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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7항쟁 20년, 지나온 세월 떳떳한 사람 있나”

<현장> 고 박종철 20주년 추모식 및 6월 민주화항쟁 사업 추모식

‘‘바로 20년 전 오늘/이 땅에서 억울하게 스러져 간/한 젊은이의 죽음을/마음껏 슬퍼할 자유조차 없었던 그 슬픔을/이제는 두려움 없는 눈물로/함께 표현할 수 있음을 새삼 고마워하며/새해의 푸른 하늘을 우러러 봅니다"(2007년 1월 14일, 이해인 추모시 ‘기도편지’ 중에서)

군부독재 정권 종식의 정점에 섰던 87년 6.10 민주화항쟁 20주년을 맞아 과거와 미래를 연결하는 두 개의 의미 있는 행사가 한 자리에서 열렸다.

14일 오후 지금은 경찰청 인권보호센터로 명패를 바꿔 단 옛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치안본부 대공분실 앞마당. 과거 숱한 고문치사 사건을 만들어내며 공안당국의 상징과도 같았던 이곳에 3백여명의 각계인사들이 모였다. 20년 전 오늘, 이곳 509호실에서 경찰의 물고문으로 유명을 달리하며 6.10항쟁을 범국민적인 대중운동으로 이끌었던 고 박종철씨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였다.

추모식에는 당시 박종철씨와 함께 거리로 나섰던 386 국회의원들부터 진보진영 인사들, 이제는 백발성성한 유가족들까지, 다양한 형태로 그를 기억하는 이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14일 오후 2시, 옛 경찰청 치안본부 대공분실이 자리했던 서울 용산구 남영동 경찰청 인권보호센터에서 고 박종철씨 20주년 추모식이 열렸다.ⓒ최병성 기자


이날 추모식은 각계인사 3백여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사진 왼쪽부터 이해인 수녀, 문성현 민주노동당 대표,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 고 박종철씨 부친 박정기씨, 이부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최병성 기자


1987년과 2007년 잇는 박종철 추모식과 6월 항쟁 기념사업 선포식

동시에 이날은 87년 민주화 항쟁 20주년을 맞아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추진하는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 선포식이 함께 열렸다. 올해 안에 6월 10일을 국가기념일을 제정하고 미래세대들에게 80년대 민주화운동의 의미를 알려나가는 다양한 사업 계획이 발표됐다.

6월민주항쟁사업추진위원회 상임공동대표를 맡고 있는 함세웅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은 “과거 민주항쟁의 공과를 반추하는 동시에 이를 아직 완성되지 못한 민주화의 자산으로 계승, 발전시켜 나가는 자리”라고 설명했다.

영화배우 오지혜씨가 맡은 1부 추모식은 ‘박종철열사 20주기 추모식’은 박중기 민족민주열사, 희생자추모 단체연대회의 박중기 의장의 추모사와 이해인 수녀의 추모시 낭송, 가수 안치환씨의 추모공연으로 이어졌다.

이어 박종철씨의 부친 박정기씨가 연단에 올랐다. 박씨는 자신의 아들을 ‘그’라고 부르며 87년 민주화항쟁이 지금도 끝나지 않았음을 역설했다.

박종철 부친 "아들 먼저 간 세상, 평화롭고 고문 없는 세상이었으면..."

박씨는 “그는 이미 20년전 먼저 갔지만 이후 그가 없어진 세상에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함성이 노도처럼 일어났었다”며 “오늘 이 자리는 그 대 민주화의 깃발을 이 곳 대공분실에 꽂는 자리”라고 말했다.

박씨는 이어 “6월항쟁 때 우리의 정신을 담은 그 깃발을 끝까지 보유하고 온 세상이 평온하게 살 수 있는 고문이 없는 그러한 세상에 살고자 한다”고 말했다.

고 박종철씨의 부친 박정기씨는 "6월 항쟁의 정신을 잊지말고 평화롭고 고문없는 세상을 살아가자"고 강조했다.ⓒ최병성 기자


추모식이 끝나고 참석자들은 국화꽃을 들고 인권센터 건물 뒤편의 가파른 철계단을 통해 박종철씨가 숨졌던 대공분실 509호로 향했다.

박종철씨와 동시대, 자식을 잃었던 유가족들은 중간 중간 행렬을 빠져나와 아들의 사진을 꺼내보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한 유가족은 “종철이는 그 시대, 아침에 나가 며칠 동안 소식이 없던 자식을 기다리며 속앓이한 모든 부모들의 아들”이라며 “내 아들의 이름도, 정신도 거기에 다 들어가있다”고 말했다.

헌화행렬은 1시간가량 이어졌고 물고문이 이뤄졌던 욕조, 세면대 등이 그대로 보존된 509호는 국화꽃으로 가득했다.

6월항쟁기념사업회 "6.10, 국가기념일 제정해야"

헌화 행렬이 끊이지 않던 같은 시각 7층 세미나실에서는 6월 민주항쟁 20년 사업 개막선포식이 열렸다.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가 올 한해 핵심사업으로 추진하는 추모사업은 ▲국가기념일 제정 추진 ▲우리 사회의 민주주의 발전 대안 모색 ▲한국 민주주의의 국제적 위상 제고를 목적으로 진행된다.

고 박종철씨가 물고문으로 숨진 대공분실 509호에서 한 참석자가 딸과 함께 헌화를 하고 있다.ⓒ최병성 기자


이를 위해 사업회는 6월 10일 서울시청 광장 앞에서 대규모 민주주의 시민축제를 열고 이날을 전후해 전국 13개 도시에서 동시다발 기념행사를 주최할 예정이다.

또 6월 민주항쟁의 자산인 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기록하는 자료집 사업을 비롯해 국제 학술 심포지엄, 토론회, 문화행사를 올해 시작으로 매년 상시적으로 가질 계획이다.

함세웅 사업회 공동상임대표는 선포식에서 “행사를 준비하면서 속죄하는 마음으로 임해야한다고 생각했다”며 “때론 젊은이들의 죽음에 침묵하고 뜻있는 그들을 지키지 못했다. 그것이 이 시대의 한계라는 것을 겸허히 고백한다”고 말했다.

함 대표는 “20년이 지났지만 6월 항쟁의 겸허한 뜻을 계승하지 못했고 여전히 늘어가는 사회의 그늘을 돌아보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누구도 떳떳할 수 없다”며 “87년의 삶을 물리적으로는 재현 못해도 정신은 그대로 재현해 미래로 계승시키는 삶을 살아가야한다”고 강조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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