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계안 의원 등 '당 해체파'의 탈당 시작에도 불구하고, 김근태-정동영계 등 이른바 '통합신당파'는 당 사수파가 일단 기초당원제를 수용하고 2.14 전당대회 개최에 잠정합의함에 따라 당분간 탈당을 하지 않는 쪽으로 입장을 선회하는 분위기다. 이에 '당 해체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냉소적 반응을 보이며, 예정대로 탈당을 단행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당 해체파'와 '통합신당파'간 갈등이 표면화하는 양상이다.
수도권 재선그룹, "일단 전당대회 지켜보자"
선도탈당 대상 그룹중 하나였던 열린우리당 임종석, 송영길 등 재선 의원들은 23일 모임을 갖고 "전당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임종석 의원은 이날 본지와 통화에서 "29일 중앙위원회에서 당헌개정이 되면 예정대로 전당대회를 통한 통합신당 추진에 힘을 보태겠다"며 "현재의 선도탈당 의원들과는 뜻이 다르고 그런 방식으로는 일이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임 의원은 "나는 선도탈당 입장을 밝힌 적이 없어 선도탈당 철회라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며 "선도 탈당하는 분들도 함께 해야 할 분들로 옳다 그르다 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는 임 의원을 비롯해 송영길, 김부겸, 정장선 의원이 참석했으며 이종걸, 조배숙, 최용규 의원은 일정을 이유로 불참했다.
김근태-정동영계 "탈당 명분 사라졌다"
김근태계 정봉주 의원도 "현 상황에서 탈당은 이미 통합신당에 가속도를 불어넣기 위한 역할로서의 기능과 명분을 상실했고 사수파가 기간당원제를 받겠다고 한 상황에서도 명분을 잃었다"며 "정작 대통합 신당을 위한 탈당이라면 전당대회 이후에 상황을 보고 결정해도 늦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근태계인 우원식 사무부총장도 "전당대회를 통해 질서 있게 통합신당으로 갈 수 있는데 이렇게 개별 탈당이 가속화되면 열린우리당과 아닌 당으로 결국 분열되는 것 아니냐"며 "그런 점에서 지금 충정은 이해하지만 전당대회를 해보고 결정은 그때 가서 해보자"고 말했다.
김근태계로 분류되는 선병렬 의원도 "일부 의원들은 여당내 좌우에 있는 사람들이 탈당을 해 줘야 여당도 가벼워지는 것 아니냐는 말들도 한다"며 "그런 측면에서 볼 때 두 사람은 좌우 양측을 대표하는 사람들 아니냐. 탈당 러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동영계의 핵심 의원은 "오늘 사수파가 통합신당파의 요구를 받아들인 영향으로 큰 반향은 없을 것 같다"며 "임종인 의원은 탈당 기류를 좌로 돌려놨고 염동연 의원은 2년 가까이 전부터 탈당을 말하던 분 아니냐. 이계안 의원은 혼자 하던 분이고 전대 전까지는 염 의원이 추가로 탈당하는 정도에 불과할 것"이라며 말했다.
천정배 의원으로 대표되는 '당 해체파'와 김근태-정동영으로 대표되는 '통합신당파'가 마이웨이를 걷기 시작하는 양상이다. ⓒ연합뉴스
염동연도 "盧대통령 연설 지켜보자"
2, 3일내 탈당을 시사했던 염동연 열린우리당 의원도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염 의원 측은 23일 본지와 전화통화에서 "탈당 결심을 밝힌 만큼 탈당계를 언제 제출하는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어제 2, 3일내 탈당이라고 보도된 것은 2, 3일 생각해 보겠다는 말이었다"고 해명했다. 이 측근은 구체적인 탈당 시점을 묻는 질문에는 "2.14전대 전이 될 것"이라며 "또 정동영 전 의장과 오늘 만난다는 보도도 한번 만날 수 있다고 한 것이 목적의식적으로 만나는 것으로 잘못 보도됐다. 아직 일정조차 잡히지 않았다"고 말했다.
염 의원 측은 "23일 대통령 연설도 지켜볼 생각"이라며 "대통령에 대해 예의도 없는 것으로 비쳐져서는 안 될 것이고 탈당 형식 자체도 갖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 해체파' "그럴 줄 알았다"
이같은 통합신당파의 머뭇거림에 대해 '당 해체파'는 그럴 줄 알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천정배 의원의 탈당시 동판탈당을 시사한 정성호 의원은 "이계안 의원이 탈당했다고 해서 크게 반향은 없을 것"이라며 "사수파에서는 오늘 기간당원제를 받아들인 것처럼 다 받을 것이고 그래서 전대로 끌고 가면 간판만 유지한 채 개헌 국면으로 가고 두세 달 뭉개고 다들 죽던 말든 가지 않겠느냐"고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익명을 요구한 '당 해체파'의 한 의원은 "그런 식으로 전당대회까지 기다리고 대통령이 개헌하자고 하면 또 얼마를 기다리고 하면 아무것도 못하고 다 망하는 것 아니냐"고 힐난한 뒤, "우리 의지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김근태계'이나 탈당을 강력 주장하고 있는 문학진 의원은 "이계안 의원의 탈당으로 탈당 사태가 확산되지 않겠느냐"며 "열린우리당은 볼장을 다 본 상태가 아니냐"고 말했다.
정가 일각에서는 통합신당파인 김근태-정동영이 이렇듯 모호한 입장을 취함에 따라 2.14 전당대회 결과에 상관없이 신당 창당의 주도권은 천정배 의원 등 '당 해체파'가 선점하게 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와 귀추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