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배 국민의당 전 대표는 1일 "남다른 애당심과 책임감으로 우리 국민의당, 반드시 살리겠다"며 당대표 경선 출마를 선언했다.
천 전 대표는 이날 오전 국민의당 창당대회가 열렸던 대전 한밭체육관에서 출마선언을 통해 "저 천정배, 이 국민의당을 만드는 데 누구보다 앞장섰다. 저는 감히 자부한다. 저 천정배가 국민의당이고, 국민의당이 저 천정배"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국민의당, 어떻게 만든 당인가? 여러분과 저와 안철수 전 대표와 당원동지들의 피와 땀으로 만든 당 아닌가"라며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 넘어질지언정 쓰러질 수 없다. 실패할지언정 포기할 수 없다. 죽을지언정 패배를 선언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지난 2016년 당시 국민회의를 창당해 국민의당과 통합한 뒤 안철수 전 대표와 함께 초대 공동대표를 지낸 바 있다.
그는 당대표 공약으로는 "다당제 합의제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것이 개혁이다. 즉 국민의당을 살리고 잘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개혁"이라며 "국민의 정치적 권리가 동등하게 보장 받을 수 있는 '민심 그대로 선거제'가 개혁이다. 국민의 인권이 최우선인 새로운 시대를 여는 '개헌'이 개혁"이라며 개헌 추진을 약속했다.
그는 내년 지방선거와 관련해선 "그야말로 끊임없이 인재가 키워지고 배출되는 '인재 화수분 정당'으로 만들겠다"며 ▲여성과 남성과 동등한 비율 추천과 등용 ▲청년당원에 대한 제도-재정적 지원 확충 등을 공약했다.
앞서 그는 아산 현충사를 참배하면서 방명록에 '사즉생 생즉사, 충무공 정신 이어받아 국민의당을 살리고 상생과 협치의 시대를 열겠습니다'라고 적었다.
그는 출마선언 전인 지난달 26일에는 강원도당-대전시당, 27일에는 울산-대구-충남 등 지역을 돌며 시도당 지역위원장들 지지표 확보에 총력을 펴기도 했다.
앞으로 철수가 나서면 아무것도 안되고 될것도 안될 것이다 아무리 세상물정 모르는 정치초짜라고해도 그렇지 어떻게 그정도로까지 정무적인 감각이 없을 수가 있는건지 참으로 답답한 중생이로다 이 깝깝한 화상아 지금은 니가 나설때가 아니다 없는 듯 숨죽이고 바짝엎드려 있던지 아니면 여러사람들이 지적하듯 외국유학길에 올라 한참 정치공부 좀 더해라
세대교체만이 당를 살리는 길이다. 원로나 중진이면 당에서는 대우받을지 모르나 국민들은 구태정치인을 원치 않는다. 국민당은 새정치를 표방하고 민주당을 배신하고 나왔으나 헌정치만 해왔다.그 결과물이 오늘날의 지지율이다. 충고컨데 40대 젊은 대표 선출하여 새로운 사고력을 가진 정당으로 변신하길 바런다.구시대 인물이 당대표 되는 순간 국민의 당은 험난할것이요
기업과 마찬가지로 실력과 머리가 없어도 돈투자 금액에 따라 대표가 되고 임원자리에 앉히는 기업이나 당은 오래 못가 문닫는다~~ 투자자는 말 그대로 투자자로 남아서 젊고 능력있는 경영인과 두뇌를 데려다 운영해야 짱짱해지는거지!!! 하긴 그것도 투자자의 안목이라도 있어야 가능한 일이겠지만 서도 ㅋ...
지방선거승리는 차기총선승리의 보증수표가 되므로 가짜보수는 사활을걸고..묻지마 부동산대출인질을 확보하는것으로 보인다..일단 가계부채인질만 되면 선거에서 묻지마 가짜보수표가 되므로..문당선자가 부동산 잡기위해 세종시 행정수도이전하는 결단을 못하면..노무현대통령이 힘들었던 원인을 재탕할것 같다..가짜보수의 목표는 차기총선에서 탄핵정족수 확보가 분명해보이므로
현재의 정치 적폐의대부분은..박정희의 지역차별 투자정책으로 국민들을 지역분열시키고..소선거구 지역구기득권과 양당프레임에서 오는게 맞다..그래서 소선거구를 중선거구로바꾸고..정당명부식으로 지역주의보다는 정책노선경쟁으로 바꾸지않는이상..천정배의원이 말하는 '국민의 정치적 권리' 가 결코 보장될수없는 구조적 문제가있다..
친일파인 박정희는 일제강점기에 춘원 이광수가 이순신을 동아일보소설에서 띄우고..이순신을 모함한 조선은 망할수밖에없는 나라로 묘사 하여..일본의 지배를 합리화한것을 가져와서 유신독재의 합리화에 이용했다..광화문의 이순신동상은 박정희가 헌납한걸로 돼있는데..결국 국민세금으로 한것이다.. 물론 이순신은 세계해전사에 비교할대상이 없는 명장이지만..
'목포 3대 천재'라는 별명을 가진 천정배 의원은 1954년 12월 12일 전라남도 신안에서 2남 3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72년에 목포고등학교를 전체 수석으로 졸업한 후 대학예비고사에서 인문계 전국 수석을 차지했고, 서울대학교 법대에 수석으로 입학한 수재로 유명하다.
더욱이 천정배 의원은 1978년 사법연수원을 3등이라는 우수한 성적으로 수료하면서 주변에서 판사나 검사가 될 것으로 예상됐지만, 수원에 있는 전투비행단에서 공군 법무관으로 복무하던 중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을 계기로 전두환 정권에서 법관 임용 받기를 거부하고 변호사가 됐다.
문재인도 사법고시 햇는데.... 천정배와 비교하면 차이가 확 난다 다음 천정배 의원은 서울대학교 법대 1학년 재학 중에 10월 유신으로 늦춰진 사법시험 1차에 응시해 합격했다. 그러나 2차 시험에 응시하지 않고 기간이 만료되어 대학 3학년 때 다시 1차에 도전해 합격하고 1976년 졸업과 동시에 제18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시선을 집중시켰다. 정말 천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