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동아>, 정부기구의 '친일인사' 규정에 반발
방응모-김성수 포함, "전 재산을 민족언론 건립에 쏟아부었거늘"
두 신문은 28일 일제히 장문의 사설을 통해 규명위를 맹비난하고 나섰다.
<조선일보> "방응모, 전 인생-재산 민족언론 건립에 쏟아부어"
<조선일보>는 사설에서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는 이번에 4년 동안 377억원의 예산을 들인 조사결과라며, 60년 전 반민특위가 작성한 688명에 300여명을 추가하면서 유진오 백낙준 김활란 고황경 이숙종 등 교육계 인사, 김동인 김기창 서정주 유치진 노기남 등 문화·종교계 인사, 방응모 김성수 등 언론계 인사, 백선엽 신현준 등 군 원로들을 추가로 포함시켰다"며 "일제 강압 통치하에서 중국과 미국으로 탈출했던 극소수 인사를 제외한 당시 조선의 지도급 인사들은 조선이 이민족(異民族)의 압제를 벗어나 독립의 날을 기약(期約)하려면 교육을 통해 인재를 키우고 언론을 통해 민족의 잠든 얼을 일깨우고 종교를 통해 정신적 자주(自主) 인간으로 재탄생해야 한다는 데 뜻을 같이했다"고 항변했다.
사설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 위원과 조사관들은 유진오 백낙준이 보성전문·연희전문 학생들에게 민족의 진로를 일깨웠던 1000번의 강의에는 일부러 귀를 막고, 신채호 문일평 한용운이 우리 말 우리 글이 일제에 목 졸려 죽음에 몰리던 상황 속에서 한글을 붙들고 조선일보 동아일보 지상(紙上)을 통해 고구려의 웅대한 혼(魂), 백제의 영화(榮華), 신라 화랑(花郞)의 충용(忠勇)을 들어 잠든 민족의 정신을 일깨운 수천 편의 논설에는 눈을 감고, 노기남이 명동성당에서 무거운 짐을 진 식민지 백성을 어루만지던 강론을 애써 모른 체하며, 김활란 고황경이 봉건의 틀에 갇혀 숨죽여 살던 조선 여성을 해방시키려 노력했던 외로운 고투(苦鬪)를 외면한 채 그들 이마에 친일 부역자(附逆者)의 도장을 마구잡이로 찍어냈다"고 규명위를 비난했다.
사설은 이어 "광복 후 대한민국 헌법을 기초한 유진오, 그리고 백낙준은 고려대학과 연세대학 총장으로 두 대학을 세계의 대학으로 키우는 기틀을 만들었고, 김활란 고황경은 이화여대와 서울여대의 오늘을 일궜으며, 백선엽은 북한의 6·25 침략으로 낙동강변까지 밀려났던 전세(戰勢)를 다부동 전투의 선두에 서서 뒤엎어 대한민국을 지켜냈고, 신현준은 해병대를 이끌어 북한군을 몰아내고 9·28 서울 수복 후 중앙청을 탈환했으며, 소설가 김동인, 화가 김기창, 시인 서정주, 극작가 유치진 등은 모두 20세기 한국 예술의 밑거름을 뿌렸고, 김성수와 방응모는 자신의 전 인생과 전 재산을 민족언론, 민족학교의 건립에 쏟아부었다"며 자사 창업주인 방응모가 '민족언론'인 <조선일보>를 창간했음을 강조했다.
사설은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를 만든 전(前)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03년 3·1절 기념사에서 '한국 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라고 규정했다"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거론한 뒤, "만일 대한민국이 정말 그런 나라였다면 오늘 우리가 5000년 역사 이래 처음으로 세계의 선진국을 목전(目前)에 두고 민족의 힘을 모을 수 있었겠는가. 이제 그들이 대답할 차례"라며 규명위의 해명을 요구했다.

<동아일보> "김성수의 학병권유 기사는 날조된 것"
<동아일보>도 이날자 사설을 통해 규명위의 친일인사 1천5인 명단 발표를 거론한 뒤, "동아일보와 고려대를 세우고 키운 전 부통령 김성수, 조선일보 사주였던 방응모, 고려대 연세대 이화여대 총장을 각각 지낸 유진오 백낙준 김활란, 초대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이응준, 6·25전쟁 때 공훈을 세웠던 군 장성 백선엽, 한국인 최초의 천주교 주교 노기남, 시인 서정주, 화가 김기창 등이 포함됐다. 규명위가 새로 ‘친일반민족행위자’로 규정한 인물 중에는 대한민국 건국에 앞장섰던 사람들이 특히 눈에 띈다"며 규명위가 자사 창업주를 친일인사로 규정한 데 대해 반발했다.
사설은 "규명위는 김성수 선생에 대해 ‘조선총독부 기관지였던 매일신보와 경성일보에 학병을 권유하는 기고를 했으며 친일단체에서 활동했다’는 이유에서 친일명단에 올렸다"며 "그러나 당시 경성일보에서 기자로 일했던 김달수 재일동포 작가는 자서전에서 ‘일제 말 전쟁 시기 실린 신문기사들은 거의 전부 만들어진 것’이라고 증언했다. 관련된 말과 글은 일제가 김성수 선생의 이름을 빌려 왜곡 날조한 것으로 다른 관련 인사들의 증언을 통해서도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사설은 이어 "김성수 선생은 일제강점기 교육 언론 기업 부문에서 큰 공적을 세운 인물이라는 폭넓은 평가를 받아왔다. 고려대 중앙고 등 교육기관을 운영하면서 인재를 양성했으며 경성방직이라는 민족기업을 육성했다. 규명위는 인촌의 이런 공로에는 눈을 감았다"며 "그가 창간한 동아일보는 1940년 강제 폐간 때까지 20년 동안 정간 4회, 발매금지 2000회 이상, 신문 압수 89회의 고난을 겪으며 민족의 표현기관 역할을 했고 어느 의미에선 국가를 대신했다"고 주장했다.
사설도 <조선일보>와 마찬가지로 "노무현 정권 때 구성된 규명위는 11명 전체 위원 가운데 6명이 노 전 대통령과 당시 여당이었던 열린우리당이 추천한 사람들이다. 규명위의 일부 위원은 곧 노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찾아가 친일명단을 담은 보고서를 봉정한다는 소식"이라며 "이런 행동만 보더라도 명단 작성자들의 편파성이 드러난다. 노 전 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에 부정적인 좌파 학자들의 시각을 그대로 옮겨 ‘우리 역사는 정의가 패배한 역사’라고 거듭 말했던 인물"이라고 노 전 대통령을 맹비난했다.
사설은 "이 세상을 떠나 자기변호를 할 수도 없는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친일 너울을 들씌운 행위야말로 역사의 심판을 받을 것"이란 비난으로 글을 끝맺었다.
<조선><동아>는 이같은 비난 사설 외에 규명위에 대한 법적 대응도 추진한다는 방침이어서, 친일논란은 앞으로 법정에까지 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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