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을 4.19운동으로 격하시켜 파문을 불러일으켰던 뉴라이트 진영의 ‘교과서 포럼’ 파문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지난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때 북한군 6백여명이 개입했다는 탈북자들의 황당한 주장이 제기돼 파문이 일고 있다.

증언자는 현장 나오지 않고 '전언' 형식으로 북한군 개입 주장

‘자유북한군인연합대표’(대표 임천용)는 20일 오전 서울 중구 세실레스토랑에서 ‘5.18 광주봉기와 북한군 개입에 대한 전 북한군 관계자들의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주장했다. 문제의 단체는 지난 해 12월 전 북한 인민군 특수부대원 출신의 탈북자들을 중심으로 결성한 단체로 현재 회원이 70여명에 이른다.

이들은 이 날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1980년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북한군 특수부대를 주축으로 한 북한군 6백여명이 개입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의 임천용 대표는 자신을 북한 '교도지도국 19여단 2대대' 상위 출신이라고 소개했다.

임 대표는 "5.18 당시 북한군으로 투입된 바 있는 탈북자 A씨의 증언"이라고 소개한 뒤 "A씨는 '5ㆍ18 민중봉기 당시 각자 분담된 임무에 따라 조별로 움직였다. A씨가 참가했던 쪽은 시위대 쪽에서 움직였고 절반은 괴뢰군(계엄군) 쪽에서 움직였다'고 나에게 증언했다"며 북한군의 5ㆍ18 개입을 주장했다.

임 대표는 이어 “A씨는 또 '나를 포함한 세 사람만 살아서 (북으로) 돌아왔다. 도망가는 여자 등에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정말 살 떨리는 일이었다. 괴뢰군(계엄군) 애들은 우리보다 겁이 많았다. 오히려 봉기군(광주 시민)이 더 용감했다'고 증언했다"고 주장했다.

임 대표는 이어 광주에 투입됐다는 또다른 북한군 탈북자 B씨 증언이라며 재차 개입설을 주장했다. 그는 “탈북 군인 출신으로 당시 광주에 투입된 바 있는 B씨 증언에 따르면, 괴뢰군(계엄군)과 봉기군(광주 시민) 양측 모두 피해를 입히자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우리는 그런 분위기를 조장하고 적당히 죽여야 했다”고 주장했다. B씨는 이어 “그러나 북한 군부에서 우리가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하게 했다. 그렇게 되면 (남북한간) 전면전으로 가게 되고 봉기의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고 말했다고 임대표는 주장했다.

임 대표는 북한 수뇌부가 광주에 개입했다는 또다른 결정적 증거(?)로 '김일성과 김정일이 했다'는 발언 내용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김일성이 군부대를 시찰하는 과정에서 ‘남한을 3번 해방시킬 수 있었는데 아쉽게 놓쳤다. 그 중에서도 광주가 제일 아쉽다’고 말한 적이 있다”며 “이는 명백한 북한 군부의 광주 개입을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자신이 북한을 탈출하기 전 직접 김정일 국방위원장에게 들었던 이야기라며 “김정일이 순시차 들른 모 부대에서 인민군들을 세워두고 ‘광주에서 우리는 교훈을 찾아야한다. 이길 수 있었는 데 놓쳤다. 땀과 노력의 부족이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김정일이가 김일성을 향해 ‘광주봉기는 수령님께 바치는 나의 선물입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북한 주민이라면 김일성, 김정일이가 광주에 개입하기 위해 북한군을 내려보낸 사실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라고 강변했다.

“죽은 북한군을 민주화투사로 둔갑시켜” 주장도

북한군이 남파되는 장면을 목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한 탈북자는 이날 “나는 80년 5.18 봉기 당시 북한 인민군 중위로, 함경북도 송림, 대동강 하류에 있는 사회안전부 연봉특수(남파 목적의 부대)에서 자동차 관리 장교로 있었다”며 “당시 대동강 하류를 따라 남파하는 군인들을 보았다. 내가 직접 목격한 것은 한국군 전투복 차림의 M1 총을 낀 사람들이었다. 한 번에 8~12명까지 (남한으로) 이동했다”고 주장했다.

