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지식의 밥벌이는 인류멸망을...
-= 하찮은 지식의 밥벌이는 인류멸망을... =-
올려 진 글을 보고 급한 마음으로 한마디 하겠습니다.
나우르 공화국의 교훈 우리들의 이야기
2011/08/22 23:43
http://blog.naver.com/153kyk/20135979118
지난 3월경 KBS에서 나우르 공화국에 대한 이야기가 방영되었습니다.
정치인들이 무작정 달콤한 무상복지 포풀리즘을 쏟아내고 있는 현실을 생각할 때,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매우 귀중한 사례이기에 소개합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요한 나라였던 작은 섬나라 나우르. 남태평양의 호주와 하와이 사이에 있는 여의도 면적의 2배반의 면적을 가지고 있는 나라. 그러나 국토의 80%가 인산질 비료의 원료가 되는 인광석으로 덮여있었습니다.
이 인광석은 품질이 우수하여 석유보다 비싼 값에 수출하였습니다. 여기에서 얻어지는 수입이 막대하여 국가 재정이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1980년대에 국민소득 GNP 3만 불, 세금이 없는 나라, 무상의료, 무상교육, 국민들은 국가에서 나눠주는 돈으로 최신 고급 모델의 에어컨, 냉장고를 들여놓고, 걸어도 30분 정도면 웬만한 곳을 다 다닐 수 있는 조그만 나라에 가정마다 자가용을 두, 세대씩 가지고 있어 조금만 걸면 될 일도 자가용을 몰고 다닌 나라, 평생을 여행 다니며 즐기는 나라, 모든 가사 노동은 외국인을 고용한 나라, 그야말로 완벽한 사회 보장제도가 실현된 나라로 풍요와 부요를 누리던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1990년대부터 인광석의 생산량이 감소하고, 2000년대 들어서서 고갈이 됩니다. 그동안 국토는 인광석 채굴로 인해 온통 파혜쳐져 황폐해졌습니다.
이래서 국가를 운영하기 위해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지식 자가 아니라, 의식이 있는 지식소유자를 말입니다.
먹고 놀기에 길들여진 국민들은 인구의 50% 이상이 당뇨병, 90%가 비만에 걸렸습니다.
그 같은 책임은 누구에게 있을 까요?
한마디로 국정을 운영하는 자의 책임입니다.
뒤늦게 정신 차린 정부가 관광 상품개발과 일자리를 제공하고자 했지만, 국민들은 이미 게으름과 향락에 굳어 버려 걷기 싫어하고 일하기 싫어하는 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지구 온난화의 현상으로 해수면은 점점 높아 져 섬은 바닷물에 잠길 위기에 처한 최빈민 국가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 아닙니까?
풍요 속에 빈곤이었습니다.
천만에요.
어찌 저 같은 상황을 풍요라 하겠으며,
빈곤이라 하겠습니까?
숱한 세월에 거쳐 날짐승들의 배설물로 생성된 것이니 만큼,
그런 상황은 늘 상 줄어들지 않는 의미에서의 풍요(豊饒)라기
보다는, 마치 곶감고치에서 곶감을 빼 먹어 종국에는 쌓인 눈
녹듯이 사라질 수밖에 없는 것이니 만큼,
적산(積霰)이라는 어구(語句)를 사용하였어야 옳은 것이 아닙니까?
그것도 처음부터 말입니다. 이 순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지식인들이 이 녹색별인 지구를 풍요롭다고 하였습니다.
하지만, 현실에서도 과연 저렇듯 주장하실 용기가 있습니까?
그리고 또 빈곤(貧困)이라 하셨습니까?
아니지요, 저들에게는 애시 당초
아무것도 없었으니, 빈곤이라 할 수 없죠,
그 나라를 치리하는 자에 의하여 가난과 괴로움을 배우는 중이죠.
토인비는 역사는 응전의 법칙이라고 했습니다.
역사는 고난과 시련 앞에 응전하면서 창조되었고 발전되어 왔다는 뜻입니다.
이 말의 뜻은 뛰어난 도덕성과 정신력, 그리고 문화와 문명의 창조는 수많은 고난과 역경에
대한 응전 속에서 만들어졌다는 뜻입니다.
어느 창업주가 은퇴하면서 외친 말이 생각이 납니다.
“우린 배가 고팠다. 삭막한 맨 땅에서 빈 몸으로 오늘의 한국을 일구어 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자손들은 풍요 속에서 태어났고 자라고 있다.
시련과 고난의 역사 앞에서 과연 응전의 힘과 저력이 있는가? “ 탄식을 했습니다.
허우대는 크고 포장은 화려한데 속은 비어있습니다.
