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으로 대통령직이 막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도를 넘어 흔드는 것은 무책임하다.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 대통령 개인이 상처받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사고가 난다. 김영삼 정부 임기말 IMF 위기, 김대중 정부 임기말 신용불량 문제가 그냥 생긴 일이 아니다."
청와대가 노무현 대통령의 26일 국무회의 발언을 적극 옹호하는 과정에, 언론과 정치권 등이 노 대통령을 계속 흔들 경우 이렇듯 IMF사태와 같은 국가적 위기가 도래할 수도 있다고 주장해 파문이 일고 있다. 가뜩이나 경제계 등에서 '부동산 공황' 도래 같은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는 상황에 청와대가 할 얘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청와대의 '화법'이 나날이 위험수위를 넘어가는 양상이다.
"YS정권말 IMF위기, DJ정권말 신용불량문제 그냥 생긴 일 아니다"
청와대 홍보수석실은 이날 오후 <청와대 브리핑>에 띄운 '대통령은 무슨 말을 하고 있는가'라는 글을 통해 노 대통령의 12.21, 12.26 발언과 관련, "언론에서는 연일 대통령에 대한 비판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대선 게임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전략이라고 한다. 그동안 쌓인 게 많아서 감정 풀이를 하고 있다고도 한다"고 언론 보도 태도에 불만을 토로한 뒤, "언론의 비난에 따라 여론도 악화되고 있다. 게임으로 보자면 수지맞는 게임은 아니다"라고 말해 일반여론의 차가운 반응을 감지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홍보수석실은 이어 노 대통령의 최근 발언이 초래한 고건 전총리와의 갈등에 대해 "언론은 거두절미, ‘노무현이 고건을 공격했다’는 취지로 과대포장했다. 언론 보도를 기정사실화해서 고전총리의 대응이 이어졌고 다시 언론은 이를 갈등으로 몰아갔다. 청와대는 즉시 해명했다. 그것도 공격적 대응이 아니라 냉정하게 해명만 했다. 그래도 언론은 대결로 몰고 갔다"고 언론 탓을 했다. 홍보수석실은 이어 "사실은 있는 그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언론의 정치공학적 해설만 전달됐다. 열린우리당의 통합신당파를 견제하려는 것이라는 해설, 정계개편 구도에 관한 해설 등이 붙었다. 열린우리당 일부에서까지 싸움판이 벌어진 줄 알았는지 쌍방이 자제하라고 한다. 거듭 밝히거니와 청와대는 해명만 했을 뿐"이라고 언론 보도 및 열린우리당 반응 등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홍보수석실은 이어 "사실이 어찌됐든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 아니냐, 아무리 사실도 중요하지만 왜 자꾸 분란을 키우느냐고 질타하기도 한다. 대통령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는 충고도 있다"며 "대통령은 이런 비난과 충고를 모르지 않는다. 대통령은 왜 그렇게 집착하는 걸까, 무엇에 집착하는 걸까"라며 본격적으로 노 대통령 발언의 배경을 설명했다.
홍보수석실은 이날 오전 노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을 소개한 뒤, "요즘 대통령이 동네북이 되어 있다고까지 했다. 대통령도 잘 알고 있다. 대통령의 잘못도 있고,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과정의 비용이라는 생각도 하며 현실을 받아들이고 있다"며 "그러나 ‘묻지마 반대’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 정책이든 대통령의 발언이든 반대와 비난의 목소리만 높다. 나오는 정책마다 다 잘못됐다고 발목을 잡는데 정책이 제대로 집행될 수가 없다"고 강변했다.
홍보수석실은 이어 "야당이나 언론의 속성이 그렇다고 대범하게 넘어가라고 한다. 그러나 그런 ‘묻지마 반대’가 여론에 고스란히 반영되고, 심지어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까지 이 대열에 몸을 던진다"며 "참여정부는 IMF 이후 경제구조의 질적 전환, 탈권위주의와 민주주의의 신장이라는 과도적 환경 속에서 대한민국을 이끌고 있다. 그 과정에서 책임을 함께 했던, 그래서 정부와 대통령이 짊어진 고충과 노력을 알 만한 사람들이, 대선을 의식해서 과거 낡은 방식대로 대통령 흔들기에 뛰어드는 것은 가벼운 문제가 아니다"고 고건 전총리를 재차 비난하기도 했다.
