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와 독일을 잇는 가스관에서 러시아의 파괴공작으로 의심되는 가스 누출·폭발 사고가 잇따라 벌어지면서 유럽연합(EU)의 경기후퇴 우려가 한층 커지고 있다.

안 그래도 유럽의 경기후퇴가 불가피해 보이는 상황에서 에너지 위기가 더 심해지면 EU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당시보다도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27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블룸버그 산하 경제연구소인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이 올해 4분기 경기후퇴에 빠지면서 올해 3분기∼내년 1분기에 국내총생산(GDP)이 0.9%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이는 러시아의 가스 공급이 2021년의 10% 수준에 그칠 것으로 가정한 결과다.

하지만 러시아는 독일로 향하는 가스관 '노르트스트림-1'을 통한 가스 공급을 단계적으로 줄인 뒤 지난 2일부터는 아예 가스 공급을 전면 중단했다.

게다가 이날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노르트스트림-1과 노르트스트림-2의 발트해 해저관 3개에서 가스가 누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번 사건은 러시아 측 사보타주(파괴공작)로 의심되고 있어 앞으로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공급을 재개할지가 한층 더 불투명해졌다.

여기에 더해 2010년 같은 강추위가 닥치고 재생에너지 전력 생산이 적으며 러시아산 가스 공급 중단의 충격이 충분히 완화되지 못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에서는 같은 기간 유로존의 마이너스 성장 폭이 최대 4.7%까지 커질 수 있다고 블룸버그 이코노믹스는 전망했다.

이는 세계 금융위기 무렵인 2009년에 비견할 만한 경기후퇴다. 유로존이 이런 운명을 피하더라도 2차대전 이후 세 번째로 큰 경기위축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유로존은 코로나19 충격으로부터 수요가 회복하면서 에너지 가격이 급등하기 시작할 때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위기의 강도를 더했다.

최근 천연가스·전력 요금이 8월 고점보다 내렸다고 해도 일부 지역에서는 여전히 평소의 6배를 웃돈다. 이런 가격이라면 기업들이 정부 지원 없이는 장기 생존이 어렵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 정부는 코로나19 대확산 기간 파국을 막기 위해 재정지출의 문을 개방했고, 최근 에너지 위기를 맞아 다시 재정 지원에 나서고 있다.

이젠 정부가 재정의 추가 압박을 감수하면서 더 많이 지원해야 할지, 아니면 현재 위기를 통제 불가능한 상태로 놔둘 수밖에 없는 상황을 유권자들에게 설명해야 할지 선택해야 할 상황이라고 블룸버그는 지적했다.

벨기에 싱크탱크 브뤼헐에 따르면 유럽 각국이 에너지 위기와 경기후퇴에 대비해 준비한 지원 대책 규모는 이달 중순 기준 총 3천140억유로(약 433조원)에 달한다.

브뤼헐 관계자는 이는 "재정 관점에서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것이 명확하다"고 지적했다.

금융 리서치회사 TS롬바르드의 다리오 퍼킨스 이코노미스트는 "가격상한제, 유동성 지원 등이 불가피하다"며 "당국이 가계와 기업을 지원하지 않으면 코로나19 기간 피했던 것과 유사한 경기후퇴를 겪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에너지 위기가 단지 시작뿐이라는 주장도 나온다. 중국이 코로나19 봉쇄를 완화하면 액화천연가스(LNG) 가스 수요가 되살아나 유럽에서의 에너지 위기가 가중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옥스퍼드 에너지 연구소(OIES)는 "이는 단지 3개월짜리 문제가 아니다"며 "잠재적으로 2년은 지속할 문제"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