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MBC인의 치열한 자성, "우리는 '진정한 공영'이었나"
"망국적 부동산투기때 뭐했나", "푸짐한 잔치 벌였잖나"
현재 <일요인터뷰人>의 제작담당을 맡고 있는 이보경 MBC 보도제작국 부장은 28일 <미디어오늘>에 기고한 <MBC, 국민이 찌워준 살에 보답할 차례>라는 글을 통해 MBC가 처한 현실에 대한 비장한 심경을 나타냈다.
이 부장은 "한 놈만 패는 식의 <PD수첩> 몰아붙이기로 첫 삽을 뜬 지 이미 오래인 그들은, 여의도동 31번지에 올 가을엔 제대로 공구리를 치고 말겠다는 심산인지, 점점 작업의 수위를 높이고 있다"며 "MBC는 방송 공영성을 위해 멋지게 싸워야 한다. 국민 응원단은 장렬한 이 한판을 볼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온실의 영화는 오래됐지만 언제 제대로 된 시험대에 올랐던 적 있는가"라고 반문한 뒤, "차라리 잘됐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그는 본론으로 들어가 "공영 MBC가 국민 성원과 자원을 빨아들이며 찌운 살은 크게 두 겹이라 본다"며 "한 겹은, PD들이 시사 보도 부문에 진출하면서 기자들과 선의의 경쟁을 하며 키운 '매체 신뢰성'이다. 예를 들어, 기자들의 카메라출동이 성역 없는 발품으로 간간이 큰 화제를 뿌렸듯, PD들의 황우석 보도와 독재 시절 인권유린 추적 보도 등은 방송사에 길이 남을 역작임이 분명하다"고 자부했다.
그는 그러나 이어 "나머지 한 겹은, 아마 전 세계적으로 MBC에서밖에 볼 수 없을 정규직 단일호봉제도에 의한 '조직 풍요성'이다. 이 부위는 한마디로 잘 먹고 잘 살면서 찌운 살"이라며 그동안의 물질적 풍요를 지적한 뒤, "그런데 어느 살 부위가 우리에게 더 중요했을까? 혹시 그건 신뢰성보다 풍요성 아니었을까? 그래서 지난 10년 민주화 이후의 길을 개척해야 했을 때 MBC가 지지부진했던 것 아닐까"라고 물음을 던졌다.
그는 구체적 사례로 "1318 마케팅이라는 게 있다"며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의 얄팍한 지갑을 노리는 광고나 프로그램을 말하는데, MBC가 여기에 우려를 나타내며 공영성을 추구하려고 노력한다는 얘기는, 그 안에 있으면서도 과문한 탓인지 별로 들어본 적이 없다"고 자성했다.
그는 또 "아파트 값이 천정부지로 오르고 부동산 돈 놓고 돈 먹기가 가히 망국적 사태로 치달을 때 MBC가 부채질을 그만두고 소방수로 나서기로 했다는 회사의 방침을 접해본 적이 없다"고 자성하기도 했다.
그는 "1318 광고주, 건설사 광고주한테서 받는 돈이 얼만데? 사원들 단일호봉 주고, 성과급까지 주면서 푸짐한 잔치를 벌일 수 있는 걸?"이라며 그동안 자신들만의 잔치를 지적한 뒤, "한편에선 노동조합 가입 자격도 주어지지 않는, 주로 젊은 여성인 비정규직 숫자가 계속 늘고, 정규직의 잔치를 위해 그들의 조그만 파이는 그리 커질 줄을 몰랐지만 말이다"라며 비정규직의 어려움을 외면했던 그동안의 행태에 대한 치열한 자성을 했다.
그는 이밖에 "저 유명한 삼성 X파일을 특종거리로 손에 넣고도 조선일보 보도를 기다려서야 방송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결론적으로 "이렇게 민주화 이후로는 나아가지 않던 MBC에 다시 민주화라는 복고풍 전선이 형성된 건 차라리 행복한 일"이라며 "여기서 죽도록 싸울 의무를 다하면 사즉생일 것이고, 난생처음 '제대로' 찾아온 기회에 우리의 '의무'를 배반하고, 투항한 뒤 달콤한 당근 세례에 안주하려 한다면 생즉사일 것"이라는 비장한 다짐으로 글을 끝맺었다.
MBC가 시련 속에서 환골탈태를 모색하기 시작한 형국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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