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간첩' 의혹을 사고 있는 백성학 영안모장 회장이 유엔 사무총장 선출 직전 반기문 당시 외교통상부장관을 만난 뒤, "반기문이 우리 손에 기어들어왔다"며 "반기문이 (미국에) 요거만 보고해 달라고 했다"고 말한 녹취록이 공개돼, 국제적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백 회장 주장이 사실일 경우 유엔사무총장 선출 과정에 미국의 입김이 작용한 게 아니냐는 의혹을 낳으면서, 반 사무총장의 향후 활동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성학 "반기문이 졸라서 공관서 몰래 만나"

CBS는 16일 백성학 회장의 녹음테이프 중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관련 부문을 추가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백 회장은 지난해 10월 중순 녹음된 육성 테이프에서 “(유엔 사무총창 선출 투표) 마지막 날 반기문이가 졸라서 내가 시내에서 만나자는 거 못 만났고 공관에서 몰래 만났어”라고 말하면서 “반기문이 완전히 우리 손에 기어들어 왔어”라고 말했다. 백 회장은 특히 “10월 2일날 공관에서 미팅하고 자기가 요거만 보고해 달라고 했다”고 주장했다.

백 회장은 지난해 10월 31일 국회 문화관광위원회 국정 감사장에서 증인으로 출석해 오전에는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당선자를 3, 4주전에 만난 적이 있다”고 진술했다가 오후 증언에서는 “이 정부 들어서고 최초의 예배하는 장소에서 김장환 목사님이 인사를 해 가지고 인사를 하게 되었지, 그 후에는 만난 적이 없다”고 말을 바꾼 바 있다. 백 회장은 이어 지난해 11월 28일 <한겨레 21>과 인터뷰에서는 “반 사무총장을 최근에 만났다는 것은 루머”라면서 “뭐가 있더라도 국익을 위해 덮어 두어야 한다”고, 언론에 대해 국익 차원에서 접근해줄 것을 주문했었다.

국제적 파문 가능성...

CBS의 '백성학-반기문 회동' 관련 녹음테이프 공개로 인해 향후 반기문 사무총장의 선출 과정 등에 대한 국제적 논란을 야기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10월 31일 국정 감사 당시 백 회장의 '반기문 회동' 시인 발언이 있자, 당시 외교통상부는 백 회장 등에게 '국익' 차원에서 발언 백지화를 당부한 바 있기 때문이다. 반 장관이 '미국 간첩' 의혹을 사고 있는 백 회장과 유엔 사무총장 선출 전에 접촉한 사실이 국제사회에 알려질 경우 '중립성'을 생명으로 하는 유엔 사무총장의 선출에 악영향을 끼침은 물론, 유엔 사무총장에 당선되더라도 계속해 '정통성'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백성학 비밀녹음테이프를 CBS에 건넨 신현덕 당시 경인방송 대표는 당시 본지와 만나 "외통부 최고위 관계자가 직접 국회까지 찾아와 나에게 제발 회동 사실을 공개하지 말라고 부탁했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었다.

이에 백 회장은 이날 오후 국정 감사때 말을 바꾸었음에도 불구하고 의혹이 쉽게 가라앉지 않자 반 총장은 CBS 기자를 만나 "2006년 10월 2일 밤 백 회장이 한남동 외교통상부 장관 공관으로 찾아와 20여분 동안 면담한 사실이 있다"고 회동 사실을 시인한 뒤, “한밤중에 찾아온 백 회장이 이것저것 물어보더니 미국에 보고해야 한다며 급히 돌아갔다”고 해명한 바 있다. 백 회장의 일방적 접근이었을 뿐이라는 해명인 셈.

그러나 이날 롤리스 전 미국무 차관보 등 네오콘에 적극협조해온 '미국간첩' 의혹을 사고 있는 백 회장 녹취록에서 "반기문이 요거만 보고해 달라고 했다”고 말함에 따라 반 사무총장 선출 과정을 둘러싼 국제적 의혹이 더욱 증폭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국제사회에서는 전임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이 부시 미정권과 사사건건 대립해온 만큼, 후임 사무총장 선출 과정에 미국이 다각도로 치밀한 검증을 했고 그 결과 반기문 장관이 선발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