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부는 14일 "제주도 서남쪽에 있는 이어도가 한국 영토라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혀, 동북공정에 의한 역사분쟁에 이어 이어도를 둘러싼 영토분쟁까지 불거진 양상이다.
일본의 독도 분쟁에 이어 중국의 이어도 분쟁까지 가세하는 양상으로, 우리의 단호한 영토수호 의지가 요구되는 상황이다.
중국 외교부 "이어도, 한국영토라는 사실 인정할 수 없어"
14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외교부 정례 브리핑에서 이렇게 밝히고 "쑤옌자오(蘇岩礁.이어도의 중국명)는 동중국해 북부의 수면 아래에 있는 암초로, 한국과 영토에 관한 정의를 내린 바 없다"고 말했다.
친 대변인은 이어 "쑤옌자오는 배타적 경제수역(EEZ)이 서로 겹치는 해역에 있다"면서 "한국이 이 곳에서 벌이는 일방적인 행동은 아무런 법률적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 정부가 수년전 이어도에 종합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한 사실을 언급하며 "그 문제를 놓고 2차례에 걸쳐 한국과 협상을 벌였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중국 국가해양국은 13일 <2005년 해양행정 집법(執法) 공보>를 통해 "중국 해양감시기가 지난해 이어도의 종합해양과학기지에 대해 5차례에 걸쳐 비행기를 동원한 순항 감시 활동을 했다"고 밝혔다.
<공보>는 "중국은 해양권 수호를 위해 ‘유엔해양법 협약’과 국내법에 따라 관할 해역에 대한 감독·관리는 물론 이웃 나라와 분쟁이 있는 해역에 대해 순항 감시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이어도는 한반도 최남단 섬인 마라도 서남쪽 1백49㎞ 지점에 있는 수중 암초로, 한국해양연구소가 1995년부터 2001년까지 헬리콥터 착륙장과 첨단관측장비를 갖춘 플랫폼 형태의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를 건설했다. 중국의 경우 장쑤(江蘇)성 앞바다의 저우산(舟山)군도 중 가장 동쪽에 있는 퉁다오(童島)가 이어도에서 가장 가깝지만 직선거리는 2백45㎞나 된다.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단면도.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외교부 "이어도는 명백한 우리땅"
외교통상부는 이와 관련, "이어도는 명백한 우리땅"이라고 밝혔다.
외교부 당국자는 "국제적으로 인정하는 EEZ 수역은 2백해리"라며 "이어도는 마라도에서 90해리 떨어져 있는 만큼 확실한 우리땅"이라고 말했다.
그는 "아직 중국과 EEZ 경계가 정해지지 않았고 EEZ 상공에서는 누구나 비행할 수 있지만 이어도 기지가 우리 EEZ에 포함된다는 정부 입장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1951년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 동판 가라앉혀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는 홈페이지에 이어도의 지형과 역사 등을 상세히 기술하면서 이어도가 우리 땅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이어도는 동중국해 중앙에 있는 수중 암초로 평화선 내에 있으며, 해저광구 중 제4광구에 있는 우리 나라 대륙붕의 일부이기도 하다. 앞으로 주변국들과 배타적 경제수역(EEZ) 확정 시 중간선 원칙에 따라 이어도는 한국측 해양 관할권에 있게 된다. 이어도의 가장 얕은 곳은 해수면 밑 약 4.6미터까지 돌출해 있으며, 수심 40미터를 기준으로 할 경우 남북으로 약 600미터, 동서로 약 750미터로, 면적이 약 11만 5천평에 이른다. 정상부를 기준으로 남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북쪽과 서쪽은 비교적 완만한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어도는 제주도민의 전설에 나오는 환상의 섬, 피안의 섬으로 잘 알려져 있고, 근간에는 ‘파랑도’로 불리기도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섬을 보면 돌아올 수 없다는 말이 있는데, 이는 먼 옛날에 이곳에 와서 조업을 하다 파고가 10미터(최천수심 4.6미터이므로, 이 수심의 2배 이상의 파고이다)쯤 되면 이 섬이 보였고, 당시 어선으로는 그런 상황에서 무사히 돌아갈 수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인 소코트라(Socotra)호가 처음 발견하여 그 선박의 이름을 따서 국제적으로는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라 불린다. 그리고 1910년 영국 해군 측량선 워터 위치(Water Witch)호에 의해 수심 5.4미터밖에 안되는 암초로 확인 측량된 바 있다.
1938년 일본에 의해 해저진선 중계시설과 등대시설을 설치할 목적으로 직경 15미터, 수면 위로 35미터에 달하는 콘크리트 인공 구조물을 설치할 계획이었으나 태평양 전쟁의 발발로 무산되고 말았다. 우리 나라에서 이어도의 실재론이 처음 대두된 것은 1951년으로,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해군이 공동으로 이어도 탐사에 나서 높은 파도와 싸우다 바다 속의 검은 바위를 눈으로만 확인하고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라고 새긴 동판 표지를 수면 아래 암초에 가라앉히고 돌아왔다. 그리고 이곳 최초의 구조물은 1987년 해운항만청에서 설치한 이어도 등부포(선박 항해에 위험한 곳임을 알리는 무인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항로표지 부표)로 그 당시 이 사실을 국제적으로 공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