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그룹이 본계약 체결을 사흘 앞둔 26일 산업은행이 내년 3월 대우조선해양 인수자금 완납 조건을 완화해주고 인수가격도 낮춰주지 않을 경우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보내, 사실상 대우조선해양 매각이 물 건너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을 낳고 있다.

한화 "매입가격 낮추고 자금 납입시기도 늦춰달라"

한화, 한화석유화학, 한화건설 등 한화그룹 3개사는 이날 오전 긴급 이사회를 열고 "양해각서(MOU)에서 규정한 지급조건에 따른 자금 집행은 회사의 재무 상황 및 경영에 심각하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으므로, 매매 대금의 지급 조건을 완화하도록 산업은행과 협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의결했다. 내년 3월 매매대금을 완납하기로 한 MOU 합의사항을 분납 등의 방식으로 바꿔달라는 것.

이들은 이어 “조선업 경기 냉각 등으로 인한 수주 취소, 신규수주 부재 및 잠재부실 발생 우려 등 대우조선해양의 가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우려가 상당한만큼 확인 실사를 거쳐 본 계약을 체결하거나, 또는 이에 준하는 보완장치를 강구해야 한다”고 의결했다. 6조5천억원으로 써낸 매입가격이 너무 비싸니 낮춰달라는 요구다.

호언장담했던 한화, 한달여만에 후퇴

한달여전인 지난 11월14일 MOU를 체결할 때만 해도 한화는 주변의 우려어린 시각에도 불구하고 자금 동원을 장담했었다. 실제로 한화는 입찰가의 5%에 달하는 이해보증금을 납입하기도 했다.

하지만 한달여만에 한화는 이해보증금을 떼일 각오까지 하며 산은에 대해 인수대금 납입시한 연장 및 인수대금 인하 요구를 들고 나오기에 이르렀다. 이유는 인수자금을 조달할 길이 막막하기 때문이다.

한화의 대우조선해양 잔금납부를 위해 마련해야 하는 돈은 최소 6조원으로 알려진다. 한화가 자체적으로 동원가능한 자금은 1조원 정도로 알려진다. 나머지 5조원을 조달해야 하나, 조달길이 꽉 막힌 것이다.

한화는 대한생명 지분 매각으로 1조원, 시흥의 군자매립지 매각과 개발로 1조원을 각각 마련하겠다고 밝혔었다. 그러나 주당 1만원 이상을 기대했던 대한생명은 장외시장에서 반토막났고 시흥시는 군자매립지에 대해 5천억원만 지급하겠다는 입장이다. 당초 계획보다 1조원이상 펑크가 난 셈.

한화는 또 장교동과 소공동 빌딩을 팔아 1조원을 조달하고 한화리조트, 갤러리아백화점 등을 매각도 검토했지만 부동산값이 폭락하고 이를 사려는 기업들도 거의 없어 이 또한 제동이 걸렸다.

한화가 이밖에 국민연금, 중동투자자 등 재무적 투자자(FI)들로부터 조달하겠다던 2조원도 거의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으며, 농협, 외환은행, 하나은행 등으로부터 받기로 했던 1조5천억원 가량의 신디케이트론 역시 해당은행들이 극심한 유동성 위기에 빠져들면서 거의 도루묵이 됐다.

한마디로 말해, 대우조선을 인수하려면 제돈으로 해야 하는 처지가 됐으나 한화 수중에 인수할 돈이 거의 없는 것이다.

공은 산은에게...민유성 행장 벼랑끝 위기 몰려

한화가 이처럼 배수진을 치고 나오면서 공은 이제 산은으로 넘어간 모양새가 됐다.

산은은 앞서 MOU 체결때도 당초 연내에 납입키로 한 인수대금 완납 시기를 내년 3월로 한차례 늦춰준 바 있다. 이런 마당에 또다시 한화가 인수대금 완납 시기와 인수가격 인하 요구를 들고 나오자, 산은은 발끈하며 계약 파기까지 운운하는 분위기다.

그러나 시장은 한화와 산은 모두에게 비판적이다. 우선 한화에 대해선 글로벌 금융위기로 최악의 위기가 전개되는 시점에 무리한 대우조선 인수를 추진한 점에 대해서 비판적이다. 한화의 상황판단 능력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는 것.

산은에 대해서도 최악의 금융경색 상황하에서 유동성이 상대적으로 풍부한 다른 입찰자들 대신 한화를 택한 근시안적 판단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일각에서는 산은의 황당한 리만브러더스 인수 추진에 이은 대우조선 매각 백지화 위기로, 민유성 산은행장의 경영능력에 심대한 하자가 드러난 게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