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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펌에 쇄도하는 대법관-판사-검사들

[김진원의 로펌 이야기] <6> 로펌 경쟁력 고양 반면 전관예우 비판도

국내 굴지의 로펌중 하나인 법무법인 광장이 최근 이규홍 전 대법관을 대표변호사로 영입했다.

30년이 넘는 법관 생활을 마친 이 전 대법관이 일류 로펌의 대표가 돼 변호사 후배들을 지휘하게 된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재정경제부 장관을 지낸 이규성 전 장관이 형인 그는 1997년부터 2년간 서울지역의 부실기업 회생업무를 전담하는 서울지법 민사수석부장을 맡아 형제가 함께 외환위기(IMF) 극복에 기여한다는 덕담을 듣기도 했다.

최근 법무법인 광장에 합류한 이규홍 전 대법관. ⓒ연합뉴스


이보다 앞서 얼마 전 법무법인 태평양은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역임한 정호영 전 서울고법원장을 고문으로 영입했다.

기업법무를 위주로 하는 로펌은 원래 판, 검사를 역임하지 않고 사법연수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로펌에서 변호사 업무를 시작한 이른바 연수원 출신의 전문변호사들이 주류라고 할 수 있다.

일간신문 1면에 종종 등장하는 개업광고 한번 내지 않고, 대기업 신입사원처럼 로펌의 신출내기 변호사로 출발한 이들은 오직 전문성 하나로 고문기업의 용병으로 자처하고 나선다. 영어 등 외국어 구사 능력은 필수.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수료성적도 판, 검사로 임용되는 데 지장이 없을 만큼 상위권이 아니면 로펌에 지원서를 내밀지 못한다.

대개가 로펌의 조직 생활에 조화를 이루는 데 지장이 없도록 대학 재학중 또는 젊은 나이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일류대 출신들이다. 아직 연차가 안된 주니어 변호사들을 제외하면 하나같이 하버드 · 예일 · 스탠퍼드대 등 외국의 명문 로스쿨에 유학도 다녀왔다. 외국 로펌에서 1~2년씩 근무하며 선진 실무도 몸에 밴 말그대로 법률 전사(戰士)들인 이들이 로펌의 간판 스타들인 것이다.

주로 자문 분야에서 활약하는 이들은 외국 연수를 마친 10년차 안팎의 중견변호사가 되면 금융변호사니, 통상 전문이니 하는 레테르를 하나씩 갖고 다닐 만큼 전문성을 갖추게 된다. 기업들은 이들의 도움을 받아 증권과 채권을 발행하고, 금융을 조달하며, 기업간 인수 · 합병(M&A)의 지혜를 빌리기도 한다.

그런데 로펌의 송무 분야가 갈수록 확대되며 대법관과 법원장, 고법부장, 지법 부장판사 등을 역임한 법관 경력의 중량급 변호사들이 속속 로펌으로 모여들고 있는 것이다.

송무란 법원에 제기되는 민, 형사 소송과 관련된 일을 가리키는 말이며, 자문은 채권과 증권 발행, 프로젝트 파이낸싱, 국내외 투자, 기업 인수 · 합병(M&A) 등 기업활동과 관련해 법적 자문을 제공하는 일을 의미한다.

또 최근엔 고등검사장, 검사장 등을 역임한 검찰 간부 출신들도 로펌의 대표변호사 또는 고문으로 로펌행 열차에 몸을 싣고 있다. 기업 관련 형사사건이 늘어나면서 형사팀이 보강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잇달아 터진 두산 그룹 비자금 사건, 현대차 · 기아차 사건, 론스타 사건 등의 관련 변호인에 여러 대형 로펌이 관여하고 있는 것만 보아도 로펌 형사팀이 얼마나 커졌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발달한 로펌일수록 판,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러면서 자문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연수원 출신 전문변호사들과 함께 로펌의 중추를 이뤄가고 있는 것이다.

대학 동기로 같은해 나란히 사법시험에 합격한 김&장법률사무소의 J변호사와 P변호사의 얘기가 로펌의 이런 인적 구성의 변화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지금부터 십수년전.

