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발 선거구제 개편, 심판 공포때문"
이상돈 "정치권, '여야 동반 당선'이란 달콤한 마약 탐내"
이상돈 교수는 이날 자신의 홈피에 올린 글을 통해 "미디어법, 쌍용자동차 등은 물론이고, 재정적자, 4대강 사업, 국방부 파문 등 많은 이슈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 선거구제를 개편하고 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며 "선거구제 개혁안에 대해 현역의원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데 대해선 쓴웃음을 짓지 아니 할 수 없다"며 이 대통령과 여야 의원들을 싸잡아 힐난했다.
이 교수는 이어 현역의원 절반이상이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한다는 이날자 <조선일보> 여론조사 결과를 거론한 뒤, "여야 의원들 가운데 ‘정치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존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라고 쓴소리를 했다.
그는 이어 "중대선거구는 선거가 갖는 ‘심판’이란 기능을 희석시키는 중대한 부작용이 있다"며 중대선거구제의 치명적 맹점을 지적한 뒤,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신 체제와 5공화국 시절에 중선거구를 택해서 여야 동반당선을 가능하게 했다. 대통령 간선제와 중선거구제는 권위주의적 정부를 포장하기 위한 ‘화장(化粧)’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란 걸출한 정치인이 야권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타파할 수 있었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바"라며 과거 군사정권들이 국민 심판 기능을 무력화하기 위해 중선거구제를 도입했었음을 상기시켰다.
그는 "그런데 이제 와서 소선거구제가 문제가 많다면서 이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고 하니 황당하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표면적 명분은 ‘사표 방지’지만 내심은 ‘여야 동반당선’이란 달콤한 마약을 탐내는 것"이라며 "공천권을 거머쥔 집단의 권세가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중대선거구론자들이 지역감정 타파를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에 대해서도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에 있어 큰 문제이나, 선거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없어지지는 않는다"라며 "지역주의는 오직 시간이 해결할 뿐이다. 미국 남부가 남북전쟁 당시의 점령군이었던 공화당을 선거에서 지지하기 시작한 것은 한 세기가 지나서였다. 소선구제 하에서 지역주의가 깨져야만 진정으로 지역주의가 해소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중대선거구제 하에선 ‘선거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는 현실안주형 정치를 고착화할 것이며, 잘못하면 과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현재 이스라엘에서와 같은 ‘혼돈의 정치’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한 뒤, "청와대발(發) 선거구제 개혁 주장은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이 아닌가 한다"며 이 대통령의 선거구제 개편 드라이브에 의혹을 제기하는 것으로 글을 끝맺었다.
다음은 이 교수의 글 전문.
중대선거구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미디어법, 쌍용자동차 등은 물론이고, 재정적자, 4대강 사업, 국방부 파문 등 많은 이슈가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와중에 선거구제를 개편하고 헌법을 개정하자는 주장이 나오고 있으니 어처구니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여당이 손해를 보더라도 추진해야 한다”는 선거구제 개혁안에 대해 현역의원들이 긍정적 반응을 보이는 데 대해선 쓴웃음을 짓지 아니 할 수 없다.
오늘(8월 27일) 조선일보는 1면 머리기사로 이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여론을 비중 있게 실었다. 국회의원 183명을 상대로 한 여론조사에 의하면 51.4%에 달하는 94명이 중대선거구제에 찬성했는데, 정당별 찬성률은 한나라당이 47.1%, 민주당이 70.7%라고 한다. 지역별로 당의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에 대해선 66.6%에 달하는 122명이 찬성했다고 한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이 보수가 아닌 중도의 길을 가야한다고 주장했던 김형준 교수(명지대)는 “여야 공히 정치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는 사실이 확인된 셈”이라고 했다.
하지만, 여야 의원들 가운데 ‘정치개혁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생존의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중대선거구란 선거구를 광역으로 해서 한 선거구에서 2명(중선거구), 또는 3-5명(대선거구)의 의원을 뽑는 제도이다. 이렇게 하면 선거구별로 비례대표를 하는 셈이라서 사표(死票 : wasting votes)가 줄어들어 국회의 국민 대표성은 증가하게 된다.
그러나 중대선거구는 선거가 갖는 ‘심판’이란 기능을 희석시키는 중대한 부작용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유신 체제와 5공화국 시절에 중선거구를 택해서 여야 동반당선을 가능하게 했다. 대통령 간선제와 중선거구제는 권위주의적 정부를 포장하기 위한 ‘화장(化粧)’이었다. 김영삼과 김대중이란 걸출한 정치인이 야권에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타파할 수 있었음은 우리가 너무나 잘 아는 바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소선거구제가 문제가 많다면서 이를 중대선거구제로 바꾸자고 하니 황당하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자는 표면적 명분은 ‘사표 방지’지만 내심은 ‘여야 동반당선’이란 달콤한 마약을 탐내는 것이다. 만일에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하면 민주당 후보는 호남은 물론이고 수도권, 경남부산에서 당선이 거의 보증될 것이며, 한나라당 후보는 경북대구와 경남부산 수도권 강원 등지에서의 당선을 거의 보장받을 것이다. 공천권을 거머쥔 집단의 권세가 얼마나 기승을 부릴지는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에도 문제가 있기는 마찬가지다. 원래 비례대표제는 전국적 인물이나 전문가 등을 국회에 진입시키기 위한 제도이다. 하지만 요즘 비례대표 의원들은 듣지도 보지도 못한 사람들이 태반이다. 어떠한 합리적 이유로도 설명이 되지 않는 의원들이 비례대표 의원이라고 명함을 내미는 경우가 많다. 권역별 비례대표를 도입한다면 상황은 더욱 나빠질 것이다. 한 선거구에서 3-5명을 뽑는 대형 선거구제를 채택하면 그것 자체가 권역 비례대표제이기 때문에 비례대표 선거를 2중으로 하는 격(格)이다.
현재의 소선구제가 지역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에 중대선거구제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유신과 5공화국 시절의 국회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호남에서도 여당의원들이 동반당선되었지만 그들이 지역주의를 해소하지는 못했다. 지역주의는 우리 정치에 있어 큰 문제이나, 선거제도를 바꾼다고 해서 지역주의가 없어지지는 않는다. 지역주의는 오직 시간이 해결할 뿐이다. 미국 남부가 남북전쟁 당시의 점령군이었던 공화당을 선거에서 지지하기 시작한 것은 한 세기가 지나서였다. 소선구제 하에서 지역주의가 깨져야만 진정으로 지역주의가 해소되는 것이다.
소선구제 선거는 ‘잔인한 게임’이다. 그런 ‘잔인한 게임’을 통해 유권자들은 ‘심판’을 하는 것이며, 그런 ‘심판’을 거쳐 다수당이 된 정당이 소명(召命 : Mandate)을 부여받는 것이다. 중대선거구제를 실시하면 새로운 정당이 원내에 진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커지기는 하나, 중대선거구제 하에선 ‘선거혁명’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중대선거구제는 현실안주형 정치를 고착화할 것이며, 잘못하면 과거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이나 현재 이스라엘에서와 같은 ‘혼돈의 정치’를 초래할 수도 있다. 청와대발(發) 선거구제 개혁 주장은 ‘다가오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의 표출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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