지식은 많이 들어 있는데 공동체 의식이나 국가관은 없고 오직 자신의 욕구 충족에만 몰두
하여 있습니다. 하고 다니는 치장은 명품 족인데 내면의 인격은 천박합니다.
허우대는 커졌지만 인내심이 부족하고 생각하는 것을 싫어하여 감성적으로 변해갑니다.
삶의 깊이는 옅습니다. 풍요속의 빈곤입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는 것”이 하나님의 자연법칙입니다.
콩 심은 데 팥 나는 것 보지 못했고, 팥 심은 데 콩 나는 것 본 일이 없습니다.
일하기 싫은 자는 먹지도 말라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요즘 무상급식으로 세상이 시끄럽습니다.
학교의 존재 이유는 학생들에게 밥 한 끼 먹여 주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자기 스스로 노력하여 자기 자신의 삶을 꾸려 나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 주는데 있습니다.
청치인 들은 “학생들에게 밥 한 끼 먹이는 것을 가지고 뭘 그러느냐”고 감성을 자극하며 무
상 복지 포풀리즘으로 표 얻기에만 몰두하는 정치인들의 행태가 심히 걱정스럽습니다.
나우르 공화국이 아니라도 요즘 경제가 어려워 힘 드는 주변 나라들로부터 소중한 교훈을
얻습니다.
정치인들의 달콤한 인기발언에 놀아나지 않아야 합니다.
“지식은 많이 들어 있는데 공동체 의식이나 국가관은 없”다? 당연한
것 아닙니까? 언제 이 나라에서 제대로 된 국가관(國家觀)이나, 민족
관(民族觀), 하다못해 역사관(歷史觀)이라도 바르게 가르친 적이 있습
니까? 하다못해, 본인이 왈 교장이었다고 하는 양반마저 뚜렷한 지
향점 없이, 이같이 말을 하고 더 나아가서 “욕구 충족에 몰두 하여
있고..... 내면 인격은 천박”하다고요? 그리고 “삶의 깊이는 엷고, 풍
요속의 빈곤”하고, “정치인들의 달콤한 인기발언에 놀아나지 않아”야
한다고요? 어찌도 한마디 한마디가 어느 특정인에 대한 해바라기 성
발언으로 딸랑거리는 소리가 요란하군요. 그 같이 몰두하는 것이라던
가, 천박한 인격하며, 엷은 삶과 빈곤이라고 지적하시는 것들은 하나
같이 오늘을 이끌어가는 자들의 되지못한 횃대 질로 야기된 것들 아
닙니까? 이러한 사실들은 온전히 묻어둔 채 겉으로 들어나는 부분만
을 꼬집는 다면 과연 한때나마 교장 이었다는 사실이 몹시 부끄러워
피 꺽 질 이라도 날만 한데 괜찮으십니까? 끝으로 본인은 정치인은
아니지만 본인의 돈키호테적 기질로 얻어진 것이 있어 그로써 이 나
라에 주인이 되려고 하는 자로써 “정치인들의 달콤한 인기발언에 놀
아나지 않아”야 한다고 하셨음에선, 전에 사우나에서 그룹단위로 몰
려온 고등학생들과의 대화중에 알게 된 이야기인데, 내가 그들에게
“영구기관(永久機關)”을 물어 보니까, 하나 같이 “무슨 연구를 하는
단체냐?”라며 오히려 반문하는 데엔 저으기 놀라지 않을 수 없었죠.
오늘 댁의 글을 보니 그 학생들이 십분 이해가 되는 군요. 저와 같은
문맥에서 이 못난 놈의 눈에는“하찮고 보잘 것 없는 지식으로
밥벌이를 하는 선생은 더 이상에 선생이 아니다.”라는 소리로 들
리니 왠 조화 속인지 이 못난 위인에 머리로는 도무지 모르겠구려...
그나마 다행이 구려 이젠 현장에서 떠나는 몸이시라니...
弘 홍 모든 국민을 차등(差等) 없이 평등하게
益 익 이로움을 안겨 줌으로 배려(配慮)하는
主 주 주인정신으로 상대(相對)를 대하도록
義 의 바른 마음가짐을 생성(生成)케 하여
天 천 하늘마저 시샘을 내야 할 제도(制度)로
下 하 밑으론 힘과 재물의 편차(偏差)가 없는
之 지 보편행보에 참 지식사회 개장(開場)을
大 대 큰 목적으로 전 국민들이 동참(同參)하여
本 본 참 인류에 삶의 근본(根本)이 되는 제도.
나는 每日, 오늘도 下記같이
나 梁 種 植은 大韓民國 大統領으로
世界를 完全히 平定하고
人類를 宇宙에 스승으로 자리매김을 한다.
고 念願을 담고, 또 주어 담으며, 呪文처럼 뇌까린다.
-=략=-(2012/05/22 16: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