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하나의 별이 지다...이돈명 선생 타계
70~80년대 공안시대에 한결같은 '인권 지킴이'
전남 나주에서 태어난 이 변호사는 조선대 정치학과를 졸업한 뒤 고등고시 사법과(3회)에 합격해 판사로 근무하다 1963년 변호사로 개업했다.
고인은 유신과 전두환 정권으로 이어지는 70~80년대 온갖 고초를 겪으면서도 인권 수호의 선봉에 섰다.
그는 1974년 4월 발생한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의 변론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인혁당사건, 김지하 반공법 위반사건, 청계피복 노조사건, 크리스천아카데미 사건, 10.26 사태를 일으킨 김재규 변호 등 1970년대 주요한 시국 사건에서 빠지지 않고 변론을 맡았다.
80년대 들어서도 광주 민주화운동을 비롯해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 권인숙씨 성고문 사건 등의 변론을 맡으며 전두환 정권의 눈엣가시가 됐고, 86년에는 이부영 당시 민통련 사무차장을 은닉했다는 누명을 쓰고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이렇듯 갖은 핍박과 고초에도 불구하고 인권 수호에 앞장서면서 고인은 황인철ㆍ조준희ㆍ홍성우 변호사와 함께 '인권변호사 4인방'으로 불렸다.
1986년에는 한승헌ㆍ홍성우ㆍ조영래 변호사 등과 함께 `정의실현 법조인회(정법회)'를 결성했으며 이 모임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의 모태가 됐으며, 1987년에는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를 맡아 반독재 투쟁의 일선에 서기도 했다.
고인은 고 김수환 추기경과의 인연으로 천주교에 입문한 뒤 천주교정의평화위원회 인권위원장, 천주교 인권위원회 이사장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하기도 했다.
빈소는 삼성의료원 장례식장 14호실이며 발인은 15일 오전 8시. 고인은 경기 남양주시 별내면 천주교 성당묘지에 영면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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