사법연수원을 거쳐 군법무관 제대를 얼마 앞둔 두 사람은 법관이냐 로펌변호사냐의 두갈래 선택을 놓고 고민을 거듭했다고 한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그때만 해도 판, 검사를 포기하고 로펌의 변호사가 되겠다고 하면 가족 등 주변의 만류가 심했던 시절이다.

결정을 내리지 못한 두 사람은 법관 지원서 접수를 마감하기 몇 시간전 서울 서소문의 법원청사 인근에서 만나 덕수궁 돌담길을 걷고 또 걸었다. 당시엔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서초동으로 이사가기 전으로 덕수궁 옆의 서소문에 둥지를 틀고 있었다.

J변호사가 먼저 법관 지원을 포기했다. 당시 한창 발전하고 있던 김&장에 가기로 마음을 굳힌 것이다.

P는 고민했다. 결국 그는 J변호사와 헤어져 혼자 법원행정처에 법관 지원서를 접수했고, 얼마 안있어 법관으로 임관했다.

그후 다시 십여년이 지났다.

법원내 요직을 두루 거치며 중견 법관이 된 P는 법원에 사직서를 내고, 김&장의 변호사가 됐다. 오래전 진로 문제로 고민하며 덕수궁 돌담길을 함께 걸었던 J변호사와 한솥밥을 먹게 된 것이다.

업무 분야는 서로 다르다. J변호사의 전문 분야는 금융. 일찌감치 예일대 로스쿨로 유학을 다녀 온 그는 금융분야의 전문변호사가 돼 금융 등과 관련된 온갖 사건을 요리하고 있다. P변호사는 송무팀에서 대형 경제사건의 단골 변호인으로 맹활약하고 있다.

주요 로펌의 홈페이지를 들춰보면, 구성원 소개란에서 대법관 등 고위직 법관 출신과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의 이름을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워낙 숫자가 많아 일일이 이름을 나열할 수 없을 정도다.

전직 대법관만 해도 광장엔 이 전 대법관외에 박준서 전 대법관이 고문으로 있다. 또 김&장의 이임수 전 대법관, 태평양의 송진훈 전 대법관, 세종의 오성환 · 서성 전 대법관, 화우의 윤관 전 대법원장과 천경송 · 변재승 전 대법관, 율촌의 김용준 전 헌법재판소장과 신성택 전 대법관, 케이씨엘의 유지담 전 대법관, 바른의 최종영 전 대법원장, 로고스의 이용우 전 대법관 등 웬만한 로펌마다 전직 대법원장, 대법관들이 고문이나 대표변호사가 돼 후배들을 봐주고 있다.

이어 법원장, 고법부장, 지법부장, 고검장, 검사장, 차장검사, 부장검사 등 다양한 재조 경력의 판, 검사 출신 변호사들이 기수별로 층층시하를 이루고 있다. 연수원 출신 전문변호사들과 함께 거대한 싱크탱크를 구성, 로펌의 경쟁력을 한층 높여가고 있는 것이다.

이임수 전 대법관과 최경원 전 법무부장관, 이정수 전 대검차장, 윤동민 · 김회선 전 검사장 등이 포진한 김&장은 재조 출신을 포함해 국내외 변호사만 3백명이 넘는다. 서울중앙지법 못지않은 맨파워를 갖췄다는 평가를 들을 정도다.

그러나 전직 대법관과 검찰 간부 출신 등의 로펌행에 대해 개인변호사나 규모가 작은 중소 법률사무소들 사이에선 반발도 없지 않다. 대법관에서 연수원을 갓나온 신입변호사에 이르기까지 법원과 검찰 못지않은 계층구조를 이루고 있는 로펌의 막강한 네트워크가 일종의 '전관예우'로 작용할 수 있다고 비판한다.

전에 모시던 대법관이나 법원장, 검사장, 부장판사, 부장검사 등이 사건을 맡은 로펌의 변호사가 돼 나설 때 법원과 검찰에서 무언의 압력을 느끼지 않겠느냐는 지적이 그것이다.

재조 출신의 로펌행이 늘어나면서 "전관예우 시비가 재조 출신 개인변호사들에서 고위직 판, 검사 출신들이 포진한 로펌으로 옮아가고 있다"는 한 변호사의 지적에 공감하는 목소리도 더욱 높아지고 있다.
김진원 리걸타임즈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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