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메뉴 바로가기 검색 바로가기

YS '초산테러'와 '40대 기수론'

[옛날 정치 지금 정치] <6> 정치생명 노렸던 어느 테러 이야기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에 대한 테러는 배후가 있건 없건 정치테러다. 테러의 목적은 무엇이었을까. 그가 겨냥한 것은 목 언저리다. 귀 옆에서 시작해 느슨한 &#4354;자 형이다. 정확하게 그었다. 재빠르고 정확한 솜씨로 봐 전문 칼잡이 수준이다. 1㎝만 위였다면 안면신경이 손상돼 치료가 불가능한 장애를 가져올 번했다는 것이 주치의의 진단이다. 이런 정황으로 봐 최소한 정치생명을 끊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 그러니까 테러의 목적은 박 대표가 대통령이 될 수 없게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

이번 테러에서 연상되는 비슷한 테러는 1969년 6월 김영삼 신민당 원내총무를 겨냥했던 초산테러다. 김 총무의 상도동 자택은 좁은 골목을 거의 직각으로 꺾이는 골목길을 돌아 들어간다. 테러범은 그 골목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김 총무가 탄 승용차가 골목을 도느라 거의 반 정지상태가 된 때 차 문을 열려고 했다. 두 명의 낯선 청년이었다. 차 문이 잠겨 있어 문이 열리지 않았고 운전기사가 위험을 깨닫고 자동차 속력을 냈다. 그러자 유리문을 향해 병을 던지고 도망쳤다. 자동차 칠이 불타 벗겨지는 손상을 입고 있었다. 초산이 든 병이었다. 차 문이 열렸다면 김 총무는 얼굴이 회복불능의 손상을 입었을 테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대부분은 승용차 문을 거의 잠그지 않는다. 그런데 김 총무는 반드시 잠근다. 미국 국무성 초청으로 미국에 가 있을 때 사고에 대비하기 위해 문은 반드시 잠가야 한다는 걸 배웠기 때문이다. 그는 이 배움 덕으로 치명적인 테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특별수사반이 편성되고 국회도 조사에 나섰지만 작은 단서 하나 잡지 못했다. 그러나 김 총무는 국회본회의에서 테러는 김형욱 정보부장이 지령한 것이라고 단언했다. 대체 무슨 연유였을까.

70년대 중반 신민당 총재 시절의 김영삼. 원내총무 시절이던 1969년의 '초산 테러'로 그는 그후 '40대 기수론'을 주창하는 정치거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연합뉴스


테러가 있기 몇 달 전으로 기억한다. 국회에서 취재 중인데 회사에서 급히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갔더니 편집국장이 엽서 하나를 내밀었다. 반공법 위반 피의 사실에 관해 조사할 것이 있으니 14시까지 남산 정보부로 나오라는 출두통지서였다. 뭐 짚이는 게 있느냐고 했다. 모르겠다고 했더니 내막을 알아볼 동안 잠시 피해 있겠느냐 아니면 나가겠느냐고 물었다. 난 나가겠다고 했다. 피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정보부에 믿을만한 분이 있었다. 당시 국내 정치담당이던 조일재 과장이다. 신념이 있고 바른 자세를 지닌 분이었다. 후일 주일공사로 나가 친 김일성단체인 조총련의 모국방문을 실현시키기도 한 유능한 정보원이다. 내가 전화를 걸었다. 반공법 위반이라니 터무니없다고 말했더니 조 과장은 "알아보고 연락하겠다"고 했다. 10분쯤 지났을까 전화를 걸어왔다.

"김영삼과 관련해 물을 거다. 별일 아니다. 협조해주면 될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나는 바로 짚이는 게 있었다.

정보부에 갔다. 어느 방에 안내했다. 한 요원이 다가오더니 당신 해설기사 정확하더라 운운하면서 담배를 권하고 나가버렸다. 담배를 피고 있는데 또 다른 요원 한 명이 들어오더니 여기가 휴게실인줄 아느냐며 발로 의자를 걷어찼다. 심문하기 전 겁주고 기죽이는 수법이다.

심문이 시작됐다. 김규남을 아느냐고 물었다. 간첩혐의로 체포된 의원이다. 모른다고 했더니 국회 담당기자가 국회의원도 모르느냐고 비아냥거렸다.

최근 3 개월 동안 만난 사람과 시간 그리고 대화내용을 쓰라고 했다. 나는 못쓴다고 우겼다. 내가 일일이 기억할 수 없다. 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했느냐고 물으면 대답하겠지만 기억을 더듬어 몽땅 쓰라니 난 기억할 수 없다고 우겼다. 김영삼과 만나는 시간 대화 등도 꼬치꼬치 물었다. 그러나 심문은 계속 주변만 돌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건 나는 그들이 알려고 하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알려는 건 어느 날의 대화다.

