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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도 밀면 문이 된다"는 손학규

[김행의 '여론속으로']<31> '손학규 대망론'의 허와 실

최근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대선예비주자 가운데 지지율 3위로 올라섰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열린우리당 정동영 전 당의장에게 늘 3위 자리를 내줬었다. 이제야 정동영을 제치고 3위로 올라선 것이다. 그의 지지도는 5% 안팎이다. 경쟁자인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비교하면 보잘 것 없다.

그러나 그는 지금 대선가도의 ‘블루 칩’으로 떠올랐다. 마땅한 후보가 없는 여권에서 '손학규 영입론'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힘입어서인지 그는 한나라당을 마음껏 요리하고 있다 "내가 없는 한나라당을 상상해보라"고 기염을 토하기도 한다. 허세일까? 아니면 다크 호스일까?

그를 둘러싼 최고의 관심사는 그가 한나라당에 남아있을까 하는 것이다. 저조한 지지도를 감수하고 한나라당 후보 경선에 나가 '장렬한' 전사(戰死)를 택할 지, 아니면 여야를 넘나들며 가능성을 타진할 지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그의 입재간이 만만치 않다. 여권 일각의 '범여권 후보론'에 대해 "범여권 후보 논의가 일고 있는 것은 무엇보다 본선 경쟁력을 고려했기 때문으로 판단한다"고 스스로의 가치를 인정하는 데 서슴이 없다. 그러면서도 "고마운 일이지만 늘 해왔던 대로 제 길을 걷겠다"고 선을 긋는다.

그러나 후보 경선결과 수용 여부에 대해서는 "경선을 앞두고 선서나 서약을 하는 것은 구시대적 정치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 내가 뭘 말하는지를 듣지 말고, 어떻게 행동해 왔는지를 봐 달라"며 질문한 기자들의 입을 막는다. "벽(璧)도 밀면 문(門)이 된다"는 말은 최근 그가 만든 교언(巧言)이다.

현 상황으로는 손 전 지사에게 대권이 돌아갈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객관적 수치가 그렇고, 유권자에게 어필하는 속도가 너무 늦다. 그러나 손 전 지사에게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꼭 자력에 의한 것이라기보단 운(運)이 따르면 그렇다는 얘기다.

선두그룹인 이 전 시장이나 박 전 대표의 중도 탈락 가능성을 감안하면 단순히 운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이 전 시장과 박 전 대표가 약점투성이고, 손 전 지사는 상대적으로 감점요인이 적다는 점에서 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는 이 전 시장만큼 파란만장한 인생을 산 것도 아니고 돈도 많지 않다. 박 전 대표가 갖고 있는 후광도 없다. 그러나 민주-개혁세력이 입만 열면 주장하는 '민주화 운동' 경력은 화려하다. 영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학력도 거론되는 여야 후보 누구보다 탄탄하다. 경기도지사로 외자를 유치하며 영어마을을 만들고 일자리를 창출해낸 가시적인 실적도 있다.

만약에 이명박-박근혜 두 사람이 낙마하면 한나라당이 선택할 후보는 없다. 그는 최근 김진명씨의 소설 '나비야 청산가자'에 자신이 여권후보로 대권을 손에 거머쥐는 상황이 기술된 것과 관련해 "어떤 사람이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는 소설가적인 상상력이지만 본선 경쟁력과 한반도 안전지향형 성향이 고려된 것으로 본다"고 한껏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손학규 캠프는 민생대장정 과정에 덥수룩해진 손 전지사의 수염을 가리키며 "다음 대통령은 숲에서 난다"는 운명철학자들의 말까지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손학규 홈피


손 전 지사가 현재의 한나라당 경선구도 그대로 경선에 참여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은 거의 없다. 뭔가 변화를 꾀하고, 그 변화가 마음에 차지 않으면 ‘제3의 길’을 걸을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손 전 지사가 한나라당 중앙당의 '여(與) 인사 영입불가 방침'에 "열린우리당 소속인 진대제 전 정통부장관, 강봉균 의원 같이 세계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는 분들을 모셔올 생각도 해야 한다"고 반기를 들었다.

"한나라당이 열린우리당에서 나온 분들을 받아들이지 않겠다는 것은 대선에서 승리하겠다는 자세가 아니다"라는 게 그의 주장이다. "성을 쌓는 자는 망하고, 길을 여는 자는 흥한다"는 칭기즈칸의 말까지 동원했다. 이명박-박근혜 양자 구도로 고착화된 한나라당 현역의원과 대의원 사이의 과점구도를 깨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여권 유력인사의 영입을 주장하면서 그는 진대제 전 장관과 정운찬 전 서울대총장 등 범여권 인사들을 거론했다. "이들과 함께라면 드림팀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진 전 장관의 첨단산업, 정 전 총장의 개방마인드가 자신의 통합마인드와 함께 하는 정치적 리더십이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했다.

듣기에 따라서는 진대제, 정운찬과 함께 자신이 참여하는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후보를 결정해서 현재 이명박-박근혜의 지지율 수준을 능가하는 '천하무적'을 만들어내자는 구상이 엿보인다. 그가 말한 진대제-정운찬-손학규 카드는 한나라당 울타리를 넘어선 모습을 연상케 한다. 손학규 전 지사가 이만큼 정치적으로 기민해졌다는 증거다.

최근 필자와 인터뷰를 가졌던 손 전지사 캠프의 한 핵심은 '손학규 대망론'을 굳게 믿고 있었다. 이명박 -박근혜 낙마 가능성과 함께 다양한 정치적 수를 고려한 믿음이다.

거기에는 운명철학자들이 "다음 대통령은 숲에서 난다"고 했다는 예언도 작용하는 눈치다. '숲'은 도지사를 그만두자마자 전국 민생투어 과정에서 덥수룩하게 얼굴을 덮은 손 전지사의 수염을 말한다는 것이다. “무궁화 동산에서 학이 오른다”는 예언을 한 법사도 있는데, 박근혜 전 대표(근은 무궁화 槿)의 조력을 받아 손학규가 대통령이 된다는 뜻이라 한다. 듣기에는 헛웃음이 나오긴 하지만 이에 대한 손학규 캠프의 반응은 꽤 진지하다.

중앙일보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흥미로운 결과가 나왔다. 손 전지사가 '범여권 후보'로 출마할 경우 "찍지 않겠다"는 대답이 78.7%를 차지했다. 열린우리당 지지자 70.6%도 "찬성할 생각 없다"고 답했다. 일단, 여론은 부정적이다.

손 전지사가 ‘제2의 이인제’가 될 것인지? 아니면 한나라당 정권장악에 디딤돌이 되어 차기 정권에서 능력을 발휘하다 차차기를 노릴 것인지? 모든 것은 손 전 지사에 달려 있다. 그러나 모험을 하기엔 ‘이인제 학습효과’가 너무도 큰 장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행 여론조사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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