기 전부터 환경운동가로서 국제적 명성을 얻어왔다. 그에게 붙여진 닉네임은 '미스터 오존' '오존맨'. 고어는 이번에 영화 <불편한 진실>로 아카데미상을 거머쥐기도 했으나, 십수년 전에는 저서 <균형 속의 지구>로 세계적 베스트셀러 작가의 자리에 오르기도 했다. 그는 이 책에서 <불편한 진실>과 마찬가지의 경고메시지를 지구촌에 전했고, 당시 세계는 그에게 "지구미래에 대해 가장 통찰력 있는 환경사상가"라는 최고의 찬사를 보냈다.

당시 상원의원이던 그는 1992년 6월 리우데자네이로 지구환경정상회담에 참석, 석유재벌과 유착한 '아버지 부시 정권'의 반환경정책을 신랄히 비판해 지구촌 환경파수꾼들에게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했다.

농장경영을 통해 깨달은 환경의 중요성

환경 중요성에 대한 그의 각성은 청년시절 농장경험에서 비롯된다. 그는 하버드대학 행정학과를 수석으로 졸업한 뒤 당초 정계에 입문하려 했으나, 1970년 존경하던 부친이 정적들의 음해로 정계를 은퇴한 데 충격받아 지금의 부인 메어리 엘리자베스 티퍼 애치슨과 결혼한 뒤 고향인 테네시주 카시지에서 가족농장을 경영하며 지냈다. 지금으로부터 30여년전 그는 흙을 뒤집고 농작물을 키우며 환경의 중요성을 생체험했다.

그후 그는 6년간 지방지 <네슈빌 테네시언>의 기자가 돼 발로 현장을 누비며 환경문제, 정보문제 등에 천착했다. 그가 오늘날 관람객들에게 큰 충격을 안겨준 리얼한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할 수 있었던 것 역시 당시 기자생활 경험이 큰 힘이 됐다.

고어가 훗날 '정보 고속도로'로 대변되는 세계적 정보화를 진두지휘하게 된 것도 그 밑바탕은 환경이었다. 정보화야말로 위기의 미국을 되살릴 수 있는 첨병이자, 지구와 공생가능한 환경친화적인 산업이라는 판단에서다.

고어는 환경론자로서 1980년대 미-소간 핵군축을 이끌어내는 데도 큰 역할을 했다. 그는 1977년 뜻을 바꿔 농장 및 기자회견을 청산하고 부친의 뒤를 이어 테니시주 하원의원에 당선, 정식으로 정계에 입문했다. 1981년 그는 하원 정보위원회에 배정된다. 이때부터 1년간 그는 군축전문가들로부터 핵무기 군축문제를 교수받으며 연구를 계속한 결과, 1982년 3월 하원 회의실에 모인 군축전문가들 앞에서 자신의 독자적 다탄두 핵미사일 감축방안을 당당히 밝혀 전문가들로부터 "획기적 아이디어"라는 찬사를 받았고, 당시 소련측도 이에 대한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이 감축안은 실제로 1985년 소련의 고르바초프 집권후 본격화된 소련과의 다탄두 핵미사일 통제협상 때 주요한 정책자료로 활용됐다.

그는 2000년 대선때 부시보다도 많은 표를 얻고도 부시에게 대통령직을 내주어야 했다. 각종 의혹을 낳은 부시의 '더러운 승리'였다. 그후 세계는 부시의 일방주의와 반환경정책으로 재앙적 위기에 경험해야 했다. 그로부터 7년이 지난 지금 국내외의 많은이들은 고어에게 2008 대선출마를 강권하다시피하고 있다. "고어가 대통령이 됐다면 세계는 보다 안전해졌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고어는 그러나 응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압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아카데미상도 그런 압력의 하나다. 노벨평화상까지 그에게 돌아간다면 압력은 한층 거세질 것이다. 과연 '부시 학습효과'로 그 중요성이 더욱 인지된 세계대통령 격인 미국대통령에 고어가 도전장을 던질 것인지, 예의주시할 일이다.
임지욱 기자

댓글이 0 개 있습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