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를 매료시킨 황석영의 '평화열차'
MB "최고이벤트는 정주영의 소 999마리", "조모 등 부담스럽다"
달포 전부터 문단과 정가 일각에서는 이명박 대통령과 소설가 황석영씨에 얽힌 이야기가 은밀히 나돌아왔다.
"황석영이 요즘 이명박 대통령을 자주 만난다더라"라는 풍문에서부터 시작해, "2월에만 3차례에 걸쳐 도합 9시간을 만났다더라"라는 보다 구체적 얘기까지 나돌았다. 더 나아가 이 대통령과 황석영이 나눈 대화 내용까지 나돌았다.
"황석영이 남북관계 악화로 고심하는 이 대통령에게 남북관계를 돌파할 매머드 이벤트 아이디어를 내놓았다더라. 유럽에서부터 열차를 몰고 중국을 거쳐 평양까지 와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난 뒤, 다시 휴전선을 뚫고 서울까지 와 이 대통령을 만나겠다는 거였다. 이 열차에는 독일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권터 그라스를 비롯해 세계적 문호들을 모두 태울 거고, 이들은 남북화해의 연결고리 역할을 할 거라고 했다더라. 이것을 '유라시아 프로젝트'라 부른다던가..."
황석영의 아이디어에 이 대통령이 반색을 했다는 얘기도 나돌았다. 이 대통령은 평소 남북관계에서 '최고의 이벤트'로, 고 정주영 현대회장이 생전에 소 999마리를 끌고 휴전선을 뚫고 들어간 예를 꼽는다고 전해진다. 최소비용으로 최대효과를 냈다는 의미에서다.
황석영의 구상에 매료된 이 대통령은 비서들에게 앞으론 보수 논객이나 소설가들만 만나지 말고 황석영 등의 얘기를 들어봐라고 지시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다.
이런 얘기가 나돌던 와중에 황석영이 이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전격 합류하면서 문단과 정가에서는 "아, 그동안 나돌아온 얘기가 그냥 낭설이 아니었구나"라는 판단이 나왔다. 특히 황석영이 이 대통령을 보수우익이 아닌 '중도'라고 평가하면서 이런 판단에 더욱 힘이 실렸다.
황석영이 말하는 '평화열차' 구상
황석영은 자신의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자, 귀국한 직후 <경향><한겨레> 등과의 인터뷰에서 그간의 사정을 밝혔다. 그는 특히 '평화열차' 구상을 소상히 밝혔다.
"내년은 한국전쟁 60주년이 되는 해로, 세계사적 상징성이 높다. 나는 2001년 비무장지대에서 세계작가포럼을 주최한 이후, 지난 세기 냉전의 산물로 막혀 있는 한반도의 혈맥을 뚫기 위해 파리에서 베를린, 모스크바, 옴스크, 이르쿠츠크를 거쳐 울란바토르, 베이징, 평양, 개성, 파주로 이어지는 ‘평화열차세계작가포럼’을 구상해왔다. 이것은 한반도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는 데 커다란 전기가 될 것이다."
“그 이야기를 꺼내면 많은 이들이 너무 낭만적이다, 과연 되겠냐고 한다. 그러나 이것은 현 정부가 북한과의 관계를 지난 정권과의 관계 정도로만 돌려놓으면 가능한 일이다. 6·15선언이나 10·4선언을 보더라도 남한 정부가 얼마나 성의를 갖고 임했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북한문제를 6자회담의 틀에만 맡겨놓아서는 안 된다. 미국 오바마 정부가 들어서면서 여건이 변화했는데 미국의 처분만 기다리지 말고 우리가 주도해야 한다고 본다. 과거 문익환 목사의 방북을 생각해보면 역사는 사람들이 비판하는 ‘낭만적인 생각’으로 인해 바뀌어나가는 것이다."
"내가 평화열차 계획을 이야기할 때 모든 작가들이 반색을 한다. 세계변화의 중심에 문학이 서는 일이며 문명의 대안과 평화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문학이 끌고 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는 것이다. 정치 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를 다 말아먹지 않았나.”
"금강산 사고 나자 청와대에서 연락 와"
황석영은 지난해 가을부터 이 대통령과 만나게 된 경위 및 일부 대화내용을 공개하기도 했다.
"금강산 사고가 난 후 대통령 쪽에서 보자고 연락이 왔다. 내 생각에도 지금 오바마 정부 들어온 뒤 대북정책이 바뀌면서 이 기간 안에 뭔가 가시적 변화를 끌어내서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바꾸고 북미수교를 하고 남북도 연방제든 국가연합으로 갈 수 있는 게 돼야 하는데 그걸 시작할 수 있는 찬스라고 본 것이다."
그는 이어 "이명박 대통령은 중도실용적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왜? (대통령이) 조아무개, 이아무개 등은 부담스럽다는 얘기를 했고, 한쪽서는 내부서 자기를 빨갱이라고 한다고 했고, 정부를 둘러싼 현실적 여건은 그렇지 않은 게 있다"며 이 대통령이 몇몇 보수인사들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냈음을 밝히기도 했다.
그는 또 이 대통령에 협조하면서 '전제조건'을 내걸었음을 공개하기도 했다.
"(이 대통령이) 일을 같이 하자고 하니까, '그런데 여기 단서가 있다. 내년 상반기까지 대북문제를 풀려는 아무런 노력이 없을 때 저는 현 정권에 대한 희망을 접고 포기한다'고 대통령에게 분명히 밝혔고, 그 바로 직전에 PSI 때도 '여기에 동참하면 나는 끝이다, 이 일도 접겠다'고 했다."
'이벤트'의 한계...MB의 '변화' 모색
황석영이 공개한 내용은 그동안 문단과 정가 일각에 나돌아온 얘기가 낭설이 아니었음을 뒷받침해준다. 아울러 이 대통령이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기 위해 내심 얼마나 부심하고 있는가도 보여준다.
황석영의 '평화열차' 구상이 얼마나 실현가능할지는 미지수다. 특히 은밀히 추진해야 할 이 구상이 이번 파동을 통해 대외적으로 알려지면서 실현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고도 할 수 있다.
또한 나날이 악화되는 현재의 남북관계를 과연 한건의 '이벤트'로 풀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청와대의 고위관계자도 "황석영씨의 구상은 좋으나 남북관계가 어느 정도 개선돼야 실현가능하지 않겠냐"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파동을 통해 한가지 분명히 드러난 것은 이 대통령이 나름의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과연 그 변화가 하나의 일관된 방향성을 갖고 있는 것인지는 좀 더 지켜볼 일이다. 벌써부터 일부 보수진영의 반발 등 저항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북한의 반응도 냉랭하다. 일각에선 오는 6월 버락 오바마 미대통령과의 한미정상회담에서 큰 틀이 잡히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으니, 좀더 지켜볼 일이다.
<저작권자ⓒ뷰스앤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