70년대부터 조선인민군 협주단 배우로 15년간 근무했다는 김영순 씨는 “협주단은 중요 고위층과 만날 기회가 많아 북한이 시도하고 있는 김일성, 김정일의 책략을 많이 들을 수 있었다”며 “5ㆍ18사건은 김정일이가 7백명 가까운 인원을 파견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당시 내려간 북한군은 모두 다 환각제를 먹고 닥치는대로 (시민을) 죽였다는 것을 북한 사람들은 누구나 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그들(북한군)에 의해 광주 봉기가 진압됐다는 것은 북한 주민들은 다 아는 사실인데 그것들을 민주화투사로 둔갑시키는 현재의 대한민국이 안타깝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 다른 증언자는 “북한 내 대남사업국 자료에 따르면 5ㆍ18 봉기가 실패하자 결국 80년 5월 25일, 부상자들을 포함해 4백여명이 귀대했고 이후 다시 나머지 70여명이 돌아왔다. 광주에서의 북한군 사망자는 약 40명이고 이들의 시신 중 일부만을 췌취해 전선(군사분계선)을 넘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임 대표는 기자회견후 “분명 광주봉기는 민주화 봉기다. 광주에서 안타깝게 목숨을 바친 사람께 애도를 표한다. 오늘 자리는 ‘5ㆍ18이 민주화다 아니다’ 하는 논쟁거리를 만들기 위한 자리가 아니다"라면서도 "김정일 정권을 신주단지 모시듯 하는 현 정권과 친북좌파들에게 경고하는 자리”라고 주장, 정치적 목적을 분명히 했다.

임 대표는 '왜 직접 광주에 투입됐다는 탈북자들이 기자회견장에 나오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오기로 했는데 갑자기 사건이 생겨 못왔다”며 “협박이나 위협을 받아서인지 내용은 잘 모른다”고 넘어갔다.

오복섭 “전두환 군부의 명예회복에 일조할 듯”

북파공작원 출신들이 만든 ‘대한민국애국청년동지회’ 오복섭 회장은 임 대표의 기자회견후 “정치적으로 매우 민감한 문제라 논란은 따르겠지만 우리는 ‘국익에 부합하겠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기자회견 이유를 밝혔다.

오 회장은 “시민군과 군과의 갈등 해소에도 도움이 되고, 당시 전두환 전 대통령을 비롯한 군 지휘관들의 명예회복에도 일조하겠다”며 “당시 군 지휘관들이 상당한 오명을 쓰고 있다. 지금부터 5ㆍ18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에는 서정갑 본부장을 비롯한 국민행동본부 회원들과 지만원 씨 및 몇몇 올드라이트 진영의 회원들도 참석했다.

서 본부장은 기자회견과 관련, “광주를 재조명해야 한다”며 “군의 실추된 명예회복 차원에서라도 반드시 이 문제는 규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광주민주화운동에 진심으로 참가해 희생당한 분들의 넋을 기리고 명예회복을 하는 차원에서도 이 문제는 재조명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더 나아가 “일방적으로 광주는 민주항쟁으로만 명명됐다”며 “군이 시민들을 이렇게 잔인하게 살해했다는 식의 좌파적 공세를 차단하는 계기도 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5.18 왜곡에 5.18단체들 강력반발 예상

올드라이트 등과 행동을 같이 해온 이들 탈북자의 이날 기자회견 내용은 5.18에 개입했다는 증인이 나오지 않고 '카더라' 식의 전언으로만 이뤄졌다는 점에서 5.18단체 등의 거센 반발이 예상되고 있다.

특히 광주에서 40여명의 북한군이 사상했으며, 이들을 '민주화투사'로 둔갑시켰다는 주장은 5.18 열사들을 정면으로 모욕하는 거짓 발언으로 일파만파의 파문을 예고하고 있다. 5.18 열사들의 신분은 모두 확인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기자회견 내용을 계기로 '전두환 군부의 명예'가 회복될 것이라는 주장도 이번 기자회견의 정치적 배경을 의심케 하는 대목으로, 5.18 유관단체들의 거센 반발이 예상된다.

이들 주장의 진위를 확인하기 위해선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오지 않은 탈북자들이 누구인지, 그리고 그들이 과연 그런 주장을 했는지를 밝혀야 할 것이며, 사실 확인 결과 이날 기자회견 내용이 허위로 드러날 경우 탈북자 및 올드라이트 진영은 '교과서 포럼'과는 비교도 안될 거센 역풍을 각오해야 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