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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대학후배들, '박종철 장학회' 만들기로

올해 상반기 1백명 발기인 모아 출범

87년 민주화 항쟁의 직접적인 수혜자들인 90년대 학번 후배들이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20주기를 맞아 ‘박종철 장학회’를 준비하고 있다.

가칭 박종철 장학회는 14일 "회원들의 회비를 모아 소외된 아이들을 후원하며 박종철씨의 정신을 기리는 취지로 올해 초부터 진행, 상반기까지 1백명의 발기인을 모아 공식 출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장학회를 준비하고 있는 오준호(서울대 94학번)씨는 “박종철 열사는 민주화의 상징으로 이미 인정받았지만,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아무 의미가 없는 이름이 되고 있다”며 “열사 추모행사와 기념관 설립도 중요하지만 먼저 열사의 이름이 우리 사회 소외된 이들, 자라나는 아이들로부터 사랑받고 존경받는 이름이 되어야 한다”며 추진 배경을 설명했다.

현재 장학회는 오씨의 제안에 공감한 사람들이 지난해 12월 초 한 차례 모임을 가져 20명의 발기인을 모았고 고인의 부친 박정기씨에게도 동의를 구한 상태다. 박종철 출판에서도 장학사업에 후원할 뜻을 밝혔다.

향후 장학회는 소외된 아이들에게 매년 한 명당 1백20만원의 생활 및 학업 지원금을 전달하고 어린이보호재단 'Save the children'의 ‘한 생명 살리기 캠페인’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전문적인 협력을 받을 예정이다.

아래는 박종철 장학회 추진 발표 전문.

열사의 뜻을 '나눔'으로 이어가려 합니다. 박종철 장학회와 함께 해 주십시오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20년...

박종철은 서울대학교 언어학과 84학번으로 입학하여, 그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이 그랬던 것처럼 민주화를 위해 싸웠습니다. 그는 거리에서는 맨 앞으로 달려간 투사였으며, 동지를 위해서는 단벌옷도 벗어주는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1987년 1월 14일, 경찰은 그를 남영동 대공 분실로 연행하여, 동지의 거처를 대라며 물고문을 자행했습니다. 끝내 입을 열지 않던 박종철은 결국 목숨을 잃고 말았습니다.

87년 6월 민주항쟁의 불씨가 된 박종철

한 젊은이를 죽음으로 몰아넣은 것으로도 모자라 사건을 은폐한 독재정권에게 민중의 분노가 폭발하였습니다. 1987년 6월, 민주화를 외치는 함성이 온 나라를 흔들었고 1천만 명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습니다. 박종철 열사가 불씨가 되어 일으킨 민중의 항쟁은 마침내 승리하여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습니다.

박종철의 뜻을 기리는 작은 실천, 나눔

박종철 열사가 ‘타는 목마름으로’ 외쳤던 민주주의는 큰 발전을 해왔습니다. 그러나 국민소득 3만 달러를 외치는 이면에 끼니를 굶는 아이들이 30만 명에 이릅니다. 심각한 양극화로 가난이 대물림되고 아이들이 꿈을 잃어가고 있습니다.

지금의 민주주의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가 너무나 부족한 ‘반쪽의 민주주의’입니다. 박종철의 뜻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이유입니다.

참된 민주주의란 아이들이 꿈을 가질 수 있는 사회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하기에 박종철의 뜻은 거창한 것만이 아니라, 어려운 환경의 아이들에게 다가가는 작은 나눔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박종철을 ‘시대의 아픔에 동참했던 사람, 신의의 인간’으로 깊이 존경합니다. 그래서 지인들과 매년 해오던 추모 사업을 작은 장학회로 이어가려고 합니다. 아이들이 웃을 수 있는 세상을 위해, ‘열사의 이름으로’ 사랑을 퍼뜨리고 싶습니다. 함께 합시다.

박종철 열사를 존경하는 후배 오준호 드림( munard@hanmail.net/010-7935-1223)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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