기자의 아침은 취재원과의 전화로 시작된다. 그 날 아침 김 총무는 조선호텔 커피숍에서 만나자고 했다. 다른 기자 두 명도 나왔다. 조중동 기자다. 김규남 간첩사건으로 얘기가 옮았다. 내가 얘기했다.

김규남의 간첩혐의는 국회의원이 된 이후가 아니라 이전의 일이다. 공화당 전국구 의원은 공천 전 정보부에서 신원조사를 한다. 조사를 제대로 했다면 그때 알아냈을 일이다. 조사가 부실해 간첩을 국회의원이 되게 했다. 정보부장이 책임질 일이다.

김 총무가"그렇지"라며 동의했다. 국회로 자리를 옮겨 김형욱 정보부장 문책해임을 요구하는 성명을 냈다. 안보는 돌보지 않고 정치사찰이나 하는 K CIA의 실상이 드러난 사건이라고 몰았다. 각 신문에 3 내지 4단짜리 기사로 보도됐다.

김형욱 정보부장은 제 자리 지키기를 으뜸의 과제로 했다. 그의 자리를 넘보는 일은 용납하지 않았다. 본인의 뜻과 상관없이 정보부장 적임자로 손꼽히기라도 하면 장본인은 그 날로 상처를 입었다. 그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필요하면 무슨 일이라도 저지를 결의가 돼 있는 사람이었다. 당시 권력 주변의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던 일이다. 야당 의원조차 그 부문은 건드리기를 겁냈다. 그런 시절이었다. 그런데 그걸 건드린 것이다.

그는 조사를 했다. 그리고 어떤 기자가 충동질해서 김영삼 총무가 그런 성명을 내게 되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그 정보에서 맨 먼저 혐의자로 지목된 것이 중앙일보 이영석 기자다. 그래서 출두하라는 통지서를 보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불려가기 전 바로 이걸 조사하기 위해서라는 걸 알게 됐다. 조 과장이 준 힌트 덕이다. 뭘 알아내려는지 아는데 알게 할 바보는 없다. 밤을 새며 조사한 결과는 혐의 없다는 걸로 결론났다.

다음 차례가 조선일보 기자다. 불려간 기자는 그 날 조선호텔 커피숍에 함께 있던 기자가 아니다. 역시 허탕쳤다. 다음은 동아일보다. 아무튼 조중동 기자가 차례차례 불려갔다. 그리고 정보부가 내린 결론은 기자가 충동질했다는 정보가 잘못된 정보다. 김영삼이 스스로 판단해 성명을 낸 것이다. 대체 김영삼이가 왜 날 못 잡아먹어 안달인지 조사해 보라.김형욱의 판단이었다.

처음엔 잘 지내보자는 신호를 보냈다. 김 총무가 괄시 못할 사람을 중간에 넣어 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런데 잘 지내기로 하는 협상이 진전되지 않았다. 다음 차례는 약점을 캐내는 조사다. 주변을 비롯해 샅샅이 조사했다. 이쯤이면 김 총무도 주변을 조여온다는 걸 안다. 너 정말 해보겠다는 거냐. 이런 메시지가 오갔다. 재미없다는 협박도 주고받았다. 너 배는 철판 깔았냐는 협박도 있었다. 그리고 한동안 조용해졌다. 불가근불가원 사이가 된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초산테러가 일어났다. 김 총무가 테러는 김형욱 정보부장이 시킨 짓이라고 단언한 배경이다. 김 총무의 추측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런 심증을 갖게 한 둘의 사연이다.

김 총무는 이 사건으로 더 유명해지고 40대 기수를 선창할 만치 정치적으로 자랐다. 그렇지만 자칫했으면 정치생명이 끊어졌을 수도 있었다. 테러는 끔찍한 일이다. 그 시절 미수에 그친 이런 사건에도 국민은 하나같이 치를 떨었다.

그런데 박 대표 테러에선 상상할 수 없는 반응이 있었다. 노사모의 노혜경 대표는 비아냥거렸고 민족문학작가회의 손명호라는 인간은 "통콰이" 라고 환호했다. 정권에 의해 편 갈이가 심해졌다지만 어떻게 사회가 이토록 황폐해질 수 있는 것인가.

