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문명의 근원인 그리스에서 국토 절반이 화염에 휩싸이는 사상최악의 대화재가 발생, 그리스 정부가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는 등 상황이 심각하다. 특히 이번 화재는 총선을 앞두고 발생한 정치테러 성격의 방화 성격이 짙어 엄청난 정치적 후폭풍을 예고하고 있다.
"산불이 그리스 절반 이상을 태우고 있다"
23일 밤 그리스 남부 타이게토스산에서 발화, 북서 방향으로 급격히 번지고 있는 이번 산불로 그리스 정부는 26일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는 동시에 10개 지역 마을 주민들에 대피령이 내려졌으며, 스파르타와 칼라마타를 잇는 고속도로도 전면 폐쇄됐다.
수천여명의 군인과 소방대원이 긴급 투입되고, 프랑스 등 유럽연합(EU) 내 12개국이 지원에 나섰지만 산불은 강풍을 타고 그리스의 절반가량의 산림을 불태우며 계속 번져나가고 있다. 27일 현재 이미 60여명의 사망자가 발생하고 추가 사망자가 많을 것으로 예상되는 등 인적 피해도 심각한 상황이다.
니코스 디아만디스 보건부 대변인은 "산불이 국토의 절반 이상을 태우고 있다"며 "전례없는 대재앙으로 현재 피해 규모는 집계조차 할 수 없을 정도"라고 말했다.
피해가 가장 큰 지역은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 반도의 산악 지역과 아테네 북쪽의 에비아 섬으로, 이날 불길은 올림픽 발상지로 지금도 올림픽 채화 등이 이뤄지는 세계문화유적 올림피아와 피르고스 인근까지 번지면서 주민 수백명이 집을 버리고 대피했다. 25일 항공기 등을 동원한 필사적 노력으로 불길이 잡히는가 싶더니, 26일 불이 다시 재연돼 인류문화유산이 소실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낳고 있다.
반도 서쪽 올림피아시 남부에 위치한 자하로 지역은 95㎞ 떨어진 곳에서도 검은 연기가 보일 정도로 마을 전체가 불에 탔으며 이 지역 주변에서만 차로 피난을 가다가 불길에 갇혀 다수의 어린이를 포함해 최소한 39명이 숨진 것으로 확인됐다. 특히 이 곳에서는 실종됐던 어머니와 자녀 4명의 부둥켜안은 시신이 발견돼 당시 심각한 상황을 웅변적으로 말해주고 있다.
여름철 관광객이 모여드는 마니 반도에서도 주말 행락객 3명과 진화작업중이던 소방대원 3명이 희생됐다.
희생자는 27일 확인된 사체만 60명을 넘어선 것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사상자 숫자는 더 늘어날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그리스에서 고의적 방화로 추정되는 사상최악의 대화재가 발생, 국토 절반이 불타는 대재앙이 발생했다. ⓒAP=연합뉴스
정치테러 방화인가
코스타스 카라만리스 총리는 25일 TV 연설을 통해 전국에 국가비상사태를 선언하며 "곳곳에서 산불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것을 우연의 일치로 보기는 어렵다"며 정쟁에 따른 정치 방화에 무게를 두고 있음을 밝혔다. 카라만리스 총리는 국가비상사태와 함께 오는 9월16일 치루기로 했던 총선도 연기한다고 밝혔다.
그리스는 총선을 앞두고 여야간에 극한적 정쟁이 벌어져왔다. 보수적 성향의 신민주당을 이끌고 있는 카라만리스 총리는 이번 총선에서의 제2기 집권을 통해 조세 삭감, 예산 적자 감축, 국가 연금 체계의 정비 등의 조치를 취함으로써 그리스 경제를 진작시키려 했고 이에 맞서 진보적 성향의 사회당은 이에 격렬히 반대해왔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카라만리스 총리의 신민주당이 야당인 사회당을 오차범위내인 3~4%포인트 가량 앞서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극한대립양상을 보여왔다. 카라만리스 총리 발언은 총선을 의식해 정부를 무력화하기 위한 야당 세력의 조직적 방화가 아니냐는 의혹 제기인 것. 실제로 그리스는 지난 6-7월 40도를 훌쩍 넘는 폭염에 이어 발생한 대형 산불로 수천 ㏊의 숲이 불타는 등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에 정부의 늑장 대응이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었다.그리스 정부는 이번 화재가 1백70여곳에서 연쇄적으로 발생했다는 점에서 정치테러적 방화 성격이 짙은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경찰 당국도 이번 재난이 대부분 방화로 인한 것이라며, 65세의 남성과 두 청년 등 아르에오폴리스 지역에서 방화범들을 체포해 조사중이다.AP통신에 따르면, 26일 현재까지 이미 7명이 방화 및 살인 혐의로 체포됐다.
그리스 야당은 이에 즉각 정쟁 중지를 선언했으며, 주말 프로 축구 경기 일정도 모두 취소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