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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강사 또 자살,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

대학강사 고 한경선씨 “학벌로 나눠먹고 비정규직 악용"

열악한 근무조건과 박봉, 대학들의 근무 및 임용 차별이 존재하는 현실을 비관한 한 대학강사가 먼 이국 땅에서 자살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져 충격을 안겨주고 있다.

유서 3장이 담긴 한국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현실

7일 비정규직교수노조에 따르면 지난 2006년부터 건국대 충주 캠퍼스에서 시간강사로 일해오던 대학강사 한경선(44세, 여)씨가 지난 달 27일 텍사스주 오스틴시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현지언론에 따르면 한씨는 딸과 투숙하던 오스틴시 한 모텔에서 음독후 경련을 일으켜 병원으로 긴급 후송됐지만 오전 11시께 사망했다.

한씨는 서울교대를 졸업하고 서울 미동초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다 1998년부터 2003년까지 텍사스주립대에서 테솔 분야 박사과정을 마치고 귀국했다. 그러나 장기간 교원임용에서 떨어지다 2006년부터 충주의 모 대학에서 ‘실용영어’를 가르쳐왔다.

한씨가 자살을 단행한 모텔에서는 비정규직 시간강사의 설움과 고통, 대학 임용의 부조리한 현실을 절절히 담은 유서 3장이 발견됐다.

한씨는 “제가 삶을 마감하면서 이 글을 쓰는 것은, 더 이상은 이와 같은 비극이 일어나길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며 “그럴듯한 구호나 정책만으로는 해결될 수 없는, 진정한 반성과 성찰 없이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사항이라 생각된다”고 유서의 첫 머리를 시작했다.

한국비정규교수노동조합은 시간강사의 교원지위를 인정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 통과를 촉구하며 국회 앞에서 1백83일째 천막농성을 이어가고 있다.ⓒ한국비정규직교수노동조합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될 줄 알았지만...”

그는 대학 교수 임용과 관련해 “귀국 초에는 열심히 강의하고 논문 쓰면 학교에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란 마음으로 하루를 쪼개어 고시원과 독서실을 전전하며 토요일이든 일요일이든 열심히 논문을 쓰며 보냈다”며 “하지만 이곳에선 이러한 연구업적과 강의경력과는 다른 무언가가 이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깨닫기 위해서 얼마간의 시간이 필요했다”고 절망감을 토로했다.

그는 “그것은 뜻 맞는 몇몇 학교들끼리 연합해서 압력을 가하기 위해 한 특정인의 학교 임용을 가로막아, 그의 학문적 업적이나 발전을 저해함으로써 경쟁에서 도태되어 결국엔 그의 삶을 파탄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며 교수사회에 만연한 '학벌 나눠먹기'의 폐단을 질타했다.

“비정규직 신분 악용한 대학 횡포에 참담”

그는 또 “○○대학에서 강의전담교수로 있는 동안에는 그 신분상 약자인 점으로 인한 유형들로 나타나게 되었다”며 비정규직 시간강사라는 취약한 신분이 대학 사회에서 과다 업무와 부당한 대우로 이어졌던 경험도 토로했다.

한씨는 “책임시수를 책임학점제로 변경하면서 초과강사료를 주지 않으려 했던 부서장이 외국인교수에게 출퇴근시 사고에 대한 보상을 직접 모색하던 모습에 더욱 참담한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고 적었다.

“다시는 나 같은 사람 나오지 말기를...”

그는 또 “1년 단위로 3년까지 계약이 갱신될 수 있는 상황하에서 주임교수의 재임용 추천조항은 그의 부당한 처우에 무방비로 놓이게 될 소지를 야기할 조항”이라며 “구체적으로, 교재변경등의 이유로 부서장의 방에 한사람씩 불러 부서장과 과목주관교수 합동의 심문식 면담이라든지, 외부출강금지건과 관련한 동료교수 파면, 그리고 2006년도 신입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영어수준 평가도구인 모의 토익시험지의 공개거부 등 이곳에서 지낸 만 2년이 마치 20년같이 느껴지던 일련의 사례들이었다”고 토로했다.

그는 “그 동안 겪은 이러한 부조리와 모순은 열심히 연구와 강의를 하리란 초기의 순수한 열정에서 이 사회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애초의 희망과 비전을 접게 만들었다”며 “마지막으로, 더 이상 저와 같은 이가 있지 않았으면 한다”며 장문의 유서를 끝맺었다.

대학강사 교원지위 관련법은 국회 표류

한씨의 자살은 동일한 석.박사 학위를 소유하고 연구업적을 쌓아도 여전히 전임교수가 아니면 교원의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는 국내 시간강사들의 절박한 현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2003년에는 서울대 시간강사 백모씨, 2006년에는 서울대 시간강사 권모씨와 부산대 시간강사 김모씨가 현실을 비관하며 목숨을 끊었고 최근에는 서울대 불문과 강사도 생을 마감했다.

국회는 지난 2007년 5월 시간강사의 교원 지위를 인정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이주호 한나라당 의원 대표발의)을 발의했지만 2월 임시국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고 국회 바깥에서는 비정규직교수노조의 1인시위와 천막농성이 1백83일째 계속되고 있다.

한국은 지금 '죽은 시간강사의 사회'임을 잇따라 자살하는 시간강사들이 온 몸으로 보여주고 있다.
최병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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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38 29
    asdf

    같은 동포에게는 더 가혹하고 코큰 외국인에게는 한없이 비굴한
    이런 인간들 많죠.
    남대문도 임난때 소서행장이 그 아름다움에 반해 일본으로 가져가고 싶어는 했지만 불사르지는 않았죠.바로 한국인이 불살랐죠.
    웬지 서글프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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