테러는 불시에 다가온다. 대비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무섭고 끔찍하다. 71년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 그 해 4월25일 박 대통령은 장춘단공원에서 대통령 후보로 갖는 마지막 연설을 했다. 당시는 연설이 운동의 중심이어서 수십만 청중이 모이는 대형 집회였다. 그 날 몰려든 청중들이 대통령을 가까이서 보겠다고 다가서는 바람에 경호원이 짠 스크럼이 출렁거리고 청중이 쓰러지는 사고가 있었다. 연설을 마치고 청와대로 돌아온 대통령은 연설회는 참 위험하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간첩이 수류탄이라도 터뜨리면 어떻게 되겠나. 야당집회에 테러해놓고 뒤집어씌우면 어떻게 하지. 유세는 정말 위험해"

박 대통령의 염려대로 유세는 위험하다. 그러나 선거가 있고 유세는 해야 한다. 요즘은 TV 토론 등으로 유세의 비중이 낮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유세는 안 할 수 없다. 그런데 유세 때 야당대표는 테러에 노출된다. 물론 경호를 한다. 그러나 대통령 경호 수준의 철저한 경호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정말이지 테러가 두려운 계절이다.
이영석 교수신문고문/언론인

댓글이 1 개 있습니다.

  • 22 30
    오상희

    이영석 기자님의 글쓰기의 문제점
    이영석 기자님의 연세를 얼핏 추측해보니 70세정도 되는것 같습니다.
    저는 나이가 33세입니다.
    할아버지 뻘이군요.
    그래도, 지금은 21세기이고, 기자와 독자의 사이니까 비판을 해야 할것은 하겠습니다.
    널리 양해해주세요.
    이기자님!..
    아주 솔직하게 쓰세요..
    괜히 겉으로는 공정한척 애를 쓰고 실제로는 편파적인 글쓰기를 하지마세요.!
    이기자님의 글을 읽으면 그런 느낌을 아주 자주 받네요.
    비판의식이 희박한 독자들이 읽으면
    군중유세에 대한 테러가 무서워서 "유신 헌법"을 만들었다는 뉘앙스를 느낄수가 있습니다.
    유신헌법 제정에 대한 "간접적인 합리화"를 도모하는듯한 글쓰기 수법입니다.
    군중유세가 무서우면 텔레비젼 토론을 하면 되지요.
    그 당시에는 TV보급율이 적었지만 그래도 TV토론을 하게된다면 수상기를 찾아다니면서 보게 될겁니다.
    제가 괜한 추측을 한 건가요??.
    아닐겁니다...아닙니다.
    "옛날 정치 지금 정치"를 읽다보면 그런 글쓰기수법을 여러차례 느꼈습니다.
    그때마다 댓글을 남기지 않고 지나쳤습니다.
    왜나하면 제 판단이 틀릴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오늘만큼은 그냥 지나칠수 없네요.
    유신헌법을 찬양하거나, 유신헌법을 합리화시키고 싶다면 그냥 솔직하게 말하세요.
    괜히, 뒷통수를 후려치는 글쓰기 수법으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을 "공정"한척 하지 마세요.!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습니다.
    <4.19 5.18항쟁의 비밀>이라는 글에서도 그런 수법이 보입니다.
    다음과 같이 쓰셨죠..
    ...."좌익활동을 했고 일본에선 한민통과 함께 활동했다. 미국에선 자신의 통일론은 북의 연방제와 같다고 했다. 대중경제론은 대기업 불신 등 혁명적인 방법을 담고 있다. 이런 사람에게 국군통수권은 안 된다.....
    이기자님.....언론인은 앵무새인가요?...구관조인가요?....보도기관인가요?
    진실을 말씀하셔야지요..
    왜 군사정권이 했던 말을 그대로 보도하나요?
    이기자님의 논평이 없잖아요..
    저 말이 사실이면 사실이라고 말씀하시고, 거짓이면 거짓이라고 말씀하셔야지요.
    군사정권이 "메주는 팥으로 만든다"라고 발표해도 그대로 따라서 보도할건가요?
    대한민국의 언론(인)이 그런 발표를 곧이곧대로 보도할정도로 몰상식한가요?
    그러면 언론(인)이 앵무새와 무엇이 다른가요?
    지금도 조선일보와 월간조선은 DJ가 좌파,좌경세력,좌익이라고 합니다.
    그 말은 마치 DJ가 빨갱이라고 차마 말은 못하니까 고육지책으로 그런 야비한 보도를 하는것 같습니다..
    이기자님의 글쓰기는 다른 사람의 말을 앵무새처럼 인용하면서 특정인(세력)을 비판하는 문제점이 있습니다.
    뒷통수를 후려치는 글쓰기 수법입니다.
    저의 짧은 생각으로는 아주 안 좋은 글쓰기 수법같습니다.
    자기 생각을 말하세요.
    이영석 기자님의 생각을 말하세요.
    괜히 겉으로는 공정한척 하지 마시고...그냥 아주 솔직하게 자기 생각을 말하세요.!
    나이 어린 사람이 이런 글을 올려서 죄송합니다..

↑ 맨위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