홍보수석실은 이어 '문제 발언'을 했다. 홍보수석실은 "대통령직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그러나 진정으로 대통령직이 막중하다고 생각한다면 이렇게 도를 넘어 흔드는 것은 무책임하다"며 "대통령이 일을 제대로 할 수 없게 되면 대통령 개인이 상처받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반드시 사고가 난다. 김영삼 정부 임기말 IMF 위기, 김대중 정부 임기말 신용불량 문제가 그냥 생긴 일이 아니다"라고 경고했다.
홍보수석실은 이어 "대통령은 지금 그 악순환을 어떻게든 끊겠다는 것"이라며 "이번에는 그 악순환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 어떤 것보다 더 중요한 대통령의 임무이고 본분이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IMF사태나 신용불량문제 같은 국가대란의 재연을 막기 위해 노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섰다는 주장인 셈.
홍보수석실은 노 대통령의 26일 발언과 관련, "또, ‘오기’, ‘독선’, ‘갈등조장’, ‘감정풀이’, ‘네탓’이라는 비난이 나올 법하다. 대통령은 언제나 언론에게 기사거리를 제공하고 있다"며 "이 사슬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다. 대통령이 무슨 말을 해도 비난의 소재가 될 것이다. 대통령이 말을 안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래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는다. 아마 ‘힘 빠진 노무현’, ‘할말 잃은 노무현’이라는 제목이 나올 것"이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홍보수석실은 "사실이 잘못 전달되고, 왜곡된 사실이 대통령 흔들기에 활용되고, 그래서 대통령의 국정수행은 어려워지는 이 뿌리 깊은 굴레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며 "사실이 아닌 것은 아니라고 하고, 잘못된 것은 잘못됐다고 하는 수밖에 없다. 몇 사람이 듣더라도 듣는 사람이 있으면 진실이 전달되는 때가 온다"는 '마이웨이 선언'으로 글을 끝맺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26일 국무회의에서 또한차례 문제발언을 한 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맞이하기 위해 청와대 접견실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연합뉴스
위기 막을려면 원가공개 거부하는 관료들부터 단도리해야
청와대 홍보수석실의 이날 글은 노 대통령의 비장한 입장을 전달했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과정에 YS정권, DJ정권말의 위기상황을 거론하며 유사한 국가대란의 발발 가능성을 경고한 것은 심각한 잘못이 아닐 수 없다.
현재 재계와 경제연구소 및 경제학계 일각에선 DJ정권 말기부터 노무현정권 재임기간 4년간 진행된 사상최장의 부동산 폭등으로 인해 거품이 터지면서 과거 일본 못지않은 부동산 재앙이 도래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일각에선 "다음 정권은 참여정권때 일으킨 아파트거품 때문에 고통의 세월을 보내야 할 것"이라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이런 마당에 청와대가 직접 노대통령이 레임덕에 걸릴 경우 YS정권 말기의 IMF사태 같은 국가파산 사태가 재연될 수도 있다고 언급한 것은 경솔하기 짝이 없는 발언일 수밖에 없다.
노대통령은 앞서 지난 9월 부동산대란과 관련, 분양원가 공개를 약속한 바 있다. 노 대통령의 이런 약속은 만시지탄이니 더이상의 아파트 거품을 막을 수 있다는 점에서 국민적 찬성을 받았다. 그러나 재경-건교부 등 관료들은 노대통령 지시를 사실상 묵살, 최근 분양원가 공개 불가 입장을 밝히는 등 노 대통령 지시에 정면 도전하고 있다.
노 대통령이 지금 해야할 일은 "앞으로 공격에 참지 않겠다"며 청와대를 통해 IMF위기 운운할 게 아니라, 대통령 지시에 항명하면서 부동산재앙이라는 국가적 재앙을 키우고 있는 관료들부터 단도리할 때다. 청와대가 IMF사태 운운하면 정말로 비슷한 일이 가까운 시일내 발생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럴 때 모든 책임을 언론과 정치권으로 떠넘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청와대는 다시는 이런 발언을 입에 담지 말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