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2007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맨유)의 4시즌만의 우승으로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14일 새벽(한국시간) 맨유의 홈구장인 올드트래포드에서는 맨유와 웨스트햄 유나이티드와의 시즌 38라운드 마지막 경기가 벌어졌다. 이날 경기에서 맨유는 웨스트햄 테베즈에게 결승골을 허용, 0-1로 패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 데 실패했지만 일찌감치 리그 우승이 확정된 상황이었으므로 선수들의 머리속에는 경기 시작 전부터 이미 우승트로피만이 그려져 있을 뿐이었다.
무릎부상중인 박지성, 우승행사장 불참 아쉬움
경기가 끝난 직후 드디어 맨유의 선수들은 한 명 한 명 우승메달을 목에 걸고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며 환호했다. 경기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도 함께 환호성을 울리며 맨유의 정상탈환의 기쁨을 나눴다.
국내팬들은 무릎부상으로 수술을 받고 재활중인 박지성이 잠깐이나마 우승행사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끝내 그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박지성은 리그 경기 총 38경기중 14경기에 출전,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EPL 정식우승메달 수상자에 포함되기는 했으나 아직 목발을 짚어야 하는 등 거동이 불편한 관계로 동료선수들과 우승트로피를 들어올리고 샴페인 세례를 나누는 즐거움을 박지성은 포기해야 했다.
그러나 알렉스 퍼거슨 감독이 얼마전 언급했듯이 박지성은 맨유의 EPL 챔피언 복귀에 알토란 같은 알찬 활약을 펼친 당당한 수훈선수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EPL 데뷔 2년만에 그것도 세계 최고명문 클럽에서 박지성은 확고한 자신의 영역을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팀의 주축선수로 성장한 것이다.
히딩크의 "박지성, 벤치를 지키는 시간 많을 것" 결국은 '기우'
박지성이 거스 히딩크 감독의 그늘아래 있던 PSV 에인트호벤 시절 2005-2006 시즌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4강전에서 박지성의 플레이를 지켜본 맨유 퍼거슨 감독은 직점 박지성에게 전화를 걸어 맨유로 올 의사가 있는지를 물었다.
히딩크 감독은 퍼거슨이 박지성을 원한다는 말을 반신반의 했고, 나중에는 박지성이 맨유에 가더라도 벤치를 지키는 일이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하는 등 박지성의 성공가능성에 대해 다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히딩크 감독의 우려섞인 예상은 보기좋게 빗나갔다. 박지성은 맨유 입단 이후 차근차근 자신의 존재감을 EPL과 맨유 팬들에게 각인시켜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지 박지성을 '티셔츠 판매용'이라 비아냥 거리던 목소리는 어디에서도 듣기 어려워졌다. 박지성은 세계 최고의 프로축구무대에서 세계 최고의 선수들과의 경쟁을 통해 오직 실력으로 스스로를 입증하는 데 성공한 셈이다.
타고난 공간지각 능력에 골 결정력까지 보완
'티셔츠 판매용 선수'라는 비아냥을 딛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핵심선수로 성장한 박지성 ⓒ연합뉴스
박지성의 플레이가 EPL에서 인정받는 이유는 그만의 뛰어난 축구센스에 힘입은 공간지각능력에 기인한바가 크다.
공을 소유하지 않은 상황에서 어느 공간으로 이동해 있어야 하는지를 알고 플레이하는 박지성의 축구지능은 퍼거슨 감독이 별도로 언급하며 칭찬할 정도다. 또한 EPL 진출 2년차인 올 시즌들어 박지성은 그동안 지적되어오던 골결정력과 골을 넣은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하는 위치선정능력까지 갖춰 EPL 최정상급 공격형 미드필더로서 인정받게 됐다.
앞서도 언급했듯이 박지성의 올 시즌 총 출전경기수는 38경기 중 총 14경기에 불과하다. 이중 박지성이 선발출전했던 8경기에서 맨유는 모두 승리했으며, 박지성은 부상으로 시즌을 마감하기까지 5골 2어시스트를 기록했다. 2경기당 1공격포인트를 기록한 셈이다.
특히 박지성이 주로 활약했던 지난해 연말부터 지난달초까지는 맨유가 시즌 중 가장 힘든 시기였다. 시즌 초반 좋은 활약을 펼치던 라이언 긱스 등 베테랑 선수들이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었고, 웨인 루니 등 주축 공격진들은 부진에 빠져있었다. 이때 박지성과 스웨덴 출신의 골잡이 헨릭 라르손이 없었다면 결코 맨유는 UEFA 챔피언스 리그, FA컵 등 리그 경기 이외의 대회일정까지 소화하면서 리그 우승을 위한 첼시와의 피말리는 경쟁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퍼거슨 감독도 기회가 있을때 마다 이점을 언급했다.
박지성, 차범근을 넘어라
1980년대 유럽 최고의 축구리그라 평가되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맹활약 하던 당시의 차범근(현 수원삼성 감독) ⓒSK텔링크
이번 EPL 우승메달 획득으로 박지성은 아시아인 최초의 EPL 우승과 함께 유럽 2개 리그에서의 우승을 경험한 선수가 됐다. 이제 박지성은 무릎수술 재활을 통해 2007-2008 시즌을 준비하고 있다. 다음 시즌 박지성은 맨유가 올 시즌 달성하지 못한 '트레블'의 위업을 달성하는데 든든한 버팀목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보인다.
박지성의 활약을 유럽현지와 조국에서 지켜보며 성원을 보내고 있는 팬들은 박지성이 과거 유럽 최고의 리그로 평가받던 독일 분데스리가에서 300여경기에 출전, 100골에 딱 2골 모자라는 98골을 기록하며 '갈색폭격기'라는 별칭과 함께 소속팀을 UEFA컵 정상에 올려놓는 등 맹활약을 펼쳐 아직도 세계적인 축구인으로서 회자되고 있는 차범근 감독(수원삼성)에 필적하는 위상으로 잉글랜드 축구계는 물론 세계축구계에 기억되어 주기를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