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원로인 이부영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3일 유시민 노무현재단이사장이 국가보안법 폐지와 관련, '거짓 주장'을 하고 있어 호되게 꾸짖었다.
동아일보 해직기자 출신으로 열린우리당 의장을 맡았던 이부영 이사장은 이날 페이스북에 올린 '유시민의 거짓 주장은 바로잡아야'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노무현 정권시절인 2004년 4대 개혁입법 실패 과정을 상세히 설명하며 유 이사장의 주장이 거짓임을 지적했다.
발단은 유 이사장이 전날 밤 JTBC 토론에 출연해 '당시 열린우리당 152명에 민주노동당 13명 등 165명이 국가보안법 완전폐지와 신문법, 과거사법, 사학법 등 개혁입법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한나라당이 국회를 완전히 점거해서 실패했다'고 주장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대해 당시 열린우리당 의장이었던 이 이사장은 "이 주장은 완전히 거짓 주장"이라며 "야당은 국회를 점거하지도 않았고 여야협상은 순항했다. 여당이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를 주장하는 바람에 협상은 깨졌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분열했고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고 반박했다.
그는 구체적으로 "당시 열린우리당의 의장을 맡고 있었던 필자는 열린우리당 의원 152명 가운데 66~68명이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반대하는 사실을 파악하고 중진의원들과 은밀히 상의하여 한나라당과 막후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며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다수결로 관철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혀있던 한나라당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2004년 12월 하순 필자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여의도 63빌딩 회의실에서 비밀회동을 가졌다. 박근혜 대표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만 할 뿐 다른 얘기는 모른다는 태도였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고 개정한다면 열린우리당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묻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며 "그날 회동을 마치고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이틀 뒤 다시 만나서 국가보안법 개정을 하기로 합의하고 신문법, 과거사법, 사교육법 등을 여당안 대로 개정하기로 했다. 국가보안법 개정안은 국가보압법 7조의 대부분인 찬양, 고무, 동조, 회합, 통신 등 5개 독소조항을 삭제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개정되면 국민의 기본권, 특히 언론 집회 사상 결사의 자유가 엄청나게 신장될 것이었다"고 막후협상 내용을 공개했다.
그는 "이 합의안을 공식화할 필요가 있어서 필자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참석하는 4자회담을 열었다. 당내 중진회동에도 참석했던 천정배 원내대표가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었다"며 "두차례 4자회의를 열어 천 원내대표를 설득했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이보다 앞서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여당내 복심으로 통하던 유시민 의원을 만났다. 유의원은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닌 개정안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열린우리당은 상당한 기간 집권할 것이고 이번에 폐지가 아닌 개정을 받아들일 경우 국가보안법을 쓸 이유가 없는데 왜 악법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며 "필자는 지금 야당 한나라당이 개정을 받아들일 때 얻어내는 것이 도리이며 국회 협상에서 지금처럼 유리한 협상 결과를 얻어내는 일도 드문 경우라고 설득했지만 완고했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사회자인 천정배 원내대표는 여야합의안을 원천무효라고 선언했고 일부 과격파 의원들은 당의장인 필자를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다. 여야협상을 추진하도록 지지했던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은 청와대 지지를 받고있는 것으로 보였던 유시민 의원 등 국가보안법 폐지파 의원들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눌려 침묵했다"며 "이렇게 국가보안법 개정안은 물거품이 됐다"고 밝혔다.
그는 "국가보안법 개정실패는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기를 시도한 친북, 주사파 정당으로 낙인찍혔다. 당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한 의원들과 폐지주장 의원들 사이에는 메워질 수 없는 간극이 생겼다. 사실상 분당사태가 일어났다"고 개탄했다.
그는 그러면서 "지금도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주장을 일삼고 있다"면서 "필자 자신도 나이를 먹고 현역정치에서 물러났으면 못본 채 지나칠 수 있으나 역사를 조작하거나 거짓주장을 하는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 필자가 옹졸한가"라고 반문했다.
당시 이 이사장의 글 전문.
유시민의 거짓 주장은 바로 잡아야 -2004년 4대 개혁입법 실패는 국가보안법 개정 여야합의를 여당이 파기한 탓
1월 2일 밤 JTBC ‘정치개혁 무엇을 해야하나’를 시청했다.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은 역대 국회의 정치개혁을 거론하면서 필자 자신의 귀를 의심할 거짓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당시 열린우리당 152명에 민주노동당 13명 등 165명이 국가보안법 완전폐지와 신문법, 과거사법, 사학법 등 개혁입법을 처리하려고 했지만 한나라당이 국회를 완전히 점거해서 실패했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은 완전히 거짓 주장이다. 야당은 국회를 점거하지도 않았고 여야협상은 순항했다. 여당이 국가보안법 완전폐지를 주장하는 바람에 협상은 깨졌다. 그리고 열린우리당은 분열했고 정권을 빼앗기고 말았다.
당시 열린우리당의 의장을 맡고 있었던 필자는 열린우리당 의원 152명 가운데 66~68명이 국가보안법의 폐지를 반대하는 사실을 파악하고 중진의원들과 은밀히 상의하여 한나라당과 막후협상을 진행하기로 했다. 열린우리당이 민주노동당과 함께 국가보안법 폐지를 다수결로 관철할 것이라는 공포감에 사로잡혀있던 한나라당에서도 국가보안법 개정을 논의할 수 있다는 연락이 왔다. 2004년 12월 하순 필자와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가 여의도 63빌딩 회의실에서 비밀회동을 가졌다. 박근혜 대표는 국가보안법의 폐지는 절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얘기만 할 뿐 다른 얘기는 모른다는 태도였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고 개정한다면 열린우리당에게 무엇을 줄 수 있는가를 묻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 회동을 마치고 다시 연락하기로 했다. 이틀 뒤 다시 만나서 국가보안법 개정을 하기로 합의하고 신문법, 과거사법, 사교육법 등을 여당안 대로 개정하기로 했다. 국가보안법 개정안은 국가보압법 7조의 대부분인 찬양, 고무, 동조, 회합, 통신 등 5개 독소조항을 삭제하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개정되면 국민의 기본권, 특히 언론 집회 사상 결사의 자유가 엄청나게 신장될 것이었다.
국가보안법을 폐지하지 않는 대신 독소조항 대부분을 삭제하고 나머지 개혁 입법을 모두 얻어내는 것이었다. 이 합의안을 공식화할 필요가 있어서 필자와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 그리고 열린우리당의 천정배 원내대표와 한나라당 김덕룡 원내대표가 참석하는 4자회담을 열었다. 당내 중진회동에도 참석했던 천정배 원내대표가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니면 안된다는 것이었다. 두차례 4자회의를 열어 천 원내대표를 설득했다. 이보다 앞서 필자는 노무현 대통령의 여당내 복심으로 통하던 유시민 의원을 만났다. 유의원은 국가보안법 폐지가 아닌 개정안은 불필요하다는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 이유는 앞으로 열린우리당은 상당한 기간 집권할 것이고 이번에 폐지가 아닌 개정을 받아들일 경우 국가보안법을 쓸 이유가 없는데 왜 악법이 필요하냐는 것이었다. 필자는 지금 야당 한나라당이 개정을 받아들일 때 얻어내는 것이 도리이며 국회 협상에서 지금처럼 유리한 협상 결과를 얻어내는 일도 드문 경우라고 설득했지만 완고했다.
그리고 열린우리당 의원총회에서 사회자인 천정배 원내대표는 여야합의안을 원천무효라고 선언했고 일부 과격파 의원들은 당의장인 필자를 ‘배신자’라고 손가락질했다. 여야협상을 추진하도록 지지했던 3선 이상 중진의원들은 청와대 지지를 받고있는 것으로 보였던 유시민 의원 등 국가보안법 폐지파 의원들의 살기등등한 기세에 눌려 침묵했다. 이렇게 국가보안법 개정안은 물거품이 됐다. 국가보안법은 구 악법에서 일점일획도 바뀌지 않은 채 남아있다. 통진당도 그 악법에 따라 해체당했다. 이명박-박근혜 정권 아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 악법의 희생양이 되었다.
국가보안법 개정실패는 커다란 후유증을 남겼다. 열린우리당은 국가보안법 폐기를 시도한 친북, 주사파 정당으로 낙인찍혔다. 당내에서 국가보안법 폐지를 반대한 의원들과 폐지주장 의원들 사이에는 메워질 수 없는 간극이 생겼다. 사실상 분당사태가 일어났다. 필자는 강경파들로부터 당의장 사퇴 압박을 당했다. 당시 유행처럼 번지던 SNS에서는 한나라당 경력까지 들먹이면서 배신자 악당으로 매도당했다. 국가보안법으로 4차례 구속당했던 필자만큼 국가보안법에 한이 맺힌 사람도 드물었다. 여당에게 정말 유익해서 추진했던 국가보안법 개정 작업은 필자를 몰아내는 것으로 끝났다. 그러나 노무현 정권도 내리막길을 걸어야 했다. 지지도가 내려가니 남북관계도 진척시킬 동력이 떨어졌다. 그러나 지금도 유시민 의원을 비롯한 국가보안법 폐지론자들은 자신들의 과오를 인정하지 않고 거짓주장을 일삼고 있다. 필자 자신도 나이를 먹고 현역정치에서 물러났으면 못본 채 지나칠 수 있으나 역사를 조작하거나 거짓주장을 하는 것은 용서되지 않는다. 필자가 옹졸한가.
이부영, 당신도 한나라당 출신이 아닌가. 뿌리는 못 속이네. 완전 폐지를 했어야하는 유시민의 후회스런 이야기를 당신이 덧칠을 하는거야. 1953년생(67세) 나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는 사건이었네. 그때 당신 같은 중간 얼간이들이 있어, 여태 보안법이 폐지 못하고 있는 거야. 당신, 죽기 전에 용서구해야 해. 어디서 변명, 거짓말을 해. 빨리 정치권을 떠나
2002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했던 중견기업(145년의 역사를 가진 종업원 9900 여명) 시마즈 제작소의 샐러리맨 연구원(기업 연구원) 다나카 고이치(도호쿠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학사출신)는 한국인 연구자가 뭔가 엄청난 발견을 하거나 개발할 것이라고 인터뷰를 했죠. 다나카에 관한 책<멋지다 다나카> 책<일의 즐거움> 책<작업복을 입고 노벨상을 탄 아저씨>등
햇볕정책을 폐기해서라도 대연정을 획책하고 대선에서 정동영 자당후보보다 차라리 명백이를 지원하는 게 낫다며 죽어라 여론몰이한 후안무치한 權色들이니 저런 배신 따위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 생각하는데 이제와서 말해 뭐합니까~후계를 잘못 세운 김대중의 가장 큰 실책이고 그결과가 국정농단 정권들도 부족해 사기꾼 조국수호가 정권의 전부인 괴물 막장정